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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최재수 기자의 클래식 산책] <45>늦가을 정취 물씬 배어 있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

 

 

브람스 음악이 가을을 앞당긴다면 찬바람과 함께 낙엽이 뒹굴고 마음이 복잡해지는 늦가을에는 라흐마니노프(1873~1943) 음악이 잘 어울린다.

 

라흐마니노프는 4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 그 중 2번과 3번이 유명한데,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은 2번이다. '크렘린의 종소리'를 연상시키는 장중하고 우아한 피아노 터치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마치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는 것 같은 그림이 연상된다. 자세히 들어보면 이 작품이 가지는 서정과 슬픔은 신경증적 불안과 우울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자의식 강한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완성하기 몇해 전부터 심각한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1897년 발표한 '교향곡 1번'이 심한 혹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각한 노이로제 증세를 겪은 그는 달 박사의 도움으로 자신감을 회복했고, 1901년 이 곡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달 박사에게 헌정됐다.

 

3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러시아적 피아니즘이 한껏 빛나는 작품이다. 1악장은 어둡고 장중한 피아노 건반을 강렬하게 내리치면서 시작된다. 피아노 선율의 세기가 점점 강화되면 비장한 관현악이 휘몰아친다. 격정이 차츰 가라앉으면 섬세하고 서정적인 피아노가 이어진다. 이후 화려하고 정열적인 악상이 전개된다. 2악장은 연인들의 달콤한 밀어처럼 들린다. 클라리넷과 파곳, 호른, 플루트가 감미롭게 노래하며 낭만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마지막 3악장은 두 악장에 비해 활달하고 힘이 넘친다. 첫 주제를 피아노가 힘차게 연주하고, 두번째 주제는 오보에와 비올라가 주도한다. 마지막에 현란하게 펼쳐지는 피아노 테크닉은 그야말로 '묘기'에 가깝다. 오케스트라 합주로 호쾌한 피날레로 마무리된다.

 

이 작품은 대중적 정서와 극적인 멜로디들로 인해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돼 유명해졌다. 마를린 먼로 주연의 '7년 만의 외출'에서부터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도쿄타워', '랩소디', '여수 September affair' 등 여러 장면에서 멜로디가 흘렀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는 이 작품의 2악장을 팝송으로 편곡한 'All by myself'가 나온다.

 

깊어가는 늦가을의 정취에 이 작품만큼 잘 어울리는 음악도 드문 것 같다. 모든 악장에 꾹꾹 눌러 담겨 있는 뜨거운 에너지, 광대하게 펼쳐지는 시베리아의 기운이 느껴진다. 거기다 우울한 선율은 말할 것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