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경주 고분에서 중국식 금동허리띠장식이 출토됐다. 국내 고분 유적에서 중국식 허리띠장식이 나온 것은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 이어 두 번째다. 특히 신라 왕경인 경주에서 중국 최고급 제품을 수입해 사용했다는 점에서 신라 대외 교류사 연구에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해당 유물이 나온 곳은 경북 경주 쪽샘유적 L17호 무덤이다. 신라 고분에 있어 중요 유적으로 평가받는 월성로 유적의 바로 맞은편에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이곳을 조사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이 무덤은 주인공의 주검을 넣는 주곽(主槨)과 부장품을 넣는 공간인 부곽(副槨)을 각각 조성한 이혈주부곽식(異穴主副槨式) 목곽묘(木槨墓)다. 제작 시기는 4세기로 추정된다. 주곽 묘광(무덤 구덩이)은 길이 8.5m, 너비 4.1m, 부곽 묘광은 길이 2.7m, 너비 4.1m로 지금까지 발견된 경주지역 목곽묘 가운데 가장 크다는 게 연구소 측 설명이다. 중국식 허리띠장식은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양진(兩晉)에서 제작된 것으로, 무덤 주곽 서쪽에서 2개의 조각으로 출토됐다. 금동으로 제작됐고, 용(龍) 문양이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용의 머리는 없지만 몸통과 발, 꼬리 부분이 남아 있다. 이종훈
통일신라시대 '보당'이 경북 경주 절터에서 국내 처음 출토됐다.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는 경주 황용동에 있는 황용사(黃龍寺) 터의 서탑 터 주변 유적을 조사하다 금동제 보당을 발굴했다고 22일 밝혔다. 보당은 깃발을 매다는 기둥인 당간 부분과 당간을 아래서 받치는 지주부와 기단부로 나뉜다. 출토품은 당간과 기단부만 남은 모습으로 나왔는데, 두 부분을 합친 길이는 110㎝ 정도다. 국내에서 보당은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용머리 달린 고려시대 금동 용두보당(국보 제136호, 높이 73.8㎝)이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출토품은 이 보다 크고 제작시기도 앞선다. 보당이 나온 서탑 터 주변에선 회랑과 건물터, 석축, 석렬 등도 잇따라 드러났다. 이곳에선 2018년 절터에서 처음 나왔던 통일신라시대 투조(透彫, 문양 일부에 구멍을 뚫는 조각 방식) 금동귀면 2점이 추가로 나왔고, 앞뒷다리를 뻗은 모양의 받침용 금동사자상 2점과 금동불상 옷자락 조각, 금동제 연봉, 촛대받침 등도 수습됐다. 특히 금동불상 대좌 위에 흘러내린 형상의 옷자락 조각은 직경이 30㎝가 넘어 불상 전체 높이는 1m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황용사는 경주 보문단지에서 감포 방면으로 넘어가는
트라이애슬론 유망주 고(故) 최숙현 선수의 극단적 선택을 막을 마지막 기회가 있었다. 최 선수가 숨지기 보름 전 열린 경주시의회 행정사무감사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이 기회마저도 경주시의 안이한 행정 탓에 놓쳐버린 것으로 확인됐다. 경주시의회는 지난달 11일부터 16일까지 경주시를 대상으로 행정사무감사를 벌였다. 이에 앞서 시의회는 경주시에 행정사무감사 자료를 요구했고, 시는 지난 5월 20일 자료를 제출했다. 시의원들은 이 자료를 토대로 감사를 진행했다. 해당 자료엔 각 부서별로 진정·탄원·건의 등 각종 민원처리 현황이 담겨 있다. 부서별 필수 사항으로, 지난해 1월 1일부터 지난 3월 31일까지 내용이다. 그러나 해당 부서는 최 선수 아버지가 지난 2월 6일 경주시에 제기한 민원을 누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최 선수 아버지는 당시 경주시를 직접 방문해 최 선수가 훈련 중 가혹행위 등을 당했다는 내용을 설명하고 조치를 호소했다. 이에 대해 해당부서 측은 "담당자가 여러 업무를 처리하다보니 해당 민원을 미처 감사 자료에 포함시키지 못했다"며 "의도를 갖고 고의로 누락한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당 민원이 행정사무감사 자료에 포함됐었다면 사정이 달라질
