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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난쏘공'이 인천에 남긴 흔적들… 지울까, 지킬까

 

지난해 12월25일 영면에 든 조세희(1942~2022) 작가의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 1978년 출간돼 2017년 한국 문학사상 처음으로 300쇄를 찍었고, 지난달 기준 누적 발행 150만부에 가까울 정도로 여전히 널리 읽힌다. 난쏘공이 한국 문학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난쏘공의 중후반 주요 무대인 '기계도시 은강'이 바로 인천이고, 더 구체적으론 동구 만석동 공장지대를 형상화했으며, 소설 속 실제 배경이 45년이 흐른 지금도 남아있다는 건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난쏘공을 인천과 적극적으로 연결지으려는 움직임도 적다. 고전이 된 난쏘공이 인천에는 무엇을 남길 것인지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배경인 만석동 공장지대
동일방직·도시산업선교회 등
숨겨왔던 어두운 도시 이미지


지난 11일 조세희 작가 49재를 맞아 인천 동구 일대에서 시민 60여명이 모인 가운데 노동단체 주관 추모 답사가 있었다. 장회숙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 대표는 "조세희 선생이 작고한 이후 모두가 선생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는데, 인천에서만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아 안타까웠다"며 답사를 기획한 취지를 설명했다.

"영호가 먼저 은강전기 제일 공장에 들어갔다. 영희는 은강방직 공장에 들어갔다. 두 동생이 일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한 나는 은강자동차에 들어갔다. 삼남매가 똑같이 은강 그룹 계열의 회사의 공장에 훈련공으로 들어갔다."(난쏘공 연작소설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中)

추모 답사객들이 찾은 동일방직, 일진전기(옛 도쿄시바우라), 현대두산인프라코어(옛 조선기계제작소) 등 공장은 소설 속 난장이의 세 자녀가 노동자 생활을 한 그 공장이다. "실내 온도는 섭씨 삽십구 도였다"는 은강방직 작업장의 훈련공 영희가 "일이 끝나면 노동자 교회에 갔다"는 그 교회는 동구 화수동 인천도시산업선교회(현 미문의일꾼교회)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난쏘공이 출간된 해인 1978년 2월 동일방직 여성 노동조합원들이 당한 이른바 '똥물 투척 사건' 당시 그들을 도왔던 여성노동사의 상징적 현장이기도 하다.

'희망 공간' 보존 목소리 커져


난쏘공의 현장은 개발이 확산하면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비어있는 동일방직과 일진전기 인천공장은 몇 해 전까지 근현대 산업유산으로서 활용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방치된 상태다. 재개발구역 안에 있는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철거 위기 끝에 원형 그대로 이전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장회숙 대표는 "난쏘공의 어두운 도시가 인천이라는 것은 이제껏 숨겨졌지만, 앞으로는 숨길 게 아니라 어두운 역사를 기억하면서 희망을 주는 공간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꼭 장소성에만 머물지 않더라도 난쏘공과 인천을 연결할 가치는 크다.

김창수(문학평론가) 인하대 초빙교수는 "인천이 노동자의 도시이자 산업도시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작품으로 45년 전 상황과 오늘날의 노동문제, 낙후한 인천 중구·동구의 해결해야 할 과제 등은 여전히 연결된다"며 "노동문학의 선구자로 많은 영향을 끼쳤고, 특히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유명한 김중미 작가는 난쏘공의 직접 영향을 받아 만석동 빈민 지역 활동가로 몸소 실천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