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조금강릉 24.0℃
  • 황사서울 20.5℃
  • 황사인천 19.6℃
  • 구름많음원주 20.5℃
  • 황사수원 20.8℃
  • 황사청주 21.4℃
  • 황사대전 22.2℃
  • 황사포항 24.1℃
  • 황사대구 23.5℃
  • 황사전주 20.7℃
  • 황사울산 23.0℃
  • 황사창원 21.8℃
  • 황사광주 22.6℃
  • 황사부산 22.2℃
  • 구름많음순천 21.4℃
  • 구름많음홍성(예) 20.6℃
  • 황사제주 18.9℃
  • 구름많음김해시 24.0℃
  • 구름많음구미 22.9℃
기상청 제공
메뉴

(강원일보) [강원의 맛·지역의 멋]맛있는 '낭만시장'

'시슐랭 가이드' (1) 춘천 중앙시장

 

‘강원의 맛, 지역의 멋'은 현지인들만 알고 있는 맛집과 추억과 낭만이 담겨있는 색다른 장소를 매주 금요일자 ‘미토면'에 소개하는 란입니다. 그 첫 순서로 강원도 전통시장의 별미를 소개하는 ‘시슐랭 가이드'를 시작합니다. ‘시장'과 ‘미슐랭 가이드'(최고의 맛집을 찾아 별점을 주는 안내서)의 합성어로, 시장내 맛집들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400여년 전통
조선 읍내장 명맥 이어와
60년대 미군물품 양키시장 인기

복고감성 뉴트로 공간·이색 맛집 입소문
4,416㎡ 부지에 335개 점포 관광객 발길 이어져


흔히 춘천을 낭만의 도시라 부른다. ‘낭만'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분위기를 뜻한다. 도시 이름에서부터 호수, 강, 철도까지 온갖 낭만적인 모습을 가진 춘천에는 60여년의 역사가 있는 ‘낭만시장(중앙시장)'도 있다. 조선시대 춘천 읍내장의 명맥을 이은 시장이라고 보면 400여년의 전통을 지닌 곳이다.

춘천역에서 걸어서는 20분. 춘천지역 대표 상권인 명동 거리를 끝까지 걸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여느 지역 시장처럼 채소, 떡을 비롯한 먹거리와 의류 같은 생활 잡화를 팔고 있고 곳곳에 주린 배를 채울 식당이 있다. 모르고 지나치면 ‘그냥' 시장이지만, 알고 들여다보면 과거와 미래의 낭만이 피어나는 장소다. 시장 상인들에게는 현실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춘천 중앙시장으로 불렸던 이곳은 시장 현대화와 함께 2010년 춘천낭만시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장은 1952년 미 9군단에 의해 595개 작은 점포가 세워지면서 상설시장으로 거듭났다. 1960년 상인들이 (주)춘천중앙시장을 발족, 4,416여㎡(1,336평)의 땅에 335개의 점포를 갖춘 시장으로 성장했다. 그러다 1966년 대규모 화재를 겪고 난 뒤 기존 함석 대신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인근의 춘성, 화천, 양구 주민들도 찾아오는 큰 규모의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6·25전쟁 이후 폐허가 된 춘천에서 가장 격렬한 ‘삶'을 엿볼 수 있는 현장이었던 만큼 시장에는 전쟁의 흔적도 남아 있다. 인근에 미군 주둔지 캠프페이지가 있었던 만큼 군복이나 커피, 초콜릿, 잼 등이 흘러들어왔다. ‘미제'라 불리는 질 좋은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오는 사람이 많아 시장 한 구석에 상설시장 형태 ‘양키시장'이 자리 잡았다. 국산 제품들의 품질이 높아지며 규모는 줄어들었고 현재는 부모가 운영하던 점포를 이어받은 잡화점 6군데 정도와 작업복을 판매하는 상점들로 변해 과거의 기억을 이어오고 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잉걸스 수입품'을 운영하는 조숙현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20대 때였던 1950년대부터 시장에서 미제 장사를 한 터줏대감이었다. 조씨는 “지금은 수입품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이 됐지만 당시에는 미군 보급품 하나 사보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다”며 “수입품 판매가 불법이던 시절에는 단속반이 뜨면 허겁지겁 물건을 숨기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시장에서 제일 오래된 곳이 어디인지 수소문해봤다. 상인들은 대동상회와 덕신상회를 가리켰다. 1960년대 개업 당시 손님들이 즐겨 찾았던 제수용품을 아직까지 팔고 있는 곳. 상회 주인들은 어느덧 90대가 됐다. 대동상회에는 몸이 불편한 어머니 대신 아들 오대영(65)씨가 가게를 보고 있었다. 아직도 주판을 이용해 계산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제 옛날처럼 상회가 더 이상 바쁘지가 않다고 말했다. 상회와 가까운 곳에는 오래된 경양식당 ‘함지'도 있다. 1980년 개업해 42년 전 모습 그대로의 인테리어와 중년의 웨이터가 반기는 곳이다.

시장에는 오래된 낭만만 있지 않다. 복고(Retro)를 새롭게 즐길 수 있는 뉴트로 공간도 잇따라 문을 열었다. 옛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공간 속 달콤한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카페 ‘고인물'은 감성을 충전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39년째 현대한약방을 운영해 온 신승택(67)씨는 부인 김금자씨와 약방에 카페 ‘처방전'을 열었다. 보약차 ‘십전대보차'와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메뉴판에 함께 있는 이색적인 카페다. 한약 냄새가 풍기는 공간에서 달콤한 차 한 잔을 마시는 낭만이 있는 곳. 이렇게 춘천 낭만시장에서는 과거의 기억과 트렌드, 현실과 낭만을 함께 맡을 수 있다.

박서화·이현정·김현아기자 / 편집=이화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