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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70년 풀지 못한 恨 '금정굴 학살'

빨갱이 손가락질 수십년…아버지를 모실곳 아직도 없다

 

6·25전쟁 당시 인민군이 장악했던 지역
'부역자 색출'… 민간인 150여명 암매장
가족들, 수십년 차별·비판 '고통' 감내
경기도의회, 위령탑 등 추진 '20년 지연'
부동산 가격 ↓ 우려… 유해 안치 '기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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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고양시 황룡산 '금정굴'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150여명이 학살됐다. 1950년 6월 한국 전쟁 발발 이후 인민군이 이곳을 장악했을 때 그들에게 부역했다는 이유였다. 같은 해 9월에 있었던 인천 상륙작전으로 한국 전쟁의 전세가 역전됐고, 적군에게 부역한 혐의를 가진 이들을 학살한 것이다.

70년이 지난 2020년 10월15일 오전 학살로 희생된 이들의 가족 20여명이 학살의 현장에 모였다. '제70주기(제28회) 고양지역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합동 위령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해를 이곳에 안치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

이날 현장을 찾은 이병순(87)씨는 희생자 이봉린씨의 아들이다. 이봉린씨가 죽임을 당한 날은 70년 전 10월14일이다. 이병순씨가 10대였을 때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수십 년 동안 숨어 지내다시피 하면서 살았다"며 "금정굴은 어릴 때 자주 찾던 놀이터 같은 곳이었지만, 사건 이후 40여년 동안 이곳을 찾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 년간 '빨갱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 떳떳하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마을에서 농작물 재배 현황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북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정치적인 성향과는 상관없이 희생됐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이병순씨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아버지에 대해 부끄러움은 없었다"면서도 "지금은 그래도 나아졌지만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하는 '빨갱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전쟁 이후 학살 현장을 찾은 것은 학살 40년이 지난 1990년대다. 한국 전쟁 이후 40년이 지나서다. 지역 시민단체와 유가족을 중심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첫 위령제가 1993년 열렸다. 이씨는 매년 현장을 찾아 다른 유가족과 함께 위령제에 참여했다.

 

 

1995년부터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금정굴에서는 유해가 발굴됐고,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유가족은 다시 아픈 과거에 아파해야 했지만, 이를 두고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999년 경기도의회는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금정굴 사건에 대해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분 아래 경찰 주도로 우익단체가 가세해 다수의 민간인을 불법 학살 암매장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와 함께 경기도의회는 유골 수습·안치와 위령탑 건립을 건의했다.

20년이 지났지만 경기도의회 건의는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보훈단체 등이 위령사업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사업이 지연됐고,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출범했고 금정굴 사건에 대해서도 다뤘다. 2007년 진실화해위도 금정굴 사건이 불법학살이라고 규정했다.

경기도의회와 진실화해위가 불법 학살과 억울한 희생임을 밝혀냈지만, 유해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 대다수 유가족은 "유해가 이곳에 안치되길 바란다"고 했다. 유족의 바람과는 달리 1995년 발굴된 유해는 안치할 곳이 없어 서울대학교병원 법의학교실에 보관됐다.

이후 고양시 청아공원 납골당, 하늘문공원 납골당을 거쳐 현재는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돼 있다. 유족들은 명절 때마다 유해가 안치된 곳을 찾아 성묘를 지내기도 했다.

20년 전과 같이 유가족에게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적어졌지만, 이곳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유해가 이곳으로 오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 고양시의원은 금정굴 희생자 유해가 황룡산으로 이전하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다른 방식으로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병순씨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빨리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한다"고 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

사진 : 김도우기자

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