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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보물 298호 강진월남사지 삼층석탑 3년만에 최종 복원 공개

모진 세월 이겨낸 석탑의 위엄에 고개를 숙인다
높이 8.4m 백제계 양식 조적식 석탑
해체때 청동유물·백제기와 발견 화제

 

저편 월출산의 봉우리가 보인다. 기기묘묘한 봉우리가 빚어내는 풍경은 이채롭다. 다소 흐린 탓에 월출산의 진경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월출산을 배경으로 제 모습을 드러낸 석탑의 모습은 자애롭다. 가까이 다가가면 세상살이에 지친 이에게 품을 내줄 것도 같다. 멀찍이서 알현을 하고 찬찬히 석탑의 모습을 가늠해본다.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月南寺址 三層石塔·보물 제298호). 높이 8.4m로 백제계 양식의 조적식 석탑이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비견되는, 남도 지역을 대표하는 백제계 석탑이다.
 

강진군은 지난 2017년 4월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지난해 말 상륜부까지 조립을 완료했고 이후 안정화 모니터링을 거쳐 2월에 최종 복원이 끝났다. 석탑에는 모진 비바람과 세월의 더께가 군데군데 스며 있다. 시간의 풍화를 이겨내고 오롯이 자태를 드러낸 모습이 고적하다. 시간에 명멸되지 않는, 수다한 사람들의 역사에도 훼절되지 않는 석탑의 위엄에 저잣거리의 사람은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석탑이 자리한 곳은 월출산을 배경으로 한다. 원래 탑이 자리한 인근은 마을이 있었다. 현재는 주민들이 이주를 하고, 석탑 주위에는 휑한 터만 남아 있을 뿐이다. 마치 오래된 가요에 등장하는 ‘황성옛터’의 노랫말이 연상된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비록 월남사지와 황성 옛터의 배경은 다르지만 텅 빈 땅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애틋한 감성을 선사한다. 눈앞의 빈 터와 노랫말 속 옛터는 쓸쓸하면서도 다소 애달프다. 황성옛터가 전쟁의 참화를 드러낸다면 월남사지의 빈 터는 마치 전설 속에 묻힌 땅을 환기하는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눈앞의 월남사지 석탑은 월남사지라는 옛 절에 자리해 있었다. 현재 강진군에서 발굴 중에 있는데, 장방형의 면적은 어림잡아 수천 평은 돼 보인다. 저 땅에 깃든 남도의 역사와 이름 없는 민초들의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는 광맥처럼, 오늘의 우리에게 다양한 서사와 콘텐츠로 전이되리라.

월남사에 대한 기록을 알 수 있는 부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즉 “월남사는 월출산 남쪽에 있는데 고려시대 진각국사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그로 인해 삼층석탑이 있는 이곳이 월남사지로 추정된다. 다만 월남사가 언제 폐찰되었는지 알 수 없다. 

 

 

여러 기록을 보건대 월남사는 고려시대 진각국사가 창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토대로 월남사 삼층석탑은 13세기에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삼층석탑의 규모나 양식 면에서 부여의 정림사지석탑과 비견되는 면을 볼 때, 진각국사의 월남사 창건은 중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려초기부터 백제계 탑들이 등장했다는 사실과 부합되는 면이다.

유서 깊은 석탑의 내력을 떠올리며 탑 앞에 선다. 기단부터 탑신에 이르기까지 눈길을 준다. 날을 새워 돌을 쳐냈을 이름 없는 석공의 마음이 다가온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 탑을 바라보는 오늘날 장삼이사에까지 그 숭고한 마음이 전해오는 것 같다.

전설에 따르면 탑을 조각한 석공에게는 아리따운 여인이 있었다. 석공은 불사를 위해 떠나기 전 “불사가 끝나기 전까지 찾지 말고 집을 잘 지키고 있으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석공은 집안일은 잊고 오로지 석탑 조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독수공방하던 여인은 오매불망 석공이 그리워 견딜 수 없었다. 급기야 월남사를 찾아 몰래 그 모습을 훔쳐보았다. 그러다 석공의 이름을 불렀고, 급기야 소리를 들은 석공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하늘에서 뇌성이 울렸고 완성 직전의 석탑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고 여인은 돌로 변해버렸다. 석공은 돌로 변해버린 여인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쏟았다. 남자는 슬픔을 뒤로 한 채, 다시 석탑을 만들기 위해 정을 들었다. 그러나 주위에는 쓸 만한 돌이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남자는 돌로 변해버린 부인을 쪼아 석탑을 완성했다.

삼층석탑을 소개하는 글은 오래도록 여운을 준다. 주위를 유심히 둘러보는데 누군가 곁에 와 있다. 복원공사에 참여한 김정언 이도건설 대표다. 김 대표는 “전설을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가 깃든 국가의 문화유산이어서 원형보존을 가장 큰 원칙으로 삼았다”며 “해체 작업 당시에도 석재를 부직포는 물론 흰색 천으로 감싸 원형을 지키는 데 초점을 뒀다”고 밝혔다.

해체 공사를 할 때는 석탑 3층 탑신석 하부에서 사리병으로 추정되는 청동유물이 발굴돼 화제가 됐다. 높이 22cm, 너비 11cm에 이른다. 또한 월남사지에서 백제 기와가 다수 발견되기도 했다.

거대한 문화재 한 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다. 월남사지 복원이 끝나면 일대는 석탑과 함께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될 것 같다. 오래 전 석공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지만, 그의 따스한 온기는 수백 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에까지 이른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