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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1> 프롤로그] 전통과 문화 위에 지은 ‘오래된 미래’

조선시대 사설교육기관 ‘서원’ 성리학적 가치관 전승
필암·소수·도산·옥산서원 등 9곳 세계문화유산 등재
서원문화 재해석 통한 문화콘텐츠 창출·가능성 모색

 

서원(書院)은 조선시대 사설 교육기관을 일컫는다. 시기적으로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지방의 지식인들에 의해 건립됐다. 국어사전에는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거나 석학이나 충절로 죽은 사람을 제사하던 곳”을 말한다.

서원이 향교나 성균관과 다른 점은 입신양명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를 고민하고 가르쳤다는 의미다. 제향자의 정신이 구현된 공간에서 선현들의 삶과 학문을 배우고 익히며 이를 실천의 장으로 모색했다는 방증이다.
 

언급한대로 서원에서는 제향을 봉행하고 학파의 결집을 도모하는 성리학적 가치관이 전승됐다. 나아가 선비들 교류의 장이자 향촌 교화의 중요한 근거지로 활용됐는데 학문과 제향과 같은 정형화된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서원은 풍광이 뛰어나고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자리한 터라 심신을 풀고 편하게 쉬는 유식(遊息) 행위와 같은 활동도 이루어졌다.

한국의 서원은 지난 201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장성 필암서원, 정읍 무성서원,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안동 병산서원, 함양 남계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 모두 9곳이다. 세계유산은 국가문화재를 넘어 세계인의 유산이 됐다는 것으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한국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는 재도전 끝에 이루어진 결실이었다. 문화재청은 당초 2016년 4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의 반려 의견에 따라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다양한 자문을 거쳐 논리를 보강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 의 기술, 비교연구 보완, 연속유산으로서의 논리 강화 등을 부연해 결실을 이뤄냈다.
 

당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 사회 전반에 널리 보편화됐던 성리학의 탁월한 증거이자 성리학의 지역적 전파에 이바지하였다는 점에 대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며 “전체 유산과 각 구성유산의 진정성과 완전성, 보존관리계획 등도 요건을 갖춘 것으로 봤다”고 설명한 바 있다.

9개 서원은 ‘하나의 유형으로 정립되는 과정은 물론 성리학이 동아시아 전역에 확산되어 지역적 특색’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인정을 받았다.

사실 전국에 분포한 서원은 약 600여 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은 여타의 서원 중에서도 제향자의 정신과 건축적 가치 등이 실답게 구현된 곳이다. 9곳의 서원은 지역에서도 당대 성리학적 사상이 응집된 공간으로서뿐 아니라 독특한 문화가 투영돼 있어 세계유산으로 손색이 없다.

 

 

서원의 기능과 맞물려 주목되는 부분이 건축이다. 제향과 강학, 교류 등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까닭에 서원은 적극적으로 주변의 자연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취했다. 주변의 지형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지향하고 공간 구성도 세심한 배려를 했다.

‘한국의 서원’(미술문화·2019)의 저자 김희곤은 우리의 서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의 표현은 서원이 지닌 인문학적, 건축적, 역사학적 미학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국의 서원은 우리 민족의 열정으로 피어낸 꽃봉오리다. 서원에는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소신과 가치를 지키려 했던 선각자들의 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역사의 철퇴를 맞으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한국의 서원에 탈색되지 않는 민족의 혼이 담겨 있다. 오랜 시간을 버티고 살아남은 건축물은 그 민족의 혼과 사상을 압축해 놓은 사상과도 같다. 오래된 건축물은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다.”

장성 필암서원은 호남 서원의 양상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전의 서원들이 대부분 경사 지형에 들어섰던 데 반해 이곳은 평지에 건립돼 건축의 배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색적이다. 또한 이곳에는 서원의 재산과 노비 운영 등에 관한 문서 등이 소장돼 있다.

정읍 무성서원은 향학을 통한 향촌 교화의 기능을 담당했다. 사회 전반에 성리학이 확대된 서원의 양상을 보여주며, 흥미롭게도 이곳은 최치원이 선정을 베풀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영주 소수서원은 이후 서원의 기능인 강학, 제향에 영향을 미쳤다. 문헌 자료가 풍부하며 풍광 또한 아름답다.

정여창을 배향하는 함양 남계서원은 지역 사림에 의해 건립된 최초 서원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서원의 배치 형식이 처음 등장한 곳으로, 이후 건립하는 서원의 기초가 됐다. 김굉필을 배향하는 달성 도동서원은 경사지에 건축을 일렬로 배치한 구도가 이색적이다.

출판과 장서 기구로 서원을 정립한 곳은 경주 옥산서원이다. 서원 내부에 교류와 유식(遊食) 기능을 담당하는 누마루 형식의 무변루가 있는데 이후 설립된 서원은 누마루를 건축하는 것이 보편화될 만큼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일반적인 서원의 본질적 기능은 교육이었지만 안동 병산서원은 사림의 공론화장으로서의 역할을 도모했다. 많은 학자들이 모일 수 있는 누마루인 만대루는 자연경관과 어울려 독특한 정취를 선사한다. 학문과 학파의 중심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은 안동 도산서원이다. 이곳은 퇴계 이황의 강학처로 알려져 있으며 일대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룬다.

김장생을 배향한 논산 돈암서원은 예학을 논하던 곳이다. 성리학적 이론인 예학 관련 연구 외에도 관련 저작물이 남아 있다.

이처럼 각 지역의 서원은 문화보존과 창조적 계승 차원과 맞물린 문화자산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관점에서 서원이 어떻게 세계의 보편적 가치와 연계돼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조명하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다. 이 기획 시리즈는 한국인의 삶과 정신에 영향을 끼친 교육과 문화 공간인 서원문화를 재해석해 문화콘텐츠와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서원의 가치를 발굴하는 데 의미가 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