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짙은 밤 내전 앞 연못, 유신이 흙바닥 한구석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구석엔 열댓 개의 작은 돌덩이 두 뭉텅이가 서로 대각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하나는 월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명활산성이었다. 유신은 돌 몇 개로 만들어진 두 성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월의 밤공기는 서늘했다. 유신은 마치 소리가 생각을 해칠 것처럼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흙바닥에 자리한 두 돌의 대치 역시 미동도 없이 계속되었다. 그 꼴은 실제로 7일간 계속되었다. 월성과 명활산성 사이에선 어떤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고, 유신은 가만히 지켜볼 따름이었다. 군사들 사이에서 유신이 수성(守城)을 택한 것이란 말도 있었고, 지레 겁먹은 것 아니냐 혹은 싸울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노장은 매일 아침 순시 돌며 군사들의 사기를 살필 따름이었다. 성에서 싸울 생각도 없었고, 그렇다고 싸움을 하지 않으려는 것도 아닌 것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10리 앞 명활산성에선 비담의 군사들이 월성을 노려보고 있었으나 서라벌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고요하고 적막했다. 상황은 명료했다. 유신은 월성에서 왕을 지키고 있고, 비담은 명활산성에서 난을
코로나19의 유행이 벌써 1년 반이 되어가는 현재, 모든 분야가 그 영향을 받았지만 특히 극장의 충격은 컸다. 지난해 극장 관객 수는 전년 대비 무려 85%가 줄었다. 그래서일까. 영화 '모가디슈'가 관객 몰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 영화계에 작은 희망처럼 보인다. ◆'모가디슈'는 손익분기점을 넘을까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가 170만 관객을 넘겼다(8월 8일 기준). 만일 평상시라면 이런 기록은 '흥행실패'로 평가될 수 있을 게다.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 들어온 영화가 아닌가. 1천만 관객은 아니라도 그에 상응하는 관객 수가 되어야 성공으로 얘기됐었고, 그래서 그만한 제작비가 투여되는 영화들이 이 시즌에 포진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됐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텅텅 비어버린 극장은 블록버스터 시즌이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모가디슈'가 거둔 이 성적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곧 200만 관객도 넘길 것이고 어쩌면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예상들도 나온다. 총 제작비 255억원이 들어간 '모가디슈'의 손익분기점은 600만 관객이 돼야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잇따른 개봉
아들을 낳으면 끓여주려고 사다 놓은 북어를 아베는 다듬잇돌 위에다 놓고 팍팍 두드려 발기발기 째면서 욕을 했다. 아들도 하나 못 낳느니라고! 그놈의 아들이 뭣인지, 점잖던 아베 입에서 오만가지 흉한 말이 튀어나왔다. 북어 대가리까지 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씹으면서 막걸리 한 주전자를 댓바람에 비운 아베는 대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밤이 지나고 날이 새도 아베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매는 퉁퉁 부은 몸으로 삽짝을 열고 고샅길로 나가 목이 빠지도록 아베를 기다렸제. 하루 이틀, 이제나저제나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꿈엔들 생각했으랴. 그대로 잠적할 것을. 며칠 있으니 고향 남산골이 휘딱 까뒤집어졌다. 동네가 난리 났니라. 우물가에서 떠드는 소리가 산모의 안방까지 들렸으니 얼마나 우세스러웠겠노. 어매는 죽고 싶었다더라. 까딱했으면 나도 어매도 이 세상 사람 아닐 수 있었다. 기가 막히제. 아베가 이웃 마을에 사는 아들 셋 낳은 여편네 손목을 잡고 멀리 달아났단다. 남의 집 행랑채에 곁방살이하던 그 집 여편네와 아베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징글징글하게 없이 살다가 돈을 보고 팔자 고쳐먹었는지 누가 알겠냐. 아베에게는 남한테 꿀리지 않을 만
◆대상 논픽션 ▷'분이' 김옥순(65·경북 경산시 선비길) ◆논픽션 부문 ▷'꿈꾸는 숲' 이승영(75·서울 도봉구 해등로) ▷'실버 취준생 분투기' 이순자(67·서울시 성북구 북악산로) ▷'88올림픽과 나' 김종석(77·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버즘나무 댁' 박정화(73·경기도 과천시 부림동) ▷'코로나19와 마주치기' 이주희(70·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 ◆시 부문 ▷'당신의 빈 자리' 홍영수(65·경기도 부천시 도약로) ▷'노인보호구역' 이명희(67·대구시 남구 이천로) ▷'말이 가는 길' 김만옥(66·부산시 부산진구 성지곡로) ▷'만남' 박인숙(69·대전시 대덕구 계족로) ▷'두부를 말하다' 피귀자(70·경북 경산시 옥산로) ◆수필 부문 ▷'은색 비늘 같은 강의 기억' 이상열(66·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개구리 무름' 박노욱(65·부산시 금정구 남산로) ▷'귀명창' 정연원(76·대구시 수성구 범어로) ▷'마지막 선물' 김영순(74·광주시 서구 화개로) ▷'조팝꽃' 김춘기(69·경북 영천시 청산길) ◆심사위원 ▷심사위원장: 이인화(소설가) ▷논픽션 부문: 박희섭(소설가), 엄창석(소설가) ▷시 부문: 윤일현(시인), 이정환(시조시인) ▷수필 부문:
