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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유럽 인문학 기행] 악마와의 내기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유럽인문학기행-독일] 쾰른 대성당

1164년 쾰른의 대주교 ‘다셀의 라이날드’는 이른바 ‘동방박사 3인의 유해’를 얻게 됐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레데릭 바르바로사가 이탈리아 밀란의 산유스토르지오 대성당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유해는 종교적으로 매우 귀중한 것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순례자가 참배하러 몰려들었다. 라이날드 대주교는 유해를 모실 대성당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쾰른 대성당이었다.

 

공사는 1248년 콘라드 대주교 때 시작됐다. 공사를 맡은 건축가는 당대 최고로 소문난 게르하르트였다. 그는 공사 도중 추락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러자 이상한 소문이 돌게 됐다. 게르하르트가 악마와 내기를 하다 죽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쾰른 대성당과 게르하르트를 둘러싼 전설이다.

 


 

■대공사의 시작

 

1248년 ‘예수 승천일’ 전날 밤이었다. 쾰른의 한 건축가가 쿤라드 대주교에게 쾰른 대성당 신축 계획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라일의 게르하르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건축가였다.

 

“쾰른 대성당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 될 겁니다.”

 

콘라드 대주교는 게르하르트가 펼친 도면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비록 설계안에 불과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성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훌륭한 설계도군요. 내일부터 당장 공사를 시작합시다. 시간을 끌 필요가 있나요?”

 

새 쾰른 대성당이 들어서기로 한 자리에는 원래 프랑크족 왕이 지은 성당이 있었다. 오래 전 노르만족의 침입 때 파괴돼 처참한 모습을 한 채 내버려져 있었다.

 

새 대성당 공사는 다음날 예수 승천일부터 바로 시작됐다. 공사에는 수천 명의 인부가 매달렸다.

일거리가 없어 늘 놀기만 하던 지역 주민들은 성당 공사장에서 하루 품삯을 챙겨갈 수 있게 됐다. 공사를 지켜보는 쾰른 주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게르하르트를 칭찬했다.

 

“이 사람은 천재 아니면 천사임에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이 사람 덕분에 쾰른 경제가 살아나지 않았나!”



 

 

쾰른 대성당 성가대석이 완성됐을 때 많은 순례자가 이웃 도시에서 몰려들었다. 성당에 모시기로 한 동방박사 3인의 유해를 참배하려는 먼 나라의 순례자들도 앞 다퉈 쾰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때문에 아직 미완성 상태인 대성당의 복도에서는 매일 하루 종일 찬송가와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졌지만 뜻밖에도 게르하르트는 우울했다. 불길한 생각이 늘 그의 머리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그를 괴롭힌 고통의 이유는 한가지였다. 죽기 전에 대성당을 완성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었다. 사실 이런 대규모 성당을 불과 수십 년 만에 건설한다는 것은 하느님이나 악마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이 위대한 건물이 완성되는 모습을 살아서 볼 수 있을까? 엄청난 승리의 달콤함을 맛보기 전에 잔인한 운명이 나를 찢어버리게 될 거야. 이 생각만 하면 밤이나 낮이나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구나!’

 

게르하르트의 젊은 아내는 괴로워하는 남편을 보면 너무 안타까웠다. 그녀는 매일 밤 부드러운 말로 남편의 고통을 달래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게르하르트는 힘든 생각이 들 때마다 일꾼들에게 더 열심히 더 빨리 일을 하라고 재촉했다. 이렇게 해서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일을 서두른 덕분에 쾰른 대성당 북쪽 탑은 이미 하늘 높이 뾰족한 콧대를 올렸고, 공사에 필요한 비계는 매일 더 높이 올라갔다.

 


 

■악마와의 내기

 

어느 날 저녁 게르하르트는 여느 때처럼 큰 비계 옆에 서 있었다. 드라헨 지역의 채석장에서 가져온 거대한 석조 구조물이 제대로 올라가는지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내가 죽기 전에 공사를 마무리할 수도 있을 텐데….’

 

게르하르트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공사 속도를 높일 수 있을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얼마가 골똘히 명상에 잠겼던지 아주 잔혹해 보이는 미소를 띤 낯선 사내가 곁에 나타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사내는 불타는 것처럼 빨간 외투를 두르고 있었다. 가슴에는 황금 체인이 걸려 있었고, 진기하게 보이는 모자 끝에는 수탉 깃털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다 알고 있다네. 쾰른의 대건축가 게르하르트 씨.”

