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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조선시대 핫 플레이스, 강원의 명소는 지금]돌이 된 황부자네 며느리 애틋한 효심 연못 위에 비쳐

(19)태백 황지

 

 

황지의 물 밤낮 없이 흐르니
끝없는 그윽한 곳에 의탁해서네
학문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니
웅덩이 채우고 쉬지 않고 가야하네

 

황지를 찾아 나섰다. 비탈 아래에 있는데 동쪽은 좁고 북쪽은 넓으며 겨우 3~4장(丈) 정도 된다. 세로도 역시 이와 같다. 물은 맑고 깊으며 깨끗하고 그윽하다. 맑아서 머리카락을 비출 수 있을 정도고,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 남쪽에 조그만 못은 소황지(小黃池)다. 맑기와 깊이는 대황지(大黃池)에 비할 만하지만 크기는 겨우 4분의 1 정도 된다. 강재황(1689~1756년)이 1719년 7월에 기록한 ‘황지기(黃池記)'의 기록이다.

1664년에 찾은 윤선거(1610~1669년)의 ‘파동기행(巴東紀行)'은 다른 정보를 제공해 준다. 연못 속에 돌과 바위가 쌓여 있는 것이 참으로 기이하다며, 가끔 연못 물색이 누렇게 되기 때문에 황지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아래위의 연못(上下淵)은 방외굴(方外窟)의 물과 합쳐지는데 이것이 바로 낙동강의 발원지라고 보았다. 아래위 연못은 이 층으로 되어 있으며, 물이 연못 가운데서 솟아 나와 시냇물을 이루고 있어 진짜 볼만하다고 했는데 황지를 가리킨다.

이중연(1711~1794년)의 ‘황지가'는 또 다른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황지의 물이 기름처럼 맑은 것을. 태백산과 부용봉 사이에 있네. 황지의 들판 손바닥처럼 평평하고, 들 가운데 물 솟으니 배 띄울 수 있네. 연못같이 크고 깊이도 또한 같아, 솟는 걸 못 보나 흐르는 걸 볼 수 있고, 흘러가 절로 시내를 이루네. 세상에 이르길 못된 사람 집이, 없어지면서 연못이 만들어졌다는데, 노인들 전하나 햇수를 알 수 없네.”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 사이에 황부자 전설이 전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황부자 전설은 이렇다. 황부자에게 스님이 시주를 청해왔다. 황부자는 곡식 대신 쇠똥을 던져주고, 이것을 본 며느리가 민망하게 여겨 시아버지 모르게 쌀 한 되를 시주하고 사과를 하였다. 스님이 며느리더러 “이 집은 곧 망할 것이니 그대는 나를 따라오라.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지 마라” 하고 당부하였다. 며느리가 얼마를 걸어서 산꼭대기에 이르자 벼락 치는 소리가 나며 천지가 진동하였다. 놀란 며느리가 뒤를 돌아보니 황부자가 살던 집이 못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본 며느리는 아기를 업은 채 그 자리에서 돌이 되고 말았다. 전설이 우리에게 주려는 의미는 무엇일까? 황부자의 악행에 대한 응징이 주된 주제이지만, 응징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못된 시아버지이지만 그에 대한 효심도 읽을 수 있다. 초월적 질서와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며느리는 대변한다. 석상에는 며느리의 애틋한 마음이 가득 서려 있다. 부자가 살던 곳에 생긴 연못은 주위의 논과 밭에 물을 대는 고마운 물이다. 못된 부자가 살던 곳이라 하더라도 하늘의 징벌이라는 신성한 의례를 통해 성스러운 곳으로 성격은 변화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황지에 관리가 제사를 지낸다고 기록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낙동강의 근원지로서 관아에서 제전을 두어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중종 22년에는 관찰사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시선(1625~1715년)은 천상 유학자였다. 황지를 보고서 공부하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편집=홍예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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