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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정선 마을호텔 18번가]연탄불에 지글지글…광부의 고단함 달래준 보양밥상

곤드레 한가득 솥밥부터 쫄깃 연탄구이까지

 

 

수많은 민박 활용 마을 전체 새단장
떠났던 주민들이 이젠 마을로 돌아와
골목길 미로처럼 펼쳐진 구공탄시장
‘추리' 콘셉트로 테마관광지 재탄생


옛 탄광 풍경 그대로 ‘구공탄구이'
돼지모듬구이·육회비빔국수 일품
돌솥밥·라테까지 ‘곤드레 별미'에
고소한 석탄빵 곁들이면 ‘건강 한끼'


마을호텔 18번가.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2길 36번지를 이르는 말이다. 옛날 주소로 이곳이 ‘고한18리' 골목길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골목 안에서는 중식당부터 돌솥밥, 쭈꾸미에 연탄구이까지 다채로운 메뉴를 맛볼 수 있고, 막국수와 지역 특산품인 곤드레로 만든 다양한 식도락도 인근에서 즐길 수 있다. 상점이나 전시관은 아니지만, 야생화를 만끽할 수 있는 만항재와 국보 제332호 수마노탑을 간직하고 있는 정암사도 마을의 일부다. 뒤쪽으로는 특색 있는 볼거리를 자랑하는 구공탄시장이 이어져 있다.

#마을호텔을 소개합니다=“처음부터 마을호텔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골목이 너무 비어 있으니까 마을을 한번 살려보자는 취지였죠.” 김진용 마을호텔18번가 협동조합 상임이사의 이야기다. 김진용 이사 역시 정선 고한 출신이었다. 그는 “탄광이 쇠퇴하면서 사람들이 모두 떠났다. 인구가 줄고 집도 비다 보니 쓰레기도 많아지고 사람도 다니지 않고 피해다니는 골목이 됐다. 오래 체류를 하는 이들도 떠나면서 민박도 운영이 안 되고 여러 문제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주민들과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데 뜻을 모았다. 골목에 민박이 이렇게 많기도 힘든데 우리 입장에서는 이것도 마을의 자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무너져 가던 폐가가 예쁜 정원이 됐고 비어 있던 슈퍼는 사진관으로 새 단장했다. 단순히 겉모습만 예뻐진 것이 아니라 떠났던 동네 출신 주민들이 다시 돌아오고 새로운 주민들도 생겼다. “마을호텔이라는 것이 전국 유일무이하다 보니 입소문이 더 많이 난 것 같다”는 김 이사는 “무엇보다 대규모 사업을 들여와 건물 하나 짓고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공모 사업들을 따 오며 주민들이 하나씩 채워 가니 주민 주도라는 측면에서는 자생력이 있고, 지속 가능성이 있게 됐다는 점이 우리 마을의 자랑거리”라고 강조했다.

#탄가루 씻어내려 먹던 그 맛=거리 한복판 도로변과 마주보는 곳에 자리잡은 ‘구공탄구이'는 이곳의 정체성을 자랑하는 맛이다. 정선에서 나고 자란 안훈호(45) 사장이 기억하는 탄광촌의 저녁은 고된 탄광 일을 마치고 나온 광산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연탄에 고기를 구워 먹던 모습이었다. 목에 낀 탄가루를 씻어낸다는 의미였지만, 먹을 것이 부족하고 체력 소모가 심했던 노동환경을 버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으리라. 2022년 현재 고한읍의 광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떠났지만 그 