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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우리 역사 우리 문화 <6> 경주의 문화유산

천년의 역사와 문화가 보석처럼 빛나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떠났던 수학여행 설레임 가득한 추억의 도시
발길 닿는 곳마다 찬란한 역사유물…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
불국사·석굴암·첨성대·다보탑·천마총…세계문화유산·국보 즐비

 

 

 

 

 

 

겨울과 봄은 늘 그렇듯 시소게임을 한다. 두 계절의 경계는 늘 길항의 관계다. 쉽게 자리를 내어줄 수 없는 겨울은 언제나 시샘을 부린다. 매서운 추위의 끈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다. 그에 반해 봄은 서둘러 따뜻한 나라로 진입하려 한다. 그러나 겨울에 옷자락을 붙잡혀 쉬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모든 경계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의 관계가 드리워져 있는 법이다.
 

그렇게 봄으로 넘어온 계절은 특유의 ‘자랑질’을 시작한다. 봄꽃이 물밀 듯이 올라오고 나무마다 초록의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꽃샘추위를 조금 벗어나자 사방이 화사한 기운으로 물든다. 땅의 기운이 충만하고 생명들이 부지불식간에 존재를 알려온다. 어디로든 떠나고픈 시간이다.

경주라는 도시는 신비로운 도시다. 꽃샘추위를 전후 한 봄날에 찾는 경주는 이색적인 감성을 선사한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라는 단선적인 말로는 포괄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팔색조의 도시다. 화려함과 고적함, 이채로움이 깃들어 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나의 역사 교과서이자 ‘오래된 미래’와 ‘현존하는 과거’가 조화를 이룬다. 어디에서도 문화재를 볼 수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경주는 학창시절 최고 수학여행지 가운데 하나였다. 30여 년도 훨씬 지난 그 시절 수학여행의 기억은 여전히 새롭다. 그러나 시간상의 제약 때문에 스치듯 지나갔던 게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벽돌을 찍어내듯 동일한 일정과 동일한 코스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돌아보는 경주는 두꺼운 양파 속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역사와 문화가 보석처럼 빛나는 고도(古都)는 어디에도 신비한 매력을 품고 있어 오래도록 발길을 붙든다.

경주에는 세계문화유산만 해도 불국사와 석굴암, 옥산서원, 양동마을이 있다. 세계가 인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도시에 널려 있다. 도시의 생명력은 하늘을 가리는 빌딩숲에 있지 않고 생명의 땅을 지지하는 문화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 밖에 경주에는 대왕릉, 첨성대, 천마총, 황룡사 터, 국립경주박물관 등이 있다.

먼저 불국사로 향한다. 삼국유사 ‘대성효이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 편에는 김대성이 전생과 현생의 부모에게 지극한 효를 다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751년 김대성이 공사를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생전에는 완공되지 않았다. 그의 사후 국가가 직접 나서 공사를 주도해 774년 무렵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구체적인 시기를 명확히 단정할 수는 없다. 학계에서는 설화의 시작을 신문왕대로 보며 불국사의 대재적인 중창을 경덕왕대로 추정한다.

30여 년이 넘는 대역사를 통해 대웅전,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와 백운교 등 불교문화의 찬란한 유산이 잉태됐다. 화려하면서도 정제된 기품, 아슬아슬한 균형과 조형미는 압권이다. 축대와 돌담, 다리 교각과 기둥은 마치 돌을 주물러 빚은 것처럼 아름답고 오묘하다. 자연과 예술, 문화와 종교, 사람과 부처가 한가지로 엮여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유산의 가치는 그것이 품고 있는 사상에서 발현되는 법. 현생과 이생의 부모를 위해 건립했다는 설화는 지극한 효 사상을 품고 있다. 교과서로 배우는 부모 공경이 아닌, 온몸으로 실현한 효이기에 그 무게가 다르다. 경내에 들어서면 국보급 문화재를 마주한다. ‘다보탑’(국보 제20호)과 ‘석가탑’(국보 제21호), ‘금동 비로자나불 좌상’(국보 제26호), ‘금동 아미타여래 좌상’(국보 제27호),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22호), ‘청운교와 백운교 다리’(국보 제23호) 등은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불국’과 ‘정토’의 세계를 아우르는 정밀한 풍경은 절로 경외감을 갖게 한다.

500여년의 전통을 가진 역사마을인 양동마을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종택과 살림집, 정자, 서원 등 씨족 마을의 구성요소를 갖추고 있고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있다. 유형 유산 외에도 의례와 예술품 등 정신적 유산도 보유하고 있다.

가장 경주다운 풍경을 보려면 대릉원에 가면 된다. 경주 평야 한복판에 인접한 신라시대 고분군이다. 이곳에는 황남대총, 천마총, 미추왕릉 등 모두 23기의 고분이 모여 있다. 봉분이 무리지여 있는 모습은 사발을 엎어놓은 형상을 닮았다. 오래 전 멈추어 있던 고대의 시간이 눈앞에서 다시 살아 움직인다. 다행히 돌무지 덧널무덤 형식으로 축조돼 도굴로부터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부터 발굴이 시작돼 금관 등을 포함한 토기와 생활용품이 출토됐다.

다소 흐린 날씨 탓에 왕릉이 실루엣처럼 가물거린다. 천년이 넘은 시간은 그렇게 찬란한 고분의 역사로 응결돼 있다. 바람이 불어오면 마치 잠든 고대 왕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무리지어 있는 고분은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얘기하는지 모른다.

가장 신라다운, 가장 경주다운 역사를 알현하고 싶다면 첨성대에 가면 된다. 국보 제31호 첨성대. 별 관측을 위해 쌓은 대(臺)를 일컫는다. ‘삼국유사’,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증보문헌비고’ 등에 따르면 선덕여왕 때에 축조됐다. 위는 네모 아래는 둥근모양의 상방하원(上方下圓)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첨성대의 목적은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과 별의 운행을 관측하는 데 있었다. 전자가 점성학 성격이 강하다면 후자는 역학에 초점을 맞췄다. 무엇이든 옛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지혜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별을 관찰하고 그것을 토대로 운명을 점치고자 했던 옛사람들이나 오늘날 일월오성을 토대로 날씨와 인간의 운명을 가늠하고자 했던 것이나 본질은 한가지다.

첨성대를 찬찬히 둘러본다. 천년의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 지금에 당도해 있다. 아득하고 까마득하지만 흐르고 나면 찰나의 순간이다. 옛사람들의 자취는 고스란히 남아 오늘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 오늘의 시간이 흘러, 또 미래의 사람들은 그 길을 열어갈 것이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