 

게르하르트는 옆에서 들려온 낮으면서도 잔인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 명상에서 깨어났다. 그는 곁에 서 있던 사내에게서 밀려오는 아주 차가운 냉기에 몸을 떨었다.

 

“누구신가요?”

 

“당신은 아주 훌륭한 성당을 짓고 있군. 정말 멋져. 진심이야. 대단한 성당이야.”

 

게르하르트는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누구인지를 몰라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가 한마디를 던질 때마다 마치 얼음 바늘로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같은 차가운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자네가 짓고 있는 대성당보다 훨씬 아름다운 저택을 아주 오래 전에 이미 만든 적이 있지. 그 저택의 돌은 부서져 먼지로 돌아가는 일이 절대 없도록 돼 있어. 시간과 날씨의 영향에 저항해서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지.”

 

게르하르트는 낯선 사내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옆에 와서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인지 귀찮기만 했다. 그는 사내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경멸스러운 눈초리로 훑어보았다.

 

“자네의 성당은 말이야, 정말 대단한 건축물이 될 거야. 그런데 자네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나? 이 성당은 죽어야 하는 운명인 인간에게는 너무 어마어마한 건축물이라고…. 그리고 자네가 초석을 놓은 이 건물이 완성되는 순간을 보지 못하게 누가 방해하는 건 아닌지….”

 

 

 

게르하르트는 사내가 왜 저런 말을 계속 하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낯선 사내의 공격적인 언사에 게르하르트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그는 사내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누가 나를 방해한다는 거요?”

 

“바로 죽음이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요. 나는 한 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장을 보는 성격이지. 악마하고 내기를 해도 이길 수 있어.”

 

“빙고!”

 

낯선 사내는 악마라는 이름이 게르하르트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껄껄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렇지! 자네 같은 사람이 정말 진짜 남자야. 나는 자네처럼 용감한 사내와 내기를 하고 싶어. 나는 자네가 대성당 공사를 마치기 전에 트레베스에서 쾰른까지 운하를 판 다음 오리가 그 운하를 헤엄쳐 오게 할 수 있다네. 어때, 나랑 내기를 해 볼까?”

 

“좋소. 내기를 합시다.”

 

화가 잔뜩 난 게르하르트는 앞뒤를 재어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내기를 하자고 했다. 그는 낯선 사내, 즉 악마가 내민 손을 잡고 말았다. 악마의 손은 마치 얼음처럼 차가왔다. 그의 손을 건드리는 순간 게르하르트의 가슴에 공포라는 감정이 밀려 들어왔다. 악마는 낄낄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는 천지를 압도하는 무거운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기억하게, 게르하르트. 우리는 영혼을 걸고 내기를 한 것이라네.”

 

악마의 괴성을 듣자 그 무게와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게르하르트의 온 몸을 떨게 만들었다. 이마에는 냉혹할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내기는 취소요’ 라는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입은 얼어붙은 듯 열리지 않았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일었다. 악마는 빨간 코트를 추스르고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날 이후 게르하르트의 마음은 더욱 우울해졌다. 그는 불안한 기색을 숨지지 못하고 하루 종일 비계를 계속 오르내렸다. 대성당의 규모를 생각할수록 과연 악마보다 먼저 공사를 끝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졌다. 게르하르트는 관리실에 앉아 있지 않고 작업자들 속에 들어가 일을 도왔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게으른 인부는 힐난하고 성실한 인부는 칭찬하면서 그들과 함께 공사장에서 돌 하나라도 더 날랐다.

 

게르하르트는 일을 하다 말고 트레베스 쪽을 쳐다보곤 했다. 트레베스는 오늘날 트리어 지역이다. 쾰른에서 150㎞나 떨어진 곳이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운하는커녕 조그마한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와 내기를 한 낯선 사내도 보이지 않았다.



 

 

 

■위기의 건축가

 

몇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게르하르트는 이미 완성된 탑 중 한 곳에 올라가 공사장 전체를 살펴보고 있었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내기를 한 낯선 사내, 즉 악마가 빙긋 웃으며 서 있었다.

 

“게르하르트! 공사는 어떻게 돼 가고 있나? 상당히 진척된 것 같군. 그런데 어쩌나? 나는 조만간 운하 공사를 끝낼 예정이거든. 아무래도 내가 내기에서 질 가능성은 없는 것 같군. 낄낄.”

