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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대구 앞산은 레깅스족이 점령? 레깅스 입고 등산 열풍

코로나19로 실내 활동 막히자 2030 도심 산행 열풍
레깅스, 바람막이… 간편한 옷차림, 야경 인증샷은 필수
레깅스족 불편하다는 시선도… "시선 어디에 둬야할지…"

 

지난 23일 오후 7시 반쯤 대구 남구 대명동 안지랑골 입구. 평일 저녁임에도 이곳은 차량으로 붐볐다. 공영주차장은 이미 만차인 데다 주차차량은 앞산순환도로 갓길까지 점령한 상태였다. 이유는 다름 아닌 앞산전망대를 오르는 등산객들 때문. 입구에 들어서자 삼삼오오 모여든 젊은이들이 거친 숨을 내쉬며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이들의 인상착의다. 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하의는 몸에 달라붙는 레깅스, 그 위에 두껍고 긴 스포츠 양말을 올려 신었다. 상의는 티셔츠나 엉덩이를 살짝 덮는 바람막이 점퍼가 주를 이뤘다. 간혹 배낭이나 힙색(허리춤에 걸치는 가방)을 몸에 걸치기도 했다.

 

안지랑골에서 전망대까지는 1.4㎞의 짧은 거리지만 경사가 족히 70도는 넘을 것 같은 오르막의 연속으로 등반은 쉽지 않다. 출발한 지 10분도 안 돼 숨이 차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던 취재진과 달리 레깅스를 입은 젊은 등산객들은 몸을 움직이기가 편한 듯 재빠르게 산을 탔다.

 

40분이 걸려 오른 전망대에는 입구에서 만난 사람들이 일제히 전망대 난간에 붙어 야경을 배경으로 각종 포즈를 잡고 있었다. 걸쳤던 바람막이 점퍼를 벗어 허리춤에 묶고 손을 하늘 위로 뻗어 올리며 '브이(V)'자를 그리는 게 유행포즈인 듯했다.

 

남자친구와 인증샷을 찍고 있던 김다운(24) 씨는 "요즘 레깅스 입고 앞산전망대에서 사진 찍는게 20~30대 사이 유행 중이다. 힙하게(최신 유행에 걸맞게) 운동했으니 인증샷 남겨야 하지 않겠나"며 웃었다.

 

젊은 등산객이 대구 남구 앞산을 점령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실내 운동이 불가능해지면서 도심과 가까운 산으로 젊은 인구가 몰린 탓이다. 여기에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등산을 인증하는 문화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등산복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혼산(혼자 등산), 코로나19 후 앞산전망대 찾는 젊은이들 크게 늘어

 

코로나19 이후 앞산전망대를 찾는 이용객들은 눈에 띄게 늘었다. 앞산공원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본격 심화된 올 3월부터 8월까지 5개월 간 앞산전망대 평균 입·퇴장객은 3만5천509명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2만9천135명보다 6천 명가량 늘어난 수치다.

 

특히 전망대 오르기 열풍은 20~30대 젊은층 사이에서 무섭게 불고 있다. 코로나19로 실내 체육시설 이용이 어렵게 되자 도심 내 가까운 산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등산객의 두터운 층이었던 40~50대의 중년층에서 20~30대 청년층으로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셈이다.

 

홀로 전망대를 찾은 후 하산 중이던 최도연(28) 씨는 "평소 헬스를 꾸준히 하는데 코로나19로 운동을 못하던 중 직장 동료의 추천으로 이곳에 오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가볍게 전망대를 오르고 있는데 20~30대 등산객이 갈수록 느는 것 같다. SNS에 '혼산'이라는 말도 유행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친구들과 앞산전망대를 찾은 취업준비생 박정환(26) 씨는 "코로나19로 취업도 잘 안되고 답답해 친한 친구들이랑 모임을 만들어 도장깨기 식으로 등산을 하고 있다. 요즘 이루어내는 게 없어 답답했는데 등산으로 소소한 성취감을 얻고 있다. 다음주에는 팔공산에 갈 것"이라고 했다.

 

 

◆간편한 옷차림, 레깅스 입고 등산 뒤 인증샷 찍기 SNS으로 퍼져

 

세대교체는 등산복에도 찾아왔다. 아웃도어 등산복, 아이젠과 배낭 중심에서 일상과 레저를 즐길 때 모두 입을 수 있는 간편한 옷차림인 레깅스, 요가복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애슬레저(athletic·운동 + leisure·여가) 옷차림이 등산복으로도 입지를 넓히고 있는 셈이다.

 

딸과 산을 오르던 신주희(48) 씨는 "딸이 요즘 레깅스 입고 등산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 같이 입어봤다. 가볍고 신축성이 좋아 산을 오르는데 굉장히 편하다. 일반 바지에 땀이 차면 바지가 감겨 걷기가 불편하지만 레깅스는 땀 배출도 잘되고 불편함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건강하고 매력적인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용이한 소셜미디어(SNS)는 레깅스 열풍에 불을 지폈다. 레깅스를 입고 전망대에서 찍은 '인증샷'을 공유하는 문화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너도나도 인증샷 남기기에 동참하는 것이다. 실제 20~30대가 주로 이용하는 인스타그램에 #앞산전망대로 검색하면 레깅스와 요가복을 입은 젊은 층들이 야경을 배경으로 찍은 6만 개의 사진이 검색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레깅스족들이 불편하다는 시선도 있다.

 

전망대에서 만난 정미애(58) 씨는 "남편이 마주치는 레깅스 입은 젊은이들로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불편하다더라. 상의마저 짧은 경우엔 나도 민망한 마음에 땅만 보고 걷게 됐다. 과감한 젊은이들이 한편으로 부럽긴 하지만 아직 우리 세대에서는 민망함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이들의 등산 열풍은 코로나19로 일상생활에 제약이 많아지면서 창출해내는 새로운 문화의 일종"이라며 "여기에 SNS 발달로 정보 전달이 빨라지고 의사 결정 과정도 단축되면서 유행에 민감한 2030 세대들이 빠르게 반응한 것이다. 앞으로 레깅스족 이외 새로운 문화 형태들이 더 많이 창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