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포(唐浦)로 가는 ᄆᆞᆯ질(말길) 통로 제주목장은 원나라와 명나라에 대한 공마 공급지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다. 조선에 들어서도 탐라순력도 공마봉진(貢馬封進)에서 보듯 제주도는 매년 300필에서 많을 때는 1000여 필이 넘는 말을 보내야 했다. 남도영의 제주목장사(2003)를 근거로 한 제주향토문화사전(김찬흡 편저, 2014)에 의하면 1398년 4414필, 1446년 1만여 필, 임진왜란 이후인 1604년 4800필 등을 실어 보냈다 한다. 고려와 조선 그리고 중국의 당·송에 이어 원·명 시대를 거치며 수십만 마리의 제주마들이 여러 포구를 통하여 본토와 중국으로 실려 나갔다. 말들이 실려 나간 여러 포구 중 하나로 추정되는 포구가 당캐이고, 당캐로 향하던 말들이 다녔던 길이 지금 우리가 명품길로 여기는 아주 자그마한 돌빌레 소롯길인 ᄆᆞᆯ질이다. 여러 국유목장에서 길러진 말들을 당캐로 몰고 가려면, 우선 남반내 얕은 계곡을 건너 군산 오름 근처의 흰돌ᄆᆞ루를 올라야 한다. 주변 지대가 대부분 현무암으로 검은색을 띠는 데 반해, 이곳은 하얀 빛깔을 내는 돌들이 더러 있어 흰돌루로 불려온 동산이다. 말들은 긴 동산이란 의미를 지닌 진ᄆᆞ루를 거쳐, 박수기정
가지 않은 길을 가듯 찾아간 앞막은골 도처에는 비경과 비사가 들어차 있었다. 기암괴석으로 막힌 동굴이라는 의미를 지닌 마궁굴 암자, 마궁굴 안쪽에 위치한 안마궁굴폭포와 ᄀᆞ래소(沼), 그리고 계곡 남서 급경사 수림지역에 숨겨진 계단식 담장은 앞막은골의 백미이다. 곡식을 빻을 때 돌아가는 ᄀᆞ래(맷돌)처럼 폭폭수가 휘돌아간다는 의미를 지닌 ᄀᆞ래소에는 뱀장어 등 민물고기들의 낙원이었다고도 전한다. 청정지역인 이곳은 또한 반딧불이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수풀에 가려있던 계단식 농경지와 ᄆᆞᆯ질로 이어지는 담장길이 서서히 우리 앞에 드러나고 있는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수풀에 가려진 계단식 담장길의 용도 월라봉 역사문화 걷는길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질토래비 답사팀은 앞막은골 서쪽 경사면을 오르다 수풀로 우거진 곳에서 계단식 담장들을 만났다. 예사롭지 않은 수풀 속 담장들을 얼추 정비하니, 오래전 이곳에는 또 하나의 다른 길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올해 초 월라봉의 역사문화 걷는길을 탐사하기 시작한 이후 이곳 탐사에 동행한 사람들과 수풀이 우거진 월라봉 도처를 헤치며 걷고 또 걸었다. 수풀에 묻혀있던 계단식 담장길의 종착지는 감산리에서 대평포구로 향하
제주의 여름을 금빛 선율로 물들일 2021 제주국제관악제가 8일 '섬, 그 바람의 울림!'을 주제로 화려한 막을 올렸다. 이날 오후 7시30분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개막공연은 이동호의 지휘로 제주특별자치도립 서귀포관악단과 플루티스트 최나경, 보컬리스트 박기영, 피아니스트 김지민, 트럼펫 임승구, 트롬본 정선화의 협연으로 시작됐다. 이어 제주도립합창단(지휘 김정연), 서귀포합창단(지휘 최상윤), 광주광역시립합창단(지휘 김인재)과 테너 문순배, 바리톤 김대수 등이 바통을 이어받아 베토벤 9번 ‘합창 교향곡’ 4악장이 선보였다. 오는 15일까지 8일간 진행되는 올해 행사는 제주문예회관과 제주아트센터, 서귀포예술의전당, 천지연폭포 야외공연장, 제주돌문화공원, 사려니숲 야외무대, 예술곶 산양, 세계자동차·피아노박물관 등 제주 곳곳에서 펼쳐진다. 매일 오후 8시 제주문예회관,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는 국내 젊은 관악인들의 독주무대와 전문앙상블, 관악단, 국악 관악기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14일과 15일 오후 2시에는 제주문예회관에서 청소년과 동호인 관악단을 위한 특별무대가 펼쳐진다. 관악제 기간 제주아트센터에서는 제16회 제주국제관악콩쿠르 예선이 트럼펫, 호른, 테
