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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춘천 낭만시장]추억의 味 푸근한 情 헛헛한 마음까지 채우고 갑니다

 

 

유니짜장 유명한 '만리향'
유명 중식당들 못지않은 맛 자랑
주방장 중식대가 이연복과 동문수학

진한 멸치 육수 일품 '낭만국시'
남해안서 공수해온 멸치 우려내고
직접 세운 제면소에서 면발 뽑아

30여년 한결같은 '팬더하우스'
춘천 토박이들에게 추억의 만두
쫄볶이·떡볶이도 단골들에겐 인기

간판 없어도 북적 '맛나떡집'
아는 사람은 다 찾아오는 찐 맛집
콩고물 묻힌 팥찹쌀떡 대표 메뉴

시장거리 명물 카페 '고인물'
수플레 반죽 직접 부풀린 팬케이크
3시간 발효시켜 만든 스콘도 강추


춘천 명동에서 중앙시장으로 이어지는 거리, 사람들이 흔히 지나쳐가는 시장 거리라고 생각하지만 ‘춘천 현지인'들은 이 골목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유명 중식당이 부럽지 않은 자장면집부터 ‘인스타 핫플'인 디저트 가게까지 마음을 가득 채워줄 음식이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 만리향=골목마다 있는 흔한 자장면집처럼 보이지만, 5개 남짓한 테이블이 이미 점심시간 전부터 가득 차 있다.

빨간 현수막으로 인쇄한 심플한 메뉴판과 주방에서 들리는 웍(Wok, 중화요리용 팬) 흔드는 소리가 이곳이 ‘무림고수'의 집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곳의 자장면은 재료를 잘게 갈아서 볶은 ‘유니짜장'이다. 인천 차이나타운, 혹은 유명 중식당에서나 제대로 맛보던 스타일, 동네에서 좀처럼 찾기 어려웠던 음식의 문법이다. 재료를 입에 넣자마자 부드럽게 부서지고, 돼지고기와 채소 특유의 향이 기름의 감칠맛과 어우러져 녹는다. 입안에서 터지는 육즙과 볶은 채소를 맛보다 보면 왜 ‘자장'을 한자로 터질 ‘작'에 된장·고추장의 ‘장' 자를 쓰는지 한번에 짐작할 수 있다.

‘코 끝에 남는 달달한 맛이 궁금해 비결을 물으니, 주방장 설영남(62)씨가 ‘파기름에 볶았다'는 비법을 알려준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한 방'으로 잘 알려진 파기름이지만,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당연지사. 설씨는 1980년부터 4년간 서울의 유명 중식당에서 중식을 배웠다. 한 스승 밑에서 배우던 또 다른 유명 셰프가 지금 서울에서 중식당을 경영하는 이연복씨라고 한다. 동네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유니짜장의 비법도, 당시부터 문파 안에서 전해져 내려온 솜씨다.

이곳엔 또 하나의 비법이 있다. 바로 ‘콩'이다. 주방장 설씨와 함께 식당을 경영하는 아내 정순자(60)씨가 경북 영천 친정에서 직접 공수받아 갈아 넣는 귀한 재료다. 이미 잘 발효된 춘장에 콩이 더해지면 그 부드러움과 고소한 맛이 두 배가 된다. 자장면만 맛있다고 생각하면 오산. 마찬가지로 파기름에 볶은 차돌짬뽕과 옛날식으로 튀긴 탕수육도 별미다. 차돌짬뽕은 볶는 과정에서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살아 있고, 탕수육은 새콤달콤한 소스가 일품이다.

# 낭만국시=국수집과 자장면집이 마주보고 있는 중앙시장 골목, 가장 먼저 감각을 자극하는 것은 진한 멸치 냄새다. 그냥 멸치가 아니다. ‘낭만국시'의 주방장 우승희(40)씨가 직접 남해안에서 공수해 온 멸치다. 새벽부터 끓여낸 멸치 육수는 이곳의 국수 맛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재료다.

대표 메뉴인 칼국수는 국물을 한 입 ‘후루룩' 뜨자마자 없는 숙취도 내려가는 구수한 맛이다. 또 하나의 비결은 이곳의 면발이다. 시판 재료가 아닌, 직접 설립한 제면소에서 뽑은 면발을 사용한다. 신선도 보장을 위해 다음 날 판매할 면을 직접 반죽해 낸다고. 부드러운 면발이 구수한 육수와 찰떡같이 어우러진다.