곱다. 꽃 속에 파묻힌 어머님이 웃고 계신다. 향년 100세. 상객들이 모두 호상이라면서 웃고 떠들썩하니 잔칫집을 방불케 한다. 너도나도 망자와 얽힌 추억을 회상하면서 술잔을 기울인다. 사진 속을 걸어 나온 어머님이 기웃거리며 자손들 이야기에 참견하고 다니시는 듯하다. 무연히 타고 있는 향불 연기 속에서 이태 전의 일이 떠오른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님께 생신을 축하드린다면서 꽃바구니를 안겨드렸다. "오늘이 이월 열사흘이냐?" 그 말씀에 깜짝 놀랐다. 머리끝이 치솟는 느낌이었다. 간간이 정신 줄을 놓으시더니 자식도 못 알아보고, 아득한 과거 속으로 묻혀 지낸 지 오래되었다. 자식들 얼굴도 못 알아보는 처지에 생일의 기억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월 열사흘은 어머님께 어떤 의미였을까? 단순한 본능일까, 해마다 추억된 학습의 기억일까. 이월 열사흘, 세상에 온 그날부터 버림받은 상처가 한 평생 자신을 지탱할 힘의 원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님은 문맹이다. 그렇지만 일흔 살에 미국의 딸네 집에도 다녀오셨다. 미국까지 가는데 내 이름 석 자는 알고 가야지 하시면서 글자를 익혔다. 입국심사를 받을 때 서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머님은 마음이 바빠졌다. 까막눈
경북대학교 입학 후 가장 먼저 한 것이 도서관 건물의 한 켠(당시 시청각실)에서 고등학교 후배(대학 입학은 같은 해였다)와 함께 연 2인 시화전이었다. 내 딴에는 경북대에 어떤 '글쟁이(문청)'들이 있는지 탐색해보려고 미끼를 던진 셈이었다. 여러 '글쟁이'들이 그 미끼를 물었다. 복현문우회라는 모임이 있음도 알았다. 그 후 나는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혼자 작업하겠다는 고집으로 복현문우회에 들라는 유혹을 한사코 거절하기도 했다. 때로 도서관 앞에서 자주 해 지는 쪽을 향해 묵상하듯 앉아 있던 김춘수 교수를 지켜보기도 했다. 그런 질풍노도기의 만남의 기억으로 도서관은 내게 각인됐다. 지금의 박물관 건물이 원래 도서관이었다. W자 모양인데, 건축가 조자용의 작품으로, 제트기와 박쥐 형상을 본 따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 초에 도서관이 옮겨가 신관 증축으로 위용을 갖추면서 옛 도서관 건물은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경북대 도서관은 특히 대구 항일운동의 본산이었던 우현서루의 정신을 잇는 공간으로 의미 지을 수 있겠다. 이일우의 손자 이석희가 우현서루의 장서 482종 3천937책을 경북대 도서관에 기증했는데, 함께 수집한 책들과 합쳐 8천800여 권으로 비로소 명
김태열 영남이공대 교수(한국보훈포럼회장)는 최근 대구시민, 학생들을 대상으로 애국심 함양 및 나라사랑 교육 등 보훈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구시교육감 표창장을 받았다. 문화부 jebo@imaeil.com
시인·수필가인 이병욱(대구스피치평생교육원 이사장) 씨가 최근 대구 수성구 문인 300여 명으로 구성된 '수성문인협회' 제4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문화부 jebo@imaeil.com
한 장의 사진을 본다. 경북대 도서관 앞에 조성된 둥근 화단, 거기에 학생들이 앉거나 서서 책을 보고, 책가방은 꼬리에 꼬리를 문채 일렬종대로 놓여 있다. 내가 대학을 다녔던 1980년대 도서관의 새벽 풍경이다. 오늘날에는 도무지 볼 수가 없는 광경이지만, 도서관 열람실에 좋은 자리를 먼저 잡기 위하여 새벽부터 나와 가방으로 줄을 세워둔 것이다, 어떤 학생은 친구에게 가방을 맡기고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아침밥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시간에 맞추어 자신의 가방 곁으로 다시 와서 도서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 들어가 열람석의 구석구석으로 밀물처럼 스며든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가방에서 여러 권의 책을 꺼내 빈 책상에 놓아두기도 한다. 이때 생긴 말이 '도자기', 도서관에 자리 잡아주는 자기라는 뜻이다. 자리를 잡지 못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메뚜기'도 있었다. 나는 공부를 하다가 집중이 잘 되지 않거나 혹 졸리기라도 하면 서가로 갔다. 주로 800번 단위의 문학 서가와 100번 단위의 철학 서가였다. 어떨 땐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어떨 땐 책 한 권을 빼어들고 나도 모르게 반나절을 쪼그리고 앉아 읽기도 했다. 노자와 공자
일요일 낮 12시10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전국노래자랑'이 첫 전파를 탔다. 전국노래자랑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보고 스타를 키워낸 대한민국 최초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예심참가자 약 50만 명, 무대에 오른 인원만 3만여 명이 넘는다. 전국노래자랑이 현역 최장수 프로그램이 된 일등공신은 단연 진행자 송해. 30주년 공연 때 전국 방방곡곡의 무대중 "평양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황해도가 고향인 그는 눈물을 흘렸다. 박상철 일러스트레이터 estlight@naver.com 문화부 jebo@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