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학생만세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독립운동가이자 저항문인인 이석성(본명 이창신1941~1948·사진) 선생의 작품이 일본에 공개돼 화제다.
일본 근대문학 전공자인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에 따르면 김 교수는 최근 일본의 시 전문지 ‘시와 사상’(3월호)에 이석성 선생의 시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를 소개했다.
이 석성 시인의 시를 처음 본 것은 지난해 8월 14일. 당시 이석성 시인의 아들 이명한(89) 소설가(광주전남작가회의 고문)로부터 시를 받았다. ‘아버지가 쓰신 일본어 시가 나왔으니 일본의 독자들에게도 소개하고 싶다’는 이명한 소설가의 말이 계기가 됐다. 당시 김 교수는 이석성의 존재도 소설가와의 관계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시를 읽는 순간 “뭔가 가슴에 뜨거운 감정이 복받쳐 올라와 견딜 수 없어” 흥분된 상태였다고 회고했다.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는 이탈리아의 혁명가 말라테스타(1853~1932)가 세상을 떠난 뒤 1개월 후에 쓴 시다.
“태양은 폭군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동에서 서로 날이 새고 해가 진다/ 이런 분위기에 역사는 유전(流轉)하는 것인가// (중략) 지금 우리는 그걸 슬퍼하는 게 아니다/ 헌데 지금/ 우리가 가장 용감한 투사를 잃을 줄이야…”
혁명가 말라테스타는 19세기 아나키즘 운동에 몰두했던 이탈리아 지식인이다. 시는 이석성 선생의 지향 세계를 가늠하게 해준다.
김 교수는 이석성 작가를 더 알기 위해 이명한 소설가의 자택에서 1929년 이석성의 학생운동과 관련한 재판기록을 입수했다. 또한 문학박사이자 시인인 김선기 시문학파기념관 관장을 만나 시인으로서의 이석성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김선기 박사에 따르면 이석성 시인은 30년대 한국 문학사에서는 알려지지 않는 인물이며, 우리 지역 출신 용아 박용철과 영랑 김윤식으로 대변되는 순수문학과는 결이 다른 작품세계를 추구했던 문인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석성 선생이 소설가로도 활동을 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이후 소설 ‘제방공사’가 ‘신동아’(1934년 10월~12월호)에 게재됐다는 것을 알고는 원본을 구하기 위해 전남대 도서관에 방문했다.
“원본을 확인하는 순간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 교수는 한 문장으로 당시의 순간을 표현했다. 그러나 ‘가작 장편’인 소설이 게재된 분량은 고작 1회(신동아 10월호) 5페이지와 제2회(11월호) 5페이지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에 1회 2절의 7~8행, 2회 3절 20행 정도가 복자(伏字)로 표기돼 있었다. 복자란 인쇄물에서 내용을 밝히지 않고 공란의 자리에 ‘○’ ‘×’와 같은 표를 찍는 것을 말한다. 12월호부터는 온통 복자투성이의 도입부 페이지에 삽화만 하나 실려 있을 뿐이었다.
신동아에 실릴 당시에는 “조선총독부가 탄압을 가해 여기저기 복자 처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제방공사’가 항일저항 작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신동아’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데이터 베이스한 문장만을 보유하고 있으며 원문은 이미 폐기됐다’는 답을 들었다.
장편 ‘제방공사’는 30년대 영산강 물난리로 제방이 무너진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일제가 수탈을 하기 위해 지역민들을 제방공사에 동원하자 주인공이 시위를 주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교수는 일본 문예지 ‘시와 사상’ 4월호와 5월호에는 이석성 선생의 ‘제방공사’를 토대로 ‘조선남부의 저항작가 이석성을 읽는다-발굴의 의미를 담아’를 나누어 소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1929년 11월 나주농업보습학교 2학년(15세)이었던 이석성은 나주학생만세시위를 주도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듬해 2월 독자적으로 만세시위를 추진하다 또 경찰에 붙잡혔고 재판에 넘겨졌다. 선생은 지난 2019년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았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