이곳의 두 번째 대표 메뉴는 비빔국수다. 당연하게도 소스까지 주방장의 고민이 배어 있다. 새콤달콤한 맛을 위해 과일을 갈아 넣고, 각종 채소들로 맛을 내면 고소하고도 새콤달콤한 소스 완성이다. 특히 직접 제면한 굵은 면발에 소스가 배어서 어우러지는 맛이 일품이다.

# 팬더하우스=춘천 토박이들은 이곳에서 음식이 아닌 추억을 먹는다. 지금은 ‘먹어서 탈이 나는' 시대라지만, 중앙시장에 ‘만두'가 처음 등장한 1960년대만 해도 고소하게 튀긴 음식은 모두의 입과 마음을 자극하는 대상이었다. 이곳의 만두가 추억을 자극하는 가장 중요한 비결은 그 기름, ‘쇼트닝'이다. 쇼트닝은 돼지기름의 대체재로, 1919년 미국에서 등장한 음식이다. 비싼 돼지기름을 먹을 수 없었던 서민들에게, 쇼트닝은 훌륭한 별미 공급원이었다.

세월의 흔적으로 가득한 식당 문 앞에 즐비하게 놓인 쇼트닝 기름 통은 가난했던 1960년대 춘천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는 느낌을 선물한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30여년을 한결같이 만두를 만들어 온 주인장 김응수(62)씨가 만두를 빚고 있다. 만두 속재료는 당면, 무, 당근, 후추, 심플한 속재료지만 고온의 기름에 튀겨지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한 입 물때는 바삭, 이후에는 무의 달콤함과 당면의 질감, 후추의 향이 어우러지는 맛이다. 쫄볶이, 떡볶이 등 다른 분식 메뉴들도 30년 차 단골들이 찾는 또 하나의 메뉴다.

# 맛나떡집=중앙시장의 ‘중앙'에는 떡집이 있다. 번듯한 가게가 있지도 않고, 메뉴판, 심지어 간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찾아오는 진정한 로컬 떡집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콩고물을 묻힌 팥찹쌀떡이다. 떡집 주인인 신연희(76)씨가 직접 공수해 쪄 낸 국산 팥이다. 대량 생산하는 수입산 팥과 다르게, 국산 팥은 설탕을 따로 넣지 않아도 은은한 단맛과 부드러운 향미가 있다. 이곳의 떡이 지나치게 달지 않고 구수한 맛을 내는 이유다. 금방 먹을 때는 콩고물을 묻혀서, 얼렸다가 먹을 때는 묻히지 않고 보관했다 먹어도 좋다. 탄탄한 재료가 받침이 되는 만큼 쫀득한 인절미를 비롯해 다른 떡들도 추천이다. 떡들 옆에 신씨가 직접 빚은 만두를 놓고 파는데, 한번 맛보는 것도 특별한 새해를 맞이하는 비법이 되겠다.

# 고인물=도무지 카페가 있지 않을 것 같은 시장통에 카페가 있다. 그것을 아는지 카페 앞에는 ‘이곳이 맞습니다. 망설이지 말고 들어오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중앙시장에 즐비한 만두가게 옆, 다방 건물로 들어서면 있는 ‘카페 고인물'이 그 주인공이다.

프랜차이즈 양산형 카페가 시장을 장악하는 요즘, 수플레 반죽을 직접 부풀려 내오는 팬케이크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을 유혹한다. 나이프로 힘을 주지 않아도 포크로 술술 잘리고, 입에 넣자마자 부풀었던 입자가 훅 부서지는 부드러운 맛이다. 직접 반죽한 뒤 3시간을 발효시켜서 만든다는 스콘도 일품이다. 지나치게 딱딱한 공산품 스콘과는 다르게 단맛 짠맛이 살아 있다. 딱딱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살아 있는 신기한 맛이다. 국산 원유로 만든 생크림을 직접 휘핑해 적당히 가당한 크림도 잘 어울린다. 커피는 적당히 산미가 있어 달콤한 케이크와 잘 어울리고,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도 차와 함께 즐길 수 있다.

박서화·이현정·김현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