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구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의 모습이다. 1975년 10월14일 왕복 2차로의 자동차 전용도로인 구 영동고속도로(현 456번 지방도)가 개통 되면서 대관령 구간을 지나는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들어선 휴게소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 당시 버스에는 속이 좋지 않은 승객들을 위해 운전석 뒤편에 비닐봉지가 늘 비치돼 있었다. 특히 험한 대관령을 넘을 때는 꼭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대관령 정상에 문을 연 휴게소에 들러 휴식을 취하는 것은 승객들에게는 필수 조건이었다. 당시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관문이라는 상징성은 있었지만 말이 좋아 고속도로지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를 차를 타고 오르내리는 역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대관령 구간을 터널로 가볍게 통과하는 현재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뜻이다. 당시로서 우리에게는 선물 같은 귀한 도로였고, 명소(命召)로 불리는 귀한 쉼터였다. 현재는 `대관령 옛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고, 대관령휴게소도 `구 대관령휴게소' 또는 `대관령마을 휴게소'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아 많은 이가 찾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험한 대관
4·15 총선이 모두 마무리됐다. 도내 8개 선거구에서는 여덟 명의 새로운 동량(棟梁·기둥이 될 만한 인물) 이 저마다의 포부를 가슴에 새기며 제21대 국회의원으로서 첫발을 내딛게 됐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치러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진행된 투표도 마찬가지다. 1969년 10월17일 `3선 개헌 국민투표' 날, 찬성 65.1% 얻어 통과됐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비극 잉태 한복에 비녀 꽂은 할머니부터 양복 차려입은 신사까지… 옛적에도 투표는 소중한 권리 세계 각국이 이번 총선을 두고 “코로나19 선거 모델”이라고 하거나 “한국의 실험적 투표 방식을 모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이니 말이다.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끼고 기표소로 들어가는 모습들은 생경했지만 투표 열기는 다른 국회의원 선거와 별단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처럼 투표용지에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는 변함이 없지만 풍경들은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 이후 표를 찍는 기표대의 재료는 대부분 나무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과 달리 기표대 안쪽 벽에는 후보자의 기호와 이름, 정당명 등
거침없는 산세에 넋을 잃고 '울산바위' 병풍 삼은 초가집은 어찌나 정겨운지…쉼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고즈넉한 시골마을의 풍경 너머 명산(名山) 설악산의 풍광이 병풍처럼 펼쳐진다.(사진 ①) 1960년대 말. 어딘가 취재를 가던 강원일보 기자는 차창 밖에 휘리릭하고 등장한 거침없는 설악의 산세(山勢)에 그만 넋을 잃어 차를 세우고 만다. 그리고는 이내 카메라 꺼내 들고는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이런 로또 같은 풍경을 만났으니 필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게다. 함께 인화된 다른 사진들로 추측해 보건대, 이 사진을 찍은 기자는 아마도 신흥사로 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멋스러운 소나무들 호위병처럼 내세우고 낭만 가득 태운 시골버스 한 대가 덜컹덜컹, 종착지로 내달린다 취재에서 한발짝 물러나 잠시의 휴식을 결정한 기자의 결단(?)에 50여년이 흐른 뒤 우리는 또 그림같이 아름다운 장면 하나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사진은 레트로(retro) 감성 그 자체다. 사진을 한번 톺아보자. 그러고 보니 사진 중심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