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전체 상영작을 공개하며 본격적인 발걸음을 뗐다.
전북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들과 전북에서 촬영된 영화들도 관객들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전북의 영화와 영화인을 대상으로 한 ‘지역 공모 선정작’, 전북 기반의 단편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전주랩 2021 전주숏프로젝트 선정작’이 대표적이다.
지역 공모 선정작은 강준하 감독의 <개정>, 김태경 감독의 <두번째 장례>, 이지향 감독의 <스승의 날>, 조미혜 감독의 <큐브>, 허건 감독의 <연인>(가나다순) 등 단편 5편이다. 이 가운데 <스승의 날>은 한국단편경쟁에서, 다른 4편의 작품은 코리안시네마(단편)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또 전주숏프로젝트 선정작은 김고은 감독의 <동창회>, 김은희 감독의 <힘찬이는 자라서>가 이름을 올렸다. 두 작품은 전북을 배경으로 촬영을 진행할 예정이다.
강준하 감독 <개정>

강준하(25) 감독은 첫 단편 <개정>으로 전주국제영화제 지역영화 공모에 선정되는 행운을 안았다. 대학교(전주대 영화방송제작학과)를 졸업한 뒤 사비로 만든 영화였기에 기쁜 마음이 더 컸다고 한다.
제목 ‘개정’은 군산면 개정면을 뜻한다. 실제 군산 출신인 강 감독이 고등학교를 나온 곳이다.
“나중에 성인이 돼 우연히 개정에 가게 됐는데, 왠지 모르게 제가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주인공처럼 익숙한 공간이면서도 감옥처럼 갇혀 있는 느낌이 재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영화는 도시의 삶에 지쳐 개정이라는 지방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정호’가 동창회에 나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도시로 다시 한 번 나가게 된다는 줄거리다.
강 감독은 “꿈과 현실에 대해 깊게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 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때 어떠한 선택을 내리더라도 본연의 순수함을 잃지 말았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이라고 밝혔다.
초단편, 단편 영화를 주로 찍어온 그는 현재 중장편 영화를 계획하고 있다.
김태경 감독 <두번째 장례>

“삼촌이 영혼결혼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과연 본인도 원할까? 생전에 만나던 여자친구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존중을 하고 진행한 것일까? 라는 물음에서 영화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김태경(30) 감독의 <두번째 장례>는 2년 전, 남자친구 ‘종훈’과 사별한 ‘수현’이 종훈의 동생 ‘지훈’에게 종훈의 영혼결혼식이 열릴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김 감독은 “남겨진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죽은 이를 마음속에서 보내주고, 남겨진 삶을 살아가자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작품 제목도 각자의 방식대로 보내준다는 의미를 담았다.
울산 출신인 김 감독은 전주대 영상콘텐츠학부에서 영화영상,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단편 <나도 살고 싶다>(2014), <스케치북>(2017), <강낭콩 한 살이>(2018), <두번째 장례>(2020)를 연출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지역영화 공모에 선정된 것은 <강낭콩 한 살이>에 이어 두 번째다.
이지향 감독 <스승의 날>

“전주국제영화제 지역 공모 선정은 저 자신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덕분에 이젠 걱정보다 용기가 앞섭니다.”
이지향(26) 감독의 <스승의 날>은 ‘변질된 사제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학부 시절부터 김 교수의 지도 제자로 온갖 시중을 들어온 대학원생 ‘지원’이 원하던 연구소 합격 발표를 앞둔 시점, 예기치 못한 일에 휘말린다는 내용. ‘지원’은 그가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자신의 두 친구, 그들의 또 다른 동기의 이야기가 합쳐진 인물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친구 두 명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두 친구 모두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2년 넘게 얘기를 듣다 보니 같이 화를 내고 있었고,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얘기하다가 대학원생이 주인공인 스토리를 쓰게 됐습니다.”
익산에서 태어난 이 감독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전북독립영화협회 ‘전북단편영화제작스쿨’ 9기로 단편 <꼬리잡기>(2018)의 각본, 연출을 맡아 전북독립영화제 개막작, 대전독립영화제 초청작으로 상영했다. 이후 도킹텍프로젝트 협동조합의 제작 지원을 받아 <스승의 날>을 만들었다.
조미혜 감독 <큐브>

