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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최재수 기자의 클래식 산책] <43>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월광'

17세 소녀에게 헌정하며 사랑 고백

 

 

역설적이게도 고통스럽거나 힘들 때 명작은 탄생한다. 베토벤(1770~1827)의 경우도 청력 상실이 시작된 1790년 후반 이후 명작을 많이 썼다.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를 32곡이나 작곡했는데, 14번 '월광(月光) 소나타'는 8번 비창 소나타, 23번 열정 소나타와 함께 3대 소나타로 불린다.

 

'월광 소나타'는 베토벤 특유의 감성이 극대화된 대표적인 작품이다. '월광'이라는 이름은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이 아니다. 음악평론가 렐슈타프가 1악장의 분위기를 "달빛이 비치는 스위스 루체른 호수 위에 떠 있는 조각배 같다"고 문학적 비유를 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곡가 베를리오즈는 부드럽고 섬세한 1악장에 대해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시(詩)"라고 극찬했다.

 

월광 소나타가 탄생한 1801년은 베토벤에게 영광과 시련이 겹친 해였다. 당시 베토벤은 빈에서 촉망받는 작곡가로 부상 중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그를 괴롭히던 귀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그때 17세의 귀족 소녀 줄리에타 귀차르디를 만난다. 베토벤은 줄리에타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당시 베토벤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지난 2년간 내 삶은 얼마나 초라하고 슬펐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한 명의 귀엽고 매력적인 소녀에 의해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고 썼다. 베토벤은 1801년 이 곡을 완성해 줄리에타에게 헌정했다. 그리고 그에게 청혼했다. 하지만 줄리에타의 아버지는 나이 많고 재산도 계급도 없는 심지어 귀까지 먼 남자와의 결혼을 결사 반대했다.

 

영화 '불멸의 연인'을 보면 그때 상황이 나온다. 베토벤의 능력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줄리에타는 집에 새 피아노를 들여 놓았다며 모두들 외출할테니 연주해보라고 말한다. 베토벤은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에 홀로 앉아 피아노 연주를 한다. 이 순간 흘러나오는 곡이 바로 '월광 소나타' 1악장이다. 귀가 멀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베토벤은 건반의 울림을 직접 느껴보려고 귀를 피아노 뚜껑 위에 바짝 가져다 댄다.

 

이런 광경을 줄리에타와 아버지는 몰래 숨어 지켜본다. 이 장면이 애처로웠던 줄리에타는 베토벤에게 다가간다. 베토벤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훔쳐봤다는 사실에 화를 내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3악장으로 된 '월광 소나타'는 제목만 보면 낭만적이다. 그러나 베토벤이 사랑했던 줄리에타에게 헌정한 음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들으면 왠지 쓸쓸하다.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 밝은 밤, 월광 소나타를 들으며 베토벤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을 떠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