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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오스트리아 빈] 뮤지엄 앞에서 망중한…품격있는 문화놀이터

박물관 지구(Museum Quartier)
10여개 미술관 들어선 세계 최고 문화단지
현대적 건축미 자랑, 바로크건축양식 공존
레오폴트 미술관
대표 국립미술관…에곤 실레 컬렉션 소장
분리파·표현주의 작가 작품 전시

 

개관시간인 오전 10시에 맞춰 도착한 레오폴트 미술관(Leopold Museum)은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예전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뤘지만 코로나19 탓인지 한산한 모습이었다. 인상적인 건 미술관 앞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빈 시민들이었다.

‘박물관지구’(MuseumsQuartier·이하 MQ)로 불리는 광장에는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기다란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사다리 모양의 밑변을 없앤 채 뒤집어 높은 ‘엔지스’(Enzis)로 불리는 의자는 마치 전시장에 설치된 조형물 같았다.
 

#박물관 지구(Museum Quartier)

레오폴트 미술관, 현대미술관(Mumok), 쿤스트할레(Kunsthalle), 어린이박물관(ZOOM kindermuseum), 건축박물관,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21지구(Qaurtier21) 등 10여 개의 미술관이 들어선 MQ는 미술의 도시 빈(영어명 비엔나)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복합문화단지다. 현대적인 건축미를 자랑하는 미술관과 바로크 건축양식이 공존하는 이 곳은 원래 황실 마구간이 있던 터를 리모델링했다. 빈시는 장소가 지닌 상징성을 보존하기 위해 1998년부터 2001년 개관까지 4년간 개보수 비용으로 1500만유로(한화 약 220억원)를 투입했다. 6만㎡에 달하는 방대한 공간에는 이들 미술관 이외에 공연장, 카페, 레지던시 등 다양한 등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
 

MQ가 시민들의 문화놀이터로 변신하기까지에는 지난한 논의의 과정이 있었다. 1700년대의 바로크 시대의 유산인 마구간이 1차 세계대전이후 도심의 공터로 방치되자 활용방안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관광도시의 시너지를 내는 쇼핑몰 등 소비지향적인 공간으로 꾸미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 등 빈 출신의 화가들을 배출한, 예술의 도시를 빛내는 랜드마크로 키우자는 주장이 탄력을 받아 성사된 것이다.

 

 

#레오폴트 미술관

그중에서도 MQ의 ‘얼굴’은 바로 레오폴트 미술관이다. 빈을 대표하는 국립미술관이자 세계 최대의 에곤 실레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지난 2001년 오스트리아의 큰손 루돌프 레오폴트(Rudolf Leopold, 1925~2010)와 부인 엘리자베스 레오폴트(Elisabeth Leopold)가 50년 동안 수집한 컬렉션을 모태로 설립됐다. 6000여 점에 달하는 컬렉션 가운데 상당수가 오스트리아 작가들의 작품으로 오스트리아 정부가 일부 현대미술 작품을 구입한 후 레오폴드 미술관 재단으로 전환해 문을 열었다.

건축가 로리드 오르트너(Laurids Ortner)와 만프레드 오르트너(Manfred Ortner)가 설계한 미술관 건물은 그 자체가 작품으로 다뉴브강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정육면체형의 건축물이다. 에곤 실레, 구스타프 클림트, 오스카 코코슈카, 리하르트 게르스 등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트리아 빈 분리파, 아르누보·쥬겐스틸, 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소장돼 있다.

현재 미술관에는 오스트리아 미술사의 황금기로 불리는 19세기말~20세기초로 떠나는 상설전 ‘비엔나 1900 - 모더니즘의 탄생’(Vienna 1900 - Birth of Modernism)이 열리고 있다. 19세기 말 빈은 1차 세계대전 직전 세기의 전환기에 선 지식인들이 약 650년간 이어진 합스부르크 제국이 무너지는 큰 혼란 속에서 카페에 모여 보다 자유로운 예술표현을 추구하려는 실험적인 시도를 펼쳤다.