조미혜(38) 감독의 <큐브>는 인간의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 가운데 ‘주’에 관한 이야기다. 3평 이하 주거 공간에서 사는 사람이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직육면체가 된다는 설정이다.
조 감독은 “3개월간 고시원에서 생활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어느 날 작은 침대에 누워있다가 이대로 방에 갇혀 네모인 채로 굳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과연 인간에게 무엇이 중요할까’라는 질문이 이 영화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매일 안정과 휴식을 취하는 주거 공간은 행동과 생각에도 많은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경제와 재산 가치를 제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 부작용을 젊은 세대와 경제적 약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 출신인 조 감독은 전주가 좋아 전주에 정착했다. 대학교(동아대 경영학부)를 졸업하고 영화 공부를 시작한 그는 시네마테크 부산 필름워크숍을 수료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8년간 스태프로 일하기도 했다. 전북독립영화협회 ‘전북단편영화제작스쿨’ 3기로 단편 <그 여자>(2012)를 연출했다. 이후 <그녀의 애인>(2013), <리메인>(2018), <큐브>(2020)를 연출했다.
현재는 전주를 배경으로 한 두 자매의 이야기와 학교폭력으로 가해자의 엄마가 된 여성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시나리오 작업하고 있다.
허건 감독 <연인>

허건(30) 감독은 전북 출신은 아니지만, 전북과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허 감독은 2017년 지인들과 함께 완주 너멍굴영화제를 만들어 3년간 운영했다. 이러한 활동이 인연이 돼 완주문화재단으로부터 제작 지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 <연인>이다. 전북 올로케이션 영화다.
영화는 치매에 걸린 남편을 요양원에 보내는 날, 자신도 치매가 시작됐다는 걸 눈치챈 아내가 동반 자살을 결심하지만 죽는 게 쉽지 않다는 줄거리다. 허 감독은 “‘치매’와 ‘죽음’(존엄사)은 오랫동안 관심 가졌던 소재”라고 말했다.
“자신을 망각하고, 생의 의지를 꺾어내는 치매는 어쩌면 죽음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인간들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삶과 죽음을 함께 고민해주는 부부(늙은 연인)의 모습을 통해 결국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곁에 있어 주는 ‘사랑’이 우리에게 참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허 감독은 애착이 가는 장면으로 첫 장면을 꼽았는데 그 이유로 “멍한 표정으로 차창 밖을 응시하는 노인(신강균 배우)의 이미지와 움직이는 차와 함께 스쳐 가는 차창 밖 나무의 그림자가 마치 세월이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전남 광주에서 태어난 허 감독은 경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단편 <메이데이>(2015)를 시작으로 영화 연출을 시작했다. <아니마 아니무스>(2016), <불편한 영화제>(2017), <무기들의 시간>(2019), <너멍굴 너머>(2020), <사나이신드롬>(2020)을 연출했다.
전주랩 2021 전주숏프로젝트
올해 전북을 기반으로 제작되는 전주숏프로젝트에는 총 26편이 접수돼 김고은 감독의 <동창회>와 김은희 감독의 <힘찬이는 자라서>가 최종 선정됐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제작지원비(각 500만원)뿐만 아니라 실무멘토링까지 맡아 작품 제작을 돕는다.
김고은 감독은 전주대 영화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해피투게더>(2019)를 연출했다. 졸업 후엔 광주 5·18 영화제작지원을 받아 <방 안의 코끼리>(2020)를 각본, 연출했다. <방 안의 코끼리>는 노인을 아이의 시선으로 그린 영화다. <동창회> 또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다.
김은희 감독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연출을 전공하며 단편 <소화불량>, <작용과 반작용>을 연출했다.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문제들 앞에서 절망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있다.
문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