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강릉 28.0℃
  • 구름많음서울 24.5℃
  • 구름조금인천 22.8℃
  • 맑음원주 24.9℃
  • 맑음수원 24.5℃
  • 맑음청주 25.4℃
  • 맑음대전 25.8℃
  • 맑음포항 27.2℃
  • 맑음대구 26.1℃
  • 맑음전주 26.7℃
  • 맑음울산 22.5℃
  • 맑음창원 22.8℃
  • 맑음광주 25.0℃
  • 구름조금부산 21.0℃
  • 맑음순천 23.0℃
  • 맑음홍성(예) 23.7℃
  • 구름조금제주 18.9℃
  • 맑음김해시 23.5℃
  • 맑음구미 26.7℃
기상청 제공
메뉴

(부산일보) 고흐가 그린 밤하늘, 천문학자가 추적하다

■천문학이 발견한 반 고흐의 시간/김정현
기존 고흐 연구 뒤집는 새로운 주장
지식·현장 답사로 작화 시점 이의 제기

가끔 진행되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조사를 보면, 빈센트 반 고흐는 늘 빠지지 않는다. 그의 진품을 볼 수 있는 내한 전시는 10년에 1번 정도로 드물게 열리고, 유럽과 미국 유명 미술관이 소장한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한정적이다. 그럼에도 고흐와 연관된 전시도, 그의 작품을 활용한 아트 상품은 여전히 막강한 대중성을 가지고 있다.

 

미술과 여행 분야를 오래 취재한 덕분에 미국, 유럽에서 고흐의 그림들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많았다. 유명 작품을 실제로 보면, 의외로 “생각보다 평범하네” “책에서 본 그대로다”라는 느낌이 많다. 아마도 학창 시절 화려한 형용사로 묘사한 그림에 관한 설명이 선입견을 만들었던 것 같다. 다행히 고흐의 그림은 볼 때마다 놀라웠다. 그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그린 정물, 풍경, 인물화는 신기하고 신비했다.

 

<천문학이 발견한 반 고흐의 시간>은 사실 반 고흐라는 단어에 꽂혀 읽기 시작했다. 직업, 전공과 관계없이 평소 인문학 철학 예술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분야 전문가를 능가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라 저자가 천문학자라는 사실이 특이점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천문학적 지식과 배경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고흐 그림의 매력을 설명하는 책부터 다양한 해석, 고흐와 테오 형제의 편지, 고흐의 삶과 그림 등 고흐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지만, 이 책만큼 신선한 접근은 처음이다. 그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일 듯하다.

 

저자는 현대 과학 도구(천문 시뮬레이션, 하늘 각도 측정, 시간 변환, 3D 설계 모형)를 활용해 고흐 그림 속 밤하늘을 분석한다.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밤의 카페테라스’를 비롯해 ‘별이 빛나는 밤’ ‘론강의 별밤’ 등은 정확히 언제 그려졌는지 기록이 없다. 선행 연구자들의 추정치가 있지만, 저자는 자신의 천문학적 지식과 최신 기술을 이용해 기존 연구를 뒤집는 새로운 작화 시점을 발표한다.

 

고흐가 그림을 그린 곳으로 여러 번 답사를 떠나고 현장에서 직접 실험을 하기도 한다. 고흐가 살았던 당시 천문도와 그곳에서 볼 수 있는 별자리와 달의 모양, 위치 등을 통해 거장의 그림에 숨은 비밀을 객관적으로 밝혀낸다. 과학에 관심이 없거나 기본 정보가 없는 독자라면, 따라가기 힘든 부분도 가끔 있다. 다행히 관측 도구, 실험 내용을 담은 영역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저자는 각 장마다 쉬운 문장으로 자신의 주장을 요약해 준다.

 

그렇다고 이 책이 천문학적 내용만 담은 과학 도서는 아니다. 책의 많은 부분은 고흐가 남긴 편지, 그의 가족과 동료(후원자)가 남긴 글, 고흐에 관한 논문 등 방대한 기록을 통해 그 어떤 책보다 고흐의 내밀한 모습을 찾아냈다. 반 고흐와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 110여 점, 우주를 담은 천체사진과 그림 사진 60여 점을 통해 독자는 당시 고흐가 바라본 진짜 하늘을 볼 수 있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의문을 해소하고자 저자는 6년에 걸쳐 고흐 별자리 그림을 추적했고, 마침내 정설로 여겨지는 ‘양자리’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날짜가 6월 19일이 아니라 7월 하순경이라는 사실을 하나씩 검증해나간다.

 

책 사이에 등장하는 계절별 별자리 찾기, 북극성 위치와 과학적 의미, 일상에서 가볍게 할 수 있는 천체관측 방법에 대한 설명은 천체 관측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일상의 취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무엇보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에 담긴 하늘과 같은 모습을 우리나라에선 언제 볼 수 있는지 알려 준다. 고흐 팬으로서 특별한 비밀 하나를 알게 된 것 같다. 김정현 지음/위즈덤하우스/520쪽/2만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