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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고용사회의 유령, 청년니트]'고립' 부추기는 세대갈등

'의지 부족'만 탓하는 부모님…'외톨이'가 돼 스스로를 가뒀다

 

 

'은둔형외톨이' '니트' 부모들 협회·모임
"세상에서 도태 된다고 압박 줬던 것 후회"
인식개선·조례제정 활동… MBTI 검사도
해답찾기 보다 위로… "믿고 기다려 줘야"

 

니트 상태인 청년에게 나타나는 모습의 하나는 스스로 사회적 고립(孤立)을 택하는 것이다. 취업 준비를 한다거나, 쉬기 위해 다른 사람과 어울리거나 사귀지 않으면서 도움을 받지도 않고 외톨이가 되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외톨이가 된 청년들은 가족 구성원과도 잦은 갈등을 겪는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취업지원을 위한 청년 니트 실태조사'를 보면 니트 청년응답자 가운데 39%가 직업이나 취업 준비 등의 사안을 두고 부모와의 갈등을 겪고, 26.2%가 가족과 고민을 이야기하고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니트 상태인 청년에 대해 일반인이 가진 대표적인 부정적 인식 가운데 하나는 '취업 노력이나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니트 청년들은 '노력해도 안 되는 상황에 지쳤다'고 항변한다.

이러한 세대 갈등은 가장 작은 사회 구성단위인 '가족'으로도 전이된다. 부모는 고립 상태에 있는 자녀가 못마땅하고, 자녀는 그런 시선이 불편하다.

니트 상태의 청년에게는 가족과의 신뢰 관계를 이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니트 청년 일부는 사회적 고립을 택한 '은둔형 외톨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부모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자녀와의 갈등을 극복하려는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주상희(59)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는 마라톤코스를 100m처럼 달리다가 번아웃(정신적 육체적 탈진)되어 고립된 상태에 있는 청년"이라며 "이미 내적 동기가 소진된 상태이기에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들은 자기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주상희 대표 또한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고 있는 30세 자녀의 부모다. 주씨는 비슷한 처지의 부모들과 함께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를 창립해 은둔 청년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상담·치유 프로그램, 직업훈련, 인식개선·권익보호를 위한 조례 제정 등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자녀가 은둔하게 된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았다. 그는 1997년 IMF 금융위기를 겪으며 구조조정을 당해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그 힘든 시기를 겪으며 자신에게 생긴 '살아남아야 한다'는 식의 강박이 그의 자녀까지 힘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IMF 금융위기로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났고, 생활도 힘들어 양육은 뒷전이었다. 아들에게 '이 정도도 못하면 세상에서 도태되고 만다'는 식으로 여느 부모와 같이 미래에 대한 압박을 주었던 것 같다"고 후회했다.

그의 아들의 은둔 생활은 수능을 앞둔 고3 어느 날 '배가 아프다'며 등교를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진학한 뒤 학교 적응에 실패했고 은둔이 계속됐다. 보다 못한 그는 집에 혼자만 있던 아들을 병원에 강제 입원시키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아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이어지는 등 자녀와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그런 자녀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것은 주씨의 신뢰와 사랑이었다. 그는 극단에 몰리고 나서야 일을 쉬고 아들 곁에 있어줬다. 몇 달을 말없이 아들의 몸을 씻겨 주면서 기다렸고 대화의 물꼬가 텄다. 그는 "돌이켜보면 자녀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부모는 강요 말고 자녀의 선택을 기다려라!"

지난달 17일 오후 2시, 니트 청년 부모들의 모임인 '니트 부모교류회'가 온라인으로 모임을 개최하고 서로의 속내를 듣는 자리가 마련됐다. 경기·인천 등 수도권과 전국 각지에 있는 니트 부모들이 참여했다.

이날 프로그램은 '성격유형검사(MBTI)로 알아보는 부모와 자녀'라는 주제로 전문가 특강을 듣고 부모와 자녀의 성격유형을 비교 분석하며 서로의 문제점을 탐구했다. 또 자신들이 겪은 일상과 고민을 이야기하며 서로에게 힘이 돼 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이날 대화에서 '은둔 고등학생 자녀의 자퇴 문제'를 놓고 부모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니트 자녀를 둔 A씨는 "성적이 우수했던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면서 은둔에 들어갔다"며 "3학년이 돼서도 학교를 며칠 다니다가 안 가서, '그럴 바엔 자퇴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한 것이 도리어 화근이 돼 이제는 부모와 대화도 거부한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A씨의 고민을 들은 다른 부모들은 자신들이 먼저 겪었던 상황을 말하며 "졸업은 꼭 해야 한다고 강요한다거나, 또 자퇴해도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뭐 해볼래' 정도의 조언이라도 아이 자신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강요로 느낄 수 있다", "믿고 기다려 주는 게 맞다. 아이 스스로 힘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등의 대화를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이들은 각자 해답을 찾기보다는 서로가 위로받으며 세상에 나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들은 '부모가 힘이 나면, 아이도 변할 것'이라고 믿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글 : 양동민, 김성호차장, 이여진기자

사진 : 김도우 기자

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