7세기 신라시대 예술을 대표하는 조각 중 하나로 꼽히는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이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1일 이 불상을 포함한 불교 관련 유물 5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 삼존상은 경주 남산 장창곡 정상 부근에 있던 불상이다. 삼존상이란 이름처럼 본존 미륵불과 좌우의 협시보살 입상으로 이뤄졌다. 불상이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인상이어서 경주 일대에선 '삼화령 애기부처'라고도 불렸다. 본존불은 의자에 앉은 자세(의좌상)로 국내 의좌상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관련 기록과 조각 양식 등을 종합하면 7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삼존상은 일제강점기 때 발견됐다.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경주 내남면 한 민가에 보관 중이던 두 협시보살상을 회수해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에 전시하던 중 1924년 10월 남산 장창곡의 어느 무너진 석실에서 본존불이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또 합천 해인사 원당암의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과 '복장전적', 공주 갑사의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사보살입상 및 복장유물'과 '복장전적'을 각각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복장(腹藏)이란 불상 제작 시 가슴 부분에 보화나 서책 따위를 넣는
경주 남산에서 1천100여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급 유물인 석불 머리가 최근 출토된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지난해 하반기 경주 남산 '약수골 제4사지'에서 지표조사를 벌인 결과, 완전한 형태의 약수골 석조여래좌상의 불두(佛頭)를 수습했다. 약수골 석조여래좌상은 머리 부분인 불두가 없고 무너진 상태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경주 남산의 불적'이란 책에 실린 그림과 사진에도 머리 부분은 없다. 최근 발굴한 불두는 훼손이 거의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얼굴엔 금박을 입힌 흔적도 남아 있고, 불두의 미간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수정으로 만든 백호(白毫)도 함께 출토됐다. 약수골 석조여래좌상은 '청와대 불상'으로 알려진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과 형태와 양식이 매우 유사한 쌍둥이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경내 대통령 관저 뒤편에 있는 청와대 불상은 지난 2018년 보물 1977호로 지정됐다. 출토된 약수골 석조여래좌상의 불두가 완형에 가깝다면 청와대 불상에 버금가는 국보·보물급으로 충분하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임영애 동국대 교수에 따르면 약수골 석조여래좌상은 청와대 불상보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교원 보직〉▷대학기본역량진단준비단장(겸직) 김유석 ▷대학기본역량진단준비단 부단장(겸직) 이영찬 ▷데이터분석센터장 전동협 ▷교육역량개발센터장 권상집 ▷학생상담센터장 겸 인권센터 행정지원팀장 류석진 ▷아시아연구원장(겸직) 정성훈 ▷미래에너지기술연구원장 류준형 ▷불교사회문화연구원장 석길암 김도훈 기자 hoon@imaeil.com
신라 최대 사찰이었던 경주 황룡사 동쪽 회랑 동편은 고승이 수행을 위해 홀로 머물거나 의례를 진행한 공간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30일 '황룡사 발굴조사보고서Ⅱ-동회랑 동편지구'를 발간하고 이같이 밝혔다. 1984년 '황룡사 유적발굴조사보고서Ⅰ'을 낸지 36년만이다. 황룡사지 발굴 조사는 1976년부터 1983년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첫 보고서에선 금당(金堂·본존불을 모신 건물)·목탑·강당·종루(鍾樓·종을 단 누각)·경루(經樓·불경을 보관하던 누각) 등 회랑 안쪽 사찰 중심부에 관한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번 보고서에는 6차(1981년)와 8차(1983년) 조사에서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진 동회랑 동편지구 조사 내용과 출토 유물을 수록했다. 이번 보고서의 조사구역은 동회랑 동편에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담장으로 구획된 4천300여㎡ 공간이다. 크고 작은 담장으로 나뉜 7개 공간에서 건물터 1∼3곳이 확인됐고, 기와·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 이곳 건물 배치나 구조 등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알려진 것들이 많지 않다. 보고서는 담장으로 구획된 독립된 공간과 그 내부에 분포한 건물지와 생활시설 등 건축 유구의 구조와 배치 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