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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통 큰 기사-떠난 미군, 남겨진 땅과 사람] 기름에 찌든 미군기지, 안갯속 환경정화

다이옥신 나와도 통제 불능… 원상복구 정부 협상 '연전 연패'

 

 

'맥팔랜드 사건' 등 국토 유린 오염사고 비일비재
국내외 통용 '오염자 부담 원칙'도 적용되지 않아
경기도내 반환 미군기지 23곳 중 토양오염은 18곳
유류탱크·지하배관 파손에 의한 누출 주된 원인
캠프 하우즈앞 유채꽃발 조성 1년도 안돼 '고사'
SOFA 환경조항 강화됐지만 사전 예방은 빠져
'先 반환 後 정화' 악수 되풀이… 향후 1조 추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한강에 미군이 포름알데히드(HCHO)를 무단 방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2000년 2월9일 서울 한복판 용산 미군기지에서 벌어진 '맥팔랜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영안실 부소장 맥팔랜드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맥팔랜드는 당시 군무원 김모씨에게 지시해 포름알데히드를 희석시킨 시체방부처리용 475㎖짜리 포르말린 용액 470병을 영안실 싱크대에 쏟아 버리는 방법으로 아무런 정화처리 없이 한강 수계로 흘려보냈다.

영화처럼 포르말린 무단 방류 탓에 탄생한 괴생명체가 한강을 휩쓸고 다니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주한미군의 환경 오염 사고로 인해 우리 국토에 생채기가 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유사하게 '애스컴'이라 불린 인천 부평 미군 기지에 조성된 부영공원에서 앞다리가 3개 달린 맹꽁이가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미군은 기름으로 찌든 땅을 내놓고 떠났다. 반환 공여구역과 주변 지역에선 국내외에서 통용되는 '오염자 부담의 원칙'도 적용되지 않았다.

환경 정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미군기지 반환 협상의 주요 쟁점이기 때문이다. 한미 양측은 공여구역 반환 협상 과정에 환경 정화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반환 협상 결과는 매번 우리 정부의 연전 연패로 되풀이됐다. 아쉬울 게 없는 미국은 버티고 우리 정부만 백번 양보해 우선 기지를 돌려받아 정화하는 식이었다.

용산 미군기지 유류 탱크와 배관에서 장시간 흘러나온 기름이 주변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서울시는 2001년 유류 오염 사실을 인지하고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인근에 관정을 설치해 매년 정화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오염의 원인을 잡아내지 못한 채 주변만 정화하며 혈세만 쏟아붓고 있다.

용산 미군기지뿐 아니라 경기도와 인천의 미군이 떠난 자리도 마찬가지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2007년 반환된 미군기지 24개소의 오염 정화 비용으로 2천99억원이 투입됐다.

2017년 기준 도내 반환 미군기지의 토양오염은 전체 23개소 중 18개소로 나타났다. 면적으로 따지면 미군기지 총면적 337만2천360㎡ 중 12%인 39만4천850㎡가 오염된 것으로 조사됐다. 미오염기지는 5개에 불과했다.

 

 

의정부 캠프 카일은 전체 면적에서 석유계총탄화수소(TPH·Total Petroleum Hydrocarbon), 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크실렌(BTEX), 카드뮴(Cd), 구리(Cu), 아연(Zn) 등으로 오염된 면적이 전체 면적의 46%나 됐다.

유류 탱크와 지하배관 파손에 의한 기름 누출 등이 주된 원인이었다. 미2보병사단 소속 공병 부대가 주둔한 캠프 시어즈도 TPH, BTEX, Zn, 납(Pb), 페놀, 염소이온, 질산성질소에 의한 오염이 심각했다.

파주 캠프 에드워즈와 캠프 하우즈도 저장탱크와 지하배관 파손 등의 이유로 휘발유가 누출돼 인근 고산천과 토양 오염을 야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캠프 하우즈 앞 공터는 유채꽃밭을 조성했다가 1년도 안 돼 모두 고사해 주민들이 오염된 흙을 전부 들어내고 새 흙을 성토하는 작업이 이뤄지기도 했다.

인천 부평 미군기지 캠프 마켓은 유류와 중금속 등 각종 오염물질에 더해 백혈병·간암을 유발하는 1급 발암물질 다이옥신이 발견됐다. 미군 폐품을 처리했던 군수품재활용센터(DRMO) 토양에선 다이옥신이 선진국 기준을 10배 초과한 1만347pg-TEQ/g(피코그램)이 검출됐다.

 

 

1960년대 주한 미군 공병대 중대장으로 복무한 필 스튜어트씨는 지난 2011년 캠프 마켓을 방문해 미군이 다이옥신이 주성분인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를 사용했다고 증언했다. 오염부지 정화를 위한 민관협의체가 꾸려졌고 전국 미군기지 최초로 토양에 고열을 가해 다이옥신을 태우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단, 이 같은 조치는 한미 간 오염 정화 책임을 두고 입장을 좁히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캠프 마켓 반환 협의가 길어지자 기지 내 환경 오염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 대비해 우리 측 비용으로 정화 작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국제환경법에 따라 오염 원인자인 미군이 복구 비용과 손해 배상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지속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기도 하다. 정부는 오염 정화 책임에 대해 한미 간 협의를 지속한다는 조건을 달았으나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처럼 문제는 오염정화 책임이다. 미군의 환경 오염 사고가 잇따르자 한미 양국은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합의의사록에 2001년 1월 미합중국 정부가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대한민국의 환경법령과 기준을 '존중'한다는 제3조 2항을 신설했다.

또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양해각서에 인간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갖는 경우 오염의 치유를 신속하게 수행한다는 KISE(Known, Imminent, Substantial, Endanger) 규정을 삽입했다.

이후 몇 차례 환경 조항이 강화됐지만, 환경오염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이나 실체가 없고 사전예방의 원칙도 빠져 있어 우리 정부에 불리하다. 향후 환경정화에 투입해야 할 금액은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르면 미국이 부담해야 하나 하루라도 빨리 반환을 받으려는 우리 정부와 지자체 입장에선 천문학적인 금액을 부담하더라도 '선 반환 후 정화'라는 악수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수연 녹색연합 군환경팀장은 "미군기지는 주거지역과 맞닿은 곳도 많은데, 감시와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며 "오염자 부담원칙에 따른 원상복구 의무규정을 SOFA에 명시해 반환 이후 발견되는 오염에 대해서도 미군에 의해 발생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팀장은 이어 "미군이 평택과 대구로 기지를 재편하면서 헌 집을 모른 척하면 국방부는 부실 정화를 해서 지역 주민들에게 넘겨주는 2차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며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현 구조가 미군 반환공여구역 환경 문제의 핵심"이라고 했다.

한종갑 동두천미군재배치범시민대책위원장도 "미군기지 반환은 한미 양측이 오염에 대한 책임 공방을 벌이다 교착 상태에 빠지고 결국 우리가 정화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며 "하루라도 빨리 반환을 받아야 한다는 절박한 바람이 있지만, 환경 치유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글 : 황준성차장, 손성배, 박현주기자

사진 : 김도우기자

편집 : 김동철차장, 장주석기자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