특히 천재 화가 에곤 실레의 컬렉션은 미술관의 품격을 높이는 중요한 자산이다. 에곤 실레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본인의 욕망과 고뇌에 집중해 억압받지 않는 예술을 표방했다. 1900년대 누드화가 금기시되던 풍조에 반항하듯 독특한 필치의 누드화로 ‘에곤 실레’만의 에로티시즘을 구현했다. 특히 수없이 많은 자화상과 괴상한 몸짓, 표정의 누드화를 통해 자기 성찰의 메시지를 전했다. 레오폴트 미술관은 42점의 그림, 187점의 원본 그래픽(그림 및 컬러 시트), 수채화, 소묘, 판화 등 에곤 실레 220 점을 소장하고 있다.

레오폴트 미술관의 홍보 담당 데지레 쉴레(Desiree Schellerer)는 “초기 5000여 점이었던 미술관의 컬렉션은 개관이후 꾸준히 늘어나 현재는 6000여 점에 달할 뿐 아니라 상당수가 세계 미술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는 작품이다”면서 “그중에서도 에곤 실레의 컬렉션은 빈을 상징하는 복합문화단지(MQ)의 대표 미술관이자 문화 브랜드로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벨베데레 궁전

뭐니뭐니해도 미술의 도시 빈의 아이콘은 벨베데레 궁전이다. 도시 전체에 미술사박물관·레오폴트미술관·알베르티나미술관·쿤스트하우스 등 세계적 명성의 미술관들이 즐비하지만 빈 미술관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벨베데레 궁전이다. 격조있는 왕궁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데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1862~1918)의 ‘키스’ ‘유디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Bel) 전망(Vedere)’라는 뜻을 지닌 궁전은 두개의 건물로 구성됐다. 경사진 언덕 위에 있는 상궁(Upper)벨베데레는 1723년에 건립됐고 북쪽의 낮은 대지에 있는 하궁(Lower) 벨베데레는 1716년에 완공됐다. 매년 여름에 이곳에 머물던 오이겐공이 세상을 떠나자 합스부르크가에서 매입해 증축한 후 미술 수집품을 보관했다. 합스부르크가는 음악, 미술, 건축, 철학, 문학 등으로 왕조의 권위와 품위를 유지했는데 현재 빈 전역에 30여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남아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보편적 개념의 미술관으로서 제 모습을 갖추게 된 건 지난 1903년, 하궁에 국가 소유의 모던 갤러리(Modern Gallery)가 문을 열게 되면서 부터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제국시대의 컬렉션(imperial collection)과는 다소 상반된 의미의 미술관 역할을 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하는 공간으로 차별화 시켰다.

아르누보계열의 ‘키스’는 미술관이 직접 구매한 대표작이다. 1908년 오스트리아 문화교육부는 벨베데레 궁전의 아이콘으로 키우기 위해 클림트로 부터 ‘키스’(1907년 작)를 사들였다. 이 작품을 통해 벨베데레는 오스트리아의 미술관에서 세계의 미술관으로 비상하는 계기를 맞았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클림트의 작품에 주목한 건 남다른 그의 예술철학 때문이다. 클림트는 19세기 말 보수적인 정통 미술가협회에 맞서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분리파’의 선두 주자였다. 이들은 19세기 말 보수적인 분위기와 소수 귀족 후원자들의 취향에 영합하는 오스트리아 문화 풍토의 단절을 선언했다. 말 그대로 과거와 분리한다는 뜻인 데 벨베데레의 외연을 넓히려는 오스트리아 정부의 방향과 일치했다. 그래서인지 벨베데레에는 클림트의 작품 15점과 에곤 실레의 작품 등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활동한 오스트리아 대표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벨베데레궁전의 전시동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수십 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 있는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미술관의 수퍼스타인 ‘키스’로 황금빛의 캔버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공간을 압도한다. 키스의 황홀함과 행복한 연인의 마음을 금색으로 표현한 작품은 전시장의 어두운 분위기를 뚫고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한편, 구 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빈시는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미술관과 음악가들의 기념관 등을 엮어 전 세계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최근 오스트리아 관광청은 코로나19에 맞춰 오스트리아 미술 황금기에 왕성한 활동을 펼친 천재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조명하고, 미술관 곳곳의 숨은 명소까지 찾는 랜선여행 ‘아트 트립’을 진행중이다.

/오스트리아 빈=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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