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강릉 1.3℃
  • 서울 3.2℃
  • 인천 2.1℃
  • 흐림원주 3.7℃
  • 흐림수원 3.7℃
  • 청주 3.0℃
  • 대전 3.3℃
  • 포항 7.8℃
  • 대구 6.8℃
  • 전주 6.9℃
  • 울산 6.6℃
  • 창원 7.8℃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순천 6.7℃
  • 홍성(예) 3.6℃
  • 흐림제주 10.7℃
  • 흐림김해시 7.1℃
  • 흐림구미 5.8℃
기상청 제공
메뉴

(광주일보) 세계의 문화도시를 가다 <3> 독일 뉘른베르크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세 도시…과거와 현재를 잇다
쾨니히 가는 길 5㎞ 빛바랜 성벽
중앙광장 길목 성 로렌츠 교회
도시 가로지르는 페그니츠 운하
수백년 세월 고즈넉한 감성 간직
시내 한눈에 조망 ‘카이저부르크 성’
르네상스 거장 알브레이트 뒤러

 

독일 바이에른 주의 두번째 도시인 뉘른베르크는 전 세계 여행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수백년의 세월이 묻어나는 성당에서 부터 빛바랜 성벽,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 그리고 세계 최대의 크리스마스 마켓까지…. 말 그대로 도시 전체가 ‘살아 있는’ 테마파크다. 특히 나치 전당 대회가 열렸던 어두운 과거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을 받기도 했지만 전후 50여 년간 옛 모습을 복원한 덕분에 유럽의 고도(古都)가 됐다. 이처럼 성벽을 경계로 과거와 현재가 드라마틱하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뉘른베르크만의 매력이다. 그중에서도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알브레이트 뒤러의 집(뒤러하우스)과 독일의 역사를 집대성한 국립게르만 박물관은 예술의 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뉘르베르크 중앙역에서 빠져 나와 시내쪽으로 걸어가자 거대한 형상의 돌탑이 눈에 띈다. 영어로 ‘왕의 문’(King’s Gate)을 의미하는 쾨니히(Koenigstor)이다. 머리가 두 개 달린 독수리 문장이 새겨진 쾨니히는 멀리서 보면 타워이지만 구시가지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문 역할을 하고 있다.


중앙역 앞 횡단보도를 건나 쾨니히를 통과하자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크고 작은 수제품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게 마치 영화 세트장 같다. ‘장인의 광장(Handwerkerhof)’으로 불리는 전통 수제품 시장이다. 알록달록한 색상의 도자기에서 부터 앙징맞은 형상의 인형, 독일의 전원생활을 담은 그림, 전통적인 제조법으로 만든 다양한 소시지 등 솜씨 좋은 장인들이 손수 만든 수제품들이 흥미롭다. 햇볕 좋은 야외 카페에 앉아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삶의 여유가 묻어난다.

 

 

뉘른베르크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구시가지를 둘러봐야 한다. 쾨니히에서 도심으로 가는 길에는 5km 길이의 성벽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구시가지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성벽은 천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전쟁의 상흔을 찾아보기 힘들다. 2차 세계대전이후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뉘른베르크시의 철저한 고증과 노력을 거쳐 완벽하게 복원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구시가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건 우뚝 솟아 있는 성 로렌츠 교회다. 중앙광장(Hauptmarkt)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이 건축물은 높이가 81m에 달하는 데다 아름다운 두개의 첨탑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지난 1270년 시공된 후 200여 년에 걸쳐 1477년 완공된 교회에는 3개의 메인 오르간이 설치돼 있다. 유럽인들에게는 매년 11월28일부터 12월24일까지 세계 최대의 크리스마켓이 열리는 장소(중앙광장)로도 유명한 곳이다.

도심 안쪽으로 걸어 가다 보면 얼기설기 이어져 있는 좁은 골목들과 만나게 된다. 도시의 실핏줄 처럼 퍼져 있는 수많은 골목길에는 동화에 등장하는 그림 같은 집과 상점들이 얼굴을 내민다. 수백 년의 세월이 깃들어 있는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 힘든 고즈넉한 감성이 새록 새록 가슴에 와 닿는다.

 

 

무엇보다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도시의 한복판을 흐르는 페그니츠 운하와 중세풍의 다리다. 폭이 30 정도인 아담한 강 양쪽에 늘어서 있는 건물과 오래된 가게, 그 위에 드리워진 아치형 다리는 한폭의 풍경화 같다. 이 곳을 지나가는 관광객이라면 저절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구시가지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카이저부르크(Kaiserburg)성과 ‘알브레이트 뒤러하우스’다. 목적지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하게 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뒤러의 동상은 ‘중세의 도시’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그러고 보니 뉘른베르크에는 뒤러 광장, 뒤러 거리, 뒤러 하우스 등 뒤러의 이름을 딴 지명이 많다. 뉘른베르크 출신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뒤러를 도시의 브랜드로 활용하고 있는 ‘명사 마케팅’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도시 북쪽에 높이 서 있는 카이저브루크는 시내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뉘른베르크의 랜드마크다. 이 성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방문했을 때 머물던 곳으로 12세기에 착공해 16세기때 지금의 형태로 완공됐다고 한다. 옛날 귀족들이 살았던 성 내부는 황제의 방, 예배당, 그리고 깊이 60m의 우물 등이 들어서 있다. 특히 성벽 위의 진벨 탑(Sinwell Tower)에 오르면 빨간 지붕으로 뒤덮인 시내 전경이 파노라마 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검게 그을린 성벽을 경계로 프랑켄 정통 목조 가옥과 성벽 너머의 현대적 빌딩이 어우러진 장관은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시간여행의 진수다.

뭐니뭐니해도 뉘른베르크는 독일 르네상스 미술의 완성자로 불리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고향이기도 하다. 카이저부르크 입구 부근에 자리하고 있는 뒤러하우스(Albrecht Durer’s House)는 뒤러가 생을 마칠 때까지 20여 년간 살던 목조 주택이다. 지금은 이 집을 뒤러가 살던 모습대로 복구해 알브레히트 뒤러 하우스라는 이름의 미술관으로 사용한다.

16세기의 건축양식을 간직하고 있는 내부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금방이라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것만 같은 나무 계단, 큼직한 수프냄비, 그의 손때가 묻은 책상과 의자, 도자기로 만든 초록색 난로에선 위대한 예술가의 서민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뉘른베르크의 구시가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문화공간은 바로 국립게르만박물관(Germanisches Nationalmuseum)이다. 이름 그대로 게르만족의 박물관인 이곳은 선사시대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게르만 문화권의 예술과 문화를 전시하고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을 비롯해 독일을 대표하는 동화작가 그림(Grimm) 형제가 사용하던 가구 등 독일어 문화권의 예술가들과 관련된 자료만 1300여 점에 이른다. 또한 독일어권에 속하는 게르만인들의 역사와 유물, 예술품과 문화재 등 130만 점의 방대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히틀러가 사랑한 도시답게 뉘른베르크에는 나치의 광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사적지도 있다. 바로 나치 전당대회장이다. 히틀러는 거대한 원형경기장을 지어 전당대회를 치르며 유럽 전역에 힘을 과시했다. 종전 후에는 뉘른베르크 법원 600호 법정에서 군사재판이 열리는 등 주요 전범들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현재 법원 내 재판 기념관과 원형경기장 안 박물관에는 나치와 관련된 자료들을 여과 없이 공개하는 등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뉘른베르크=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많이 본 기사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