 

게르하르트는 조롱하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당신의 허풍을 하나도 믿고 싶지 않군. 어제까지만 해도 공사를 한 흔적이 하나도 없던데 어떻게 공사를 곧 끝낸단 말이지.”

 

“그걸 모르고 있는 모양이군. 나는 혼자라도 일꾼 100명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다시 말하자면 내 일은 거의 준비가 다 됐지.”

 

“거의? 당신이 어떤 대단한 마법으로 그렇게 하는지 알고 싶군.”

 

“원한다면 가르쳐 주지. 나를 따라오게.”


 

 

 

악마는 한손으로 게르하르트의 어깨를 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치 번개처럼 순식간에 먼 거리를 날아 트레베스에 갔다. 그들이 내린 곳에서는 온천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뜨거운 물이 바위의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마치 크리스탈처럼 반짝이며 분출되고 있었다. 악마는 작은 동굴로 들어갔다. 게르하르트는 서너 걸음 뒤에서 그를 따라갔다. 동굴 안에서는 온천수가 흐르고 있었다. 온천수는 지하로 연결돼 있는 검은 운하로 흘러들고 있었다.

 

“보게나, 내가 얼마나 시간을 잘 활용했는지를. 자네가 원한다면 온천수를 따라가 보도록 하지. 온천이 얼마나 멀리까지 흐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거야.”

 

악마는 말을 마치자마자 게르하르트를 데리고 다시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날았다. 그들이 간 곳은 바로 쾰른 시내 한복판이었다. 그제야 게르하르트는 악마가 운하를 곧 완성하게 됐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됐다. 그는 악마의 엄청난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마는 게르하르트의 실망한 표정을 보고는 매우 즐거워했다.

 

“게르하르트. 당신이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지 않나? 우리의 내기에 따라 당신은 곧 나의 운하에서 오리들이 꽥꽥거리며 물장구를 치는 모습을 보게 될 거야. 내가 박수를 세 번 치면 말이지.”

 

악마는 박수를 세 번 치고는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박수로 부르려했던 것은 오리였다. 악마의 얼굴은 분노와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다시 박수를 세 번 쳤다. 이번에도 오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화가 난 악마는 엄청나게 크면서 기괴한 소리를 지르더니 펑 하고 사라져버렸다. 그 뒤에는 아주 지독한 유황 냄새만 남아 있었다.

 

게르하르트는 서둘러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악마가 운하 공사를 계속한다면 목숨뿐 아니라 영혼의 구원도 위태롭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오리였다. 오리가 운하를 헤엄쳐 쾰른까지 가지 않는다면 악마가 이길 수 없었다. 그는 왜 오리가 악마의 부름에 대꾸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굳이 발설할 생각은 없었다.

 

‘내게는 이제 아주 작은 마지막 희망이 남아 있어. 오리가 온천수가 흐르는 지하 운하를 따라 쾰른까지 헤엄쳐 갈 수 있는 방법을 악마가 모르게 해야 돼. 용기를 내자.’

 

게르하르트는 지친 모습으로 집에 돌아갔다. 젊은 아내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가 짜증난 듯이 계속 물었지만 게르하르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남편 비밀을 넘긴 아내

 

며칠 뒤였다. 학자로 꾸민 낯선 사내가 게르하르트의 집 문을 두들겼다. 사내는 보라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모자에는 수탉 깃털이 달려 있었다. 바로 악마였다. 그때 마침 게르하르트는 대성당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있느라 집을 비운 상태였다.

 

“게르하르트 씨를 만나러 왔답니다.”

 

“남편은 지금 공사장에 가서 안 계십니다.”

 

악마는 아주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아내는 그의 말솜씨에 홀랑 넘어가고 말았다. 그녀는 최근 남편이 너무 우울한데다 말도 잘 안 한다며 걱정을 털어놓았다.

 

“이런, 사모님 걱정이 크시겠군요. 아마 우울증 같군요. 이유를 알 수 있으면 제가 치료해 드릴 수 있지요. 사모님이 아주 다정하게 사랑을 담은 목소리로 이유를 물어보신다면 머지않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남편이 그래도 말을 안 한다면 제가 사흘 뒤에 약을 하나 드릴게요. 사람이 속마음을 털어놓게 하는 약이지요. 이 약을 남편에게 먹이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거랍니다.”