논이 귀했던 제주도에서는 대개 논농사에 필요한 물을 관리하는 사람을 ‘답하니’라 부른다. 또한, 논과 논들을 연결하는 물골에서 논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는 곳을 ‘물코’라 부른다. 물고랑의 흙으로 물코를 열기도 닫기도 하며 물의 양을 조절했다. 답하니는 모내기에서 수확까지 논을 관리하고 물을 조절하는 일과 논에 우마가 다니는 것을 막는 일을 담당했다. 답하니의 품삯으로는 벼를 주기도 했는데, 이를 ‘켓곡식’이라 했다. ▲답회 후손들과의 면담 지난 6월, 안덕주민자치위원회 양재현 위원장의 소개로 답회의 전 회장인 이광언(1939년생)님과 전 재무·총무인 고완수(1945년생) 부부와 면담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광언씨는 1927년부터 기록된 답회 회칙과 회장단 명단 등, 여러 장부를 간직하고 있었다. 답회 회칙에는 수감(水監:물감독관)과 역원(役員:노동자), 수동수율(水洞修律:물웅덩이 수리공 규칙)의 역할 등이 제시되고 있었다. 1830년대 김광종은 지금의 17㏊(5만여 평)의 논밭보다 더 많은 논을 개척하려 했으나, 화순리 서쪽 지경은 조상의 혈과 정기가 전해지는 곳이라 하여 더이상 확장할 수 없었다고 전한다. 고완수 부부는 30년 동안이나 별포제라 불리어온,
질토래비 ‘제주 역사·문화의 길을 열다’ 연재가 어느덧 100회를 맞이했다. 제주의 역사문화 공유에 대한 가치를 응원해 주는 독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도 제주의 숨은 비경과 비사를 찾아 지면으로 소개하는 일에 기꺼이 소임을 다하련다. ▲황개천 관개수로(灌漑水路) 관개수로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논밭에 대는 통로이다. 안덕면 화순리(번내) 610번지 일대인 황개천을, 1653년 편찬된 탐라지에는 한개(大浦)로, 18세기에 발간된 제주읍지에는 항포(抗浦)로 표기되어 있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조간대(潮間帶)인 이 지역을 마을에서는 ‘황개천·개창·항개창’이라 부른다. 이 지역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는데, 그가 바로 김광종(1792~1879)이다. 김광종은 도채비빌레라는 지대 주변의 암반을 뚫어 만든 수로를 이용하여 황개천 일대를 5만여 평의 논밭으로 만들어, 주민들이 쌀밥인 곤밥을 먹을 수 있게 한 선각자이다. 이러한 연유로 그는 ‘논하르방’, 최근에는 ‘곤밥 하르방’으로 불리고 있다. 밭을 논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바꿨다는 의미로, 수로가 끝나는 지점을 ‘도채비빌레’라 부르기도 한다. 당시, 삽·따비·곡괭이·정·망치 등을 이용해 절벽 밑으로 수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장 좌남수, 더불어민주당·제주시 한경·추자면)가 ㈔한국공공자치연구원 주관으로 지난 23일 서울 공군호텔에서 열린 ‘제15회 대한민국 의정대상’에서 기관부문 ‘종합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와 함께 개인부문에서 이상봉 행정자치위원장(더불어민주당·제주시 노형동을·사진)이 ‘최고위원장상’을 수상했다. 도의회는 4·3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활동 전개와 제2공항 갈등해소 특별위원회 운영 등을 통해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의정 활동을 인정받아 종합대상에 선정됐다. 이 위원장은 대규모 개발 사업장에 대한 행정사무조사를 통해 개발 사업 패러다임 변화, 숙의민주주의 실현 주민참여조례, 주민투표 조례 등 주민자치 실현을 위한 의정 활동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좌남수 의장은 “지방의회 부활 3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대한민국 의정대상을 수상하게 되어 더욱 뜻깊고, 도민 행복 증진을 위해 다 같이 노력해 주신 동료 의원들께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의정 활동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제주일보
ᄃᆞ래오름이라고도 불리는 월라봉은 표고 201m, 둘레 4186m, 면적 81만8809㎡로 감산리(1148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두 개의 화구로 이루어진 월라봉은 오랜 세월 침식을 받아 형성된 복합형 화산체이다. 오름 주변에는 오래전부터 다래나무가 많다고 하여 다래의 제주어인 ‘ᄃᆞ래’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월라는 ᄃᆞ래의 이두식 표기법에서 유래했다고도 전한다. 고구려의 달(達)에서 유래한다는 언어학적 분석도 전하는데, 도래는 ‘높다, 위대하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또 하나의 설로, 화순리에서는 월라봉 모습이 마치 달이 떠오르는 것처럼 둥근 모습으로 보인다 하여 월라봉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오름의 모든 사면은 비목, 팽나무, 탱자나무와 해송 등 잡목으로 우거지고, 남서 사면 화구 안에는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동사면 위쪽엔 대흥사라는 절이 있고, 절 남서쪽 아래에 망한이물(望漢泉)이라 불리는 샘이 2010년 전까지 용출되다가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아쉬운 점은 호산봉수터가 있는 곳은 사유지에 속하여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지정 문화재인 호산봉수터를 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월라봉 북쪽으로는 천연
