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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피해 당한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 마세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 여성
표예림 씨 비극에 안타까움 표출
‘돈애스크’ 브랜드화 준비 팔 걷어
생존자용 안전 장치 마련 등 촉구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당사자 박민지(28·가명) 씨는 다른 강력사건 피해자들을 돕고 구하는 일을 자처한다. 그녀는 ‘피해자’라는 말보다 ‘경험자’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피해자다움’이란 고정관념에 스스로를 끼워넣다 무너지는 이들을 너무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경험자로서 민지 씨는 다른 피해자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살인, 스토킹, 폭행, 학교폭력 등 각종 범죄 피해자들의 연대자이자 조력자로 역할했다. 그러다 고 표예림 씨와도 연이 닿게 됐다.

두 사람은 법과 제도의 한계에 부딪힐 때, 언론이나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 조언을 주고 받았다. 동갑내기여서 친구로 지냈는데, 가까이서 자주 의지했다. 안타까웠던 예림 씨의 사건 이후에는 장례부터 자취방 정리까지 힘을 보탰다.

민지 씨는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직접 증명하고, 대중에게 검증까지 받아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며 “예림이는 익명을 앞세운 이들로부터 ‘사이버불링’을 당했고, 잠들기 직전까지의 일상이 폭력에 노출됐다. 제대로 숨도 쉬기 어려운, 무게조차 따질 수 없는 폭력이었다”고 말했다.

민지 씨는 “본인이 힘들 때도 항상 다른 학폭 피해자들이 노출되거나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하던 친구였다”며 “예림이처럼 범죄 피해 이후에도 2차 가해나 법적 안전망 미비로 고통 속에 사는 피해자들이 많다. 이들을 위해 무언가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민지 씨는 ‘매너스’라는 이름의 범죄 피해자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강력 범죄를 당했을 때나 범죄 이후 2차 가해가 일어났을 때 대처법, 피해자들에게 유용한 법률 상식, 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활용방법, 피해자 지원제도와 관련 단체 등을 한데 묶어 놓은 가이드북 등을 제공하고자 한다.

그녀는 “병실에 누워있는 내내 강력 범죄 피해자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검색했는데 답을 얻지 못했다. 경찰이 주고 가는 한 장짜리 안내문은 별다른 도움이 되질 않았다”며 “인터넷에는 법무법인이 올려 놓은 ‘범죄 가해자들을 위한 감형법’ 등이 넘쳐난다. 그런 현실이 너무 답답했다”고 말했다.

민지 씨는 ‘돈애스크’라는 범죄 피해자 브랜드 제작도 계획 중이다. 범죄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말고, 강력 범죄들을 그냥 묻고 넘어가지 말자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자 한다. ‘범죄 피해자들을 지지한다’는 뜻의 배지를 만들어 연대의식을 형성하려는 노력이다.

민지 씨는 온라인 카페와 유튜브 채널 등도 운영하며 피해자들과 연대해 변화를 꿈꾼다. 최근에는 ‘인천 스토킹 살인’ 피해 유족, ‘남친 바리캉 폭행’ 피해자 등과 함께 피해자 연대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들이 겪은 사건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이 부딪혔던 현실의 벽은 비슷했다.

민지 씨는 “강력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과 검찰이 발 벗고 나서 모든 일을 처리해줄 거라 막연히들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은 피해자가 직접 CCTV를 구하러 다녀야 하고, 증거와 증언을 수집해야 한다”며 “수사기관은 그저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느꼈다. 살아남은 피해자를 위한 역할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본업인 프리랜서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면서도 민지 씨는 주요 재판이 있을 때면 법원에 가서 또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하려고 한다. ‘초량동 노래주점 폭행’이나 ‘부산 스토킹 살인미수’ 등 피해자가 보복 범죄에 두려워하는 사건일수록 더욱 관심을 가진다. 법정 방청석에서 ‘제3자’로 소외당하는 피해자들에게 이런 연대와 공감은 그 자체로 큰 힘이 된다.

민지 씨는 다른 강력 범죄 피해자들과 함께 국가배상신청에 대한 논의도 진행하고 있다. 돈이 궁해 금전적 보상을 받고 싶어서 하는 일은 아니다. 그녀는 “이렇게 끝까지 따지고 들어 불편하게 만드는 피해자들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며 “수사기관이나 재판부가 처음부터 피해자들이 공론화를 시키지 않더라도 제대로 사건을 들여다 보고 처리하게끔 유도하려는 목적이다”고 밝혔다.

민지 씨는 범죄 생존자들을 위해 가해자가 가까이 오면 알림이 울리는 ‘양방향 스마트워치’ 도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사건과 관련 없는 양형기준 폐지, 피해자 알권리 강화, 재판기록 열람·등사권 보장, 범죄 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 설립 등도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간의 고민과 고충을 쏟아내기도 했다.

민지 씨는 “돌려차기 사건을 당하기 전까지는 오히려 별다른 목적 없이 그저 그런 하루들을 살아갔던 것 같다”며 “사건 이후 뚜렷한 삶의 목적의식이 생겼다. 내가 겪었던 일들을 토대로 다른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범죄 피해자들에게는 “살아줘서 고맙다. 그리고 당신은 잘못이 없다. 피해자라는 단어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당신도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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