악마는 약속했던 대로 사흘 뒤 다시 게르하르트의 집을 찾아갔다.

 

“사모님, 남편이 고민을 이야기하던가요?”

 

“아니요. 전혀 이야기를 안 하네요.”

 

“이런 낭패가 있나! 그럼 제가 지난번에 말한 대로 약을 드릴게요. 남편이 잠들기 전에 약을 마시게 하세요. 그러면 남편은 꿈을 꾸면서 속마음을 털어놓게 될 겁니다. 그 이야기를 나중에 제게 해 주세요.”

 

게르하르트의 아내는 아주 감사한 마음으로 약을 받았다. 그녀는 약봉지에 적힌 대로 약을 적당히 덜어내어 물에 타 놓았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게르하르트는 아내가 건네준 물을 아무런 의심 없이 마셨다. 그리고 곧 깊은 잠에 들고 말았다.

 

게르하르트는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계속 악몽을 꾸었기 때문이다. 그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연거푸 소리를 질렀다. 그는 악마와의 거래를 잠꼬대로 재연하고 있었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아내는 깜짝 놀랐지만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고 계속 잠꼬대를 들었다.

 

“내가 비밀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악마는 절대 이길 수 없어.”

 

아내는 잠꼬대를 하는 남편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을 건넸다.

 

“그 비밀이 무엇인가요?”

 

“1㎞마다 공기구멍을 만들지 않는 한 오리가 죽지 않고 그 먼 지하 운하를 헤엄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

 

다음날 학자로 변장한 악마가 게르하르트의 집을 세 번째 방문했다. 아내는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전날 밤 들은 남편의 잠꼬대 내용을 모두 그에게 이야기해주고 말았다.

 

“낄낄, 정말 고맙군. 남편의 영혼을 팔아 남길 비법을 악마에게 아주 상세하게 일러주다니. 이렇게 되면 일거양득이군. 게르하르트의 영혼은 내기에서 이긴 덕에 가져가고, 당신의 영혼은 남편을 팔아넘겼기 때문에 가져갈 수 있으니 말이야. 낄낄낄.”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악마는 본래의 정체를 드러냈다. 아내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너무 놀라 얼굴이 노래진 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비극적인 결말

 

다음날 게르하르트는 평소처럼 대성당의 기중기 옆에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황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불길해 보이는 검은 구름이 라인 강 너머에서 몰려오기도 했다. 그는 불안해졌다. 일꾼들에게 더 빨리 서둘러 일을 하라고 재촉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게르하르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악마였다. 빨간 화염이 그의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게르하르트의 얼굴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졌다. 그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덜덜 떨기 시작했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도무지 입이 열리지 않았다.

 

이겼다는 기쁨에 사로잡힌 악마는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그리고 게르하르트의 머리를 억지로 눌러 그곳을 바라보게 했다. 성당 바로 아래로 은색 운하가 흐르고 있었다. 오리들은 꽥꽥 거리며 운하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게르하르트가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를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도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기는 순간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에 남은 것은 오직 절망과 고뇌뿐이었다.

 

악마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면서 게르하르트를 노려보았다. 악마는 손을 뻗어 그를 잡으려 했다. 게르하르트는 그 손길을 피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을 지르며 비계 끝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비계 아래 까마득한 곳으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때마침 하늘을 찢어놓을 것처럼 무시무시한 천둥소리가 쾰른 시내를 뒤흔들어놓았다. 악마는 눈 깜짝할 사이에 빛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천둥은 점점 심해졌다. 잠시 후 번개가 게르하르트의 집을 내리쳤다. 집 한가운데에서 큰 불이 나더니 한 시간도 안 돼 다 타버리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게르하르트가 세상에서 가장 큰 대성당을 짓겠다며 만든 설계도도 함께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쾰른 대성당은 600년이 흐르도록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었다. 벽과 탑은 시간이 지나면서 부식하기 시작했다. 미완성인 성당의 탑에 자정 무렵이면 게르하르트의 영혼이 나타난다거나, 밤이면 누군가가 고통스럽게 탄식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쾰른 사람들은 게르하르트가 목숨을 걸고 건설하려 했던 대성당이 완공되지 못한 것을 한탄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성당은 미완성인 채로 1322년 봉헌식을 열었다. 공사는 1560년 중단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1880년 마침내 완공됐다. 이후에는 게르하르트의 귀신도 나타나지 않았고, 이상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됐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