▲양덕하梁德厦:1714(숙종40)~1775(영조51), 문신, 성균관 직강, 자는 대비(大庇), 본관은 제주, 한림읍 명월리에서 양임로(梁壬老)의 아들로 출생, 향공진사 양수영(梁秀瀛)의 양아들로 입양. 제주판관 오명계(吳命季)의 비리가 조정에 보고되면서 1738년(영조14)에 제주순무시재어사(巡撫試才御史) 이도원(李度遠)이 내도, 동년 8월에 과장을 열었다. 그는 이수근(李壽根), 이구성(李九成)과 함께 시취되고 이어 1739년 정시문과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했다. 벼슬은 전적·성균관 직강을 거쳐 외직으로 전라도 장성(長城)의 청암(靑巖)찰방을 역임했다. ▲양두옥梁斗玉:1914(일제강점기)~1966.,본관은 제주, 학생의 제1차 항일 활동, 혁명적 농조(農組) 준비위원회의 항일 활동. 양공백(梁公伯)의 3남으로 한경면 신창리(새-두미)에서 태어났다. 제주농업학교의 재학생들이 1931년 3월 김원요(金源堯·21, 조천)를 제적, 신창진(愼昌珍·18, 월정)과 양두옥(梁斗玉·18, 신창)에게 유급조치를 내렸다. 저항하니 담임은 경찰에게 알렸다. 김원요·양두옥·신창진 등은 3학년이 된 후 평소 소위 일본 천황의 칙어를 학교 의식 때에 봉송(奉誦)을 해도 전혀 묵
아름다운 경관인 안덕계곡·솔목천·박수기정을 품고 있는 월라봉은 오래된 마을인 감산리·대평리·화순리 또한 품고 있다. 제주도 360여 오름 중 다양한 역사문화를 품은 오름으로는 월라봉이 으뜸이라 여겨질 정도이다. 이러한 연유로 ㈔질토래비에서는 안덕면 주민위치위원회와 감산리·대평리·화순리와 더불어 지난 7월 5일, 5자(기관) 협약을 맺고 제주의 역사문화를 공유하려 지역주민들과도 함께 나서려 한다. 월라봉에 산재한 역사문화의 현장들을 찾아가려면 상당한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꽤 넓은 월라봉 역사문화의 현장을 이어주는 걷는길은 아직 조성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호산봉수터는 사유지에 있어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며,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13세기를 전후하여 제주선인들에 의해 조성된 질과 계단식 논밭을 두른 담장은 수풀에 가려 여간해선 볼 수가 없으며, 특히 김광종 곤밥하르방이 1840년 전후하여 바위를 뚫어 조성한 물길은 황폐화된 채로 방치되고 있다. 수많은 볼레낭들이 있어 볼레오름이라고도 불리는 월라봉을 최근 십여 차례 찾았다. 필자가 솔목천 심산유곡을 헤매던 어느 날엔 어딘 가에 휴대폰을 빠뜨렸다. 며칠간 폰을 찾으며 월라봉을 누볐더니
▲안치현安致賢:1920(일제강점기)~?, 일본 가라후도(樺太) 탄광에서 항일 활동, 친일 한인(韓人) 배척운동, 본관 순흥. 부친 안두문(安斗文)이 1920년 4월 19일 오사카 북구에서 그를 낳았다. 원적은 산북 구좌읍 한동리(궷-슬), 본적은 산북 용담리(한둑이)이다. 일본 가라후도(樺太)의 원백군(元伯郡)에 있는 지취탄광(知取炭鑛)에서 토공(土工)으로 일하던 중 장재술(경남)과 “한국에 대한 시국 정책에 편승하여 한국 대중의 문화 향상 도모를 우선해야 할까, 아니면 광범한 민족운동을 전개하여 한국 민족 대중의 독립사상을 앙양시키는 것을 우선해야 할까”하는 것을 논의했다. 그 결과, 대중의 문화수준 향상이 절대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선 대중의 문화수준 향상에 주력한다.”라고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 해 6월 8일 장재술 징역 3년, 안치현 징역 2년 6월의 구형이 있었다. 안치현은 상고했으나 기각되고 말았다. 1942년 6월 말 경부터 8월 초순까지는 당시 친일 단체였던 협화회(協和會) 가라후도 지취(知取)지회의 서기인 한국인 마츠모도(松本)가 지회 운영을 하면서 횡포를 부려 동포들의 비난이 집중되는 것을 알고, 장재술과 안치현은 몇몇 지회원을 권유해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