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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노조, 사업장 울타리 넘어 지역사회 변화 주축”

내 삶을 바꾸는 노동조합 (상) 살맛나는 일터·지역 우리 손으로
조선 하청 비정규 노동자 큰 고통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 2017년 설립

1886년 5월 1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하루 12~16시간을 일하는 노동자들이 참다못해 8시간만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며 총파업에 나섰다.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만 30만명의 노동자가 몰렸다. 이날 파업은 세계 노동절의 효시(嚆矢)다. 그로부터 134년이 지난 2020년,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등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힘겨워하는 것은 물론이고 불이익을 받을까 노동조합 가입도 꺼린다. 본지는 세계 노동절을 맞아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해 그들의 삶과 일터를 바꾸고 있는 노동자들과 노조 결성이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상)노동자 존중받는 일터·살맛나는 지역 우리 손으로, (하)노동조합, 왜 필요한가 두 편에 걸쳐 소개한다.

 

“그동안 노동자들이 빼앗긴 건 다름 아닌 민주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였죠. 그걸 찾기 위한 방법이 노동조합 결성이었습니다.”

 

김형수(48)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은 ‘노동조합을 왜 만들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경남의 주력산업이었던 조선업이 끝모를 침체의 늪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그 고통은 가장 ‘약한 고리’인 중소 조선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다. 휴직과 대량해고 앞에 제대로 대응도 못한 채 수많은 노동자들은 삶 그 자체인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일터를 잃게 된다는 건 그 한 사람뿐만 아니라 좁게는 가족, 넓게는 지역경제 전체가 무너지는 끔찍한 일입니다. 이대로 있다간 자영업자 등 지역 공동체 전체가 무너지겠다는 생각에 힘을 모으기로 했죠.”

 

2016년 초부터 이런 생각들이 ‘씨앗’이 되었고, 그해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로 조직화된 뒤, 이듬해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로 ‘열매’를 맺었다. 조선업 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 하청 노동자들 스스로 집단화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처음 내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열매였다. 14년 넘게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일해 온 김 지회장도 이 순간을 가장 뜻깊은 순간으로 꼽는다. 김 지회장은 “하청 노동자들이 그동안 ‘밀린 월급을 달라’는 등의 기본적인 요구사항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건, 자신의 불합리함을 말하는 것 자체가 큰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며 “처음엔 노조 가입을 꺼리기도 했지만, 노동자 각자 나서 해결하지 못했던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노동조합이라는 조직화된 힘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노동자들이 공감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하청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실태 파악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일당제 노동자는 일당을, 시급제 노동자는 상여금을 없애는 방법으로 최저임금을 맞추는 ‘꼼수’를 바로잡기 위해 힘을 모아나갔다. 최근에는 지난 4·15총선 당일 돈을 받고 쉬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은 4%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통해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일수록 선거권 보장에 더 취약하다는 아픈 사실을 지역사회에 알리기도 했다. 또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3주기를 맞아 하청 노동자들이 더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조선 하청노동조합의 활동은 지역의 다른 일터로 이어지고, 지역민들의 인식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하청 노동조합이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지역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과 함께 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강조하며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김 지회장은 “우리 조합원뿐만 아니라 지역의 모든 하청노동자 권익 향상을 위한 활동이 넒게는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지역민들이 알아주셨고, 노조가 왜 필요한 것인지 공감을 얻고 있다”고 부연했다.

 

자영업을 하고 있는 박영원(31·거제시 옥포동)씨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이 많이 지역을 떠나고 난 뒤 시쳇말로 ‘죽을 맛’이다”며 “안전한 일터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는 것이 결국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것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활동이 더욱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