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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가슴 시원해지게 걷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합니다

문무대왕비가 호국룡 되어 잠겼다는 울산 대왕암
아찔 출렁다리 건너 전설바위길 걸어 대왕암으로
고래 잡던 너븐개 지나 슬도까지 바닷가 힐링 걷기

 

그냥 걷고 싶은 날이 있다. 땀이 날 만큼 빠르게 운동하듯 걷는 것 말고, 느릿느릿 산책하듯 걷고 싶은 날 말이다. 걷는 길에 멋진 풍경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힐링이 될 것이다.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더 쾌적했다. 가슴은 뻥 뚫린 듯 시원해졌다. 울산 대왕암공원에서 즐겁게 걸었다. 그곳에는 출렁다리의 스릴도 있다.

 

아찔 출렁다리 건너 해안길 따라 대왕암으로

 

‘대왕암’을 만나러 울산시 동구 일산동 대왕암공원으로 향했다. ‘경주 대왕암’과 이름이 같아 헷갈리기 쉬운데, 다른 곳이지만 관련 깊다. 경주 대왕암은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수중릉이다. “죽은 후에 호국 대룡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동해의 대왕바위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후 문무왕의 왕비도 세상을 떠났고, 그의 넋도 호국용이 되어 동해의 한 대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됐다고 전한다. 울산의 대왕암이다.

 

오늘의 목적인 ‘느릿느릿 걷기’에 맞춰 대왕암공원 입구에서 안내도를 보며 코스를 정했다. 주차장-전설바위길-출렁다리-대왕암-바닷가길-슬도-주차장. 안내도에 적힌 소요시간은 전설바위길 약 30분, 바닷가길 약 40분이다. 미리 말하자면, 해안가 길로 오르내리며 바위들을 구경하면 시간은 더 걸린다.

 

 

주차장에서 출렁다리로 직진하는 길이 있지만 왼쪽 해안산책로 표지판을 따라 걸었다. 곰솔 숲이었다. 1만 5000여 그루의 해송이 자라고 있다. 고개를 뒤로 끝까지 젖혀야 나무 끝이 보일 만큼 키가 크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 온 소나무들이다.

 

상쾌한 숲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다 보면 왼쪽으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소나무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즐기다가 포토전망대에 올라섰다. 기다란 일산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옆으로 현대중공업과 민섬이 있다.

 

민섬에는 전설이 전해온다. 용궁의 근위대장과 사랑에 빠진 선녀 ‘민’이 옥황상제의 벌을 받아 바위섬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바위에 얽힌 짧은 이야기들이 곳곳 안내판에 적혀 있어 구경하는 재미를 더한다.

 

 

출렁다리 입구에 다다랐다. 길이 303m로 국내 무주탑 해상 보도 현수교로는 가장 길다고 한다. 바람이 그렇게 강한 날이 아니었는데도 다리 중간쯤에 가니 다리가 출렁출렁 움직인다. 가슴이 울렁울렁한다.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저만큼 앞서가던 이들이 잠깐 멈춰 사진을 남긴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같이 잠깐 멈춰 주위를 둘러봤다. 파란 하늘 아래 파란 바다와 파란 발밑. 이게 바다 위 출렁다리의 묘미구나 싶다.

 

출렁다리에서 빠져나온 후에 오른쪽으로 가도 대왕암에 닿지만 왼쪽 전설바위길을 계속 따라갔다. 해안 절벽을 따라 걷는 길, 기암괴석과 파도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뱃길을 어지럽히던 청룡이 갇혀 있다는 용굴에 파도가 들이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속이 다 시원해진다.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는 할미바위, 갓 속에 쓰는 탕건처럼 생긴 탕건암, 재복을 기원하는 거북바위, 사금을 채취했다는 사근방까지 ‘이야기 품은 바위’를 구경하며 해안길을 이리저리 오르내리니 지루할 틈이 없다.

 

대왕암에서 너븐개 지나 슬도 등대에 닿다

 

대왕암이 보인다. 멀리서 봐도 용신의 기개가 느껴지는 듯하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이 대왕암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가는 길 아래쪽에 해산물을 파는 좌대가 펼쳐져 있다. 해녀들이 물질로 직접 잡은 해산물을 파는 곳이라고 하는데 찾은 날이 평일이라 길고양이들만 자리를 지킨다.

 

대왕암으로 향하는 대왕교를 건넌다. 철썩철썩 바위를 때리는 파도소리가 우렁차다. 탁 트인 바다에 눈이 즐겁고, 파도소리에 귀도 즐겁다. 데크길과 계단을 따라가면 끝에 전망대가 나온다. 걷는 내내 옆에 끼고 본 바다지만 대왕암 위에서 보는 바다는 느낌이 색다르다.

 

 

돌아 나오는 길, 바위에 부딪친 파도가 데크에 물보라를 뿌린다. 마침 지나가던 어린아이들이 옷 젖는 걸 마다않고 여름철 물놀이 나온 것처럼 깔깔 웃는다. 해맑은 동심에 덩달아 즐거워진다.

 

해안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용디이 전망대가 있다. 용디이란 대왕교를 건너 만나는 큰 바위 전체, 즉 대왕암을 일컫는 말이다. 이곳에서 기다란 용머리 형상을 볼 수 있다.

 

해변으로 내려가면 너븐개라 불리는 과개안이 나온다. 1960년대까지 동해 포경선들이 고래를 이곳으로 몰아 포획했다고 한다. 동글동글 몽돌이 펼쳐져 있다. 자그락자그락 몽돌 밟는 소리가 재밌다.

 

계속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좌우가 탁 트인다. 왼쪽으로는 바다가 오른쪽으론 한적한 시골마을 풍경이다. 저 멀리 슬도등대가 눈에 들어온다. 쉼터에 잠시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출발.

 

드디어 슬도가 가까워졌다. 아기자기 벽화가 그려진 마을 담장을 지나니 소리체험관이다. 울산 동구의 문화콘텐츠를 ‘소리 9경’으로 표현해 놓은 곳이다.

 

 

동축사 새벽 종소리, 마골산 숲바람 소리, 옥류천 물소리, 현대중공업 엔진 소리, 신조선 출항 뱃고동 소리, 울기등대 무산 소리, 대왕암공원 몽돌 물 흐르는 소리, 주전 해변 몽돌 파도소리, 슬도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 초등학생이라면 VR 체험도 가능하다. 전시관을 다 둘러본 후엔 대왕암에 얽힌 이야기를 주제로 만든 4D영상을 볼 수 있다. 2층 전망데크와 체험관 앞 슬도 포토존을 놓치지 말자.

 

낚시장소로 차박장소로 유명한 슬도(瑟島)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슬도등대에 닿기 전에 먼저 커다란 고래가 반긴다. 반구대 암각화 중 새끼 업은 고래를 입체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하얀 슬도등대에 서자 섬 끝의 빨간 방어진등대가 눈에 들어온다. 나란히 선 등대는서로에게 든든한 친구 사이처럼 보여 흐뭇하다.

 

주차장으로 돌아갈 땐 슬도 입구 카페에서 커피 한잔 사들고 차도 옆 큰길을 따라 걸었다. 중간중간 표지판이 있어 초행인데도 길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3시간 ‘힐링 걷기’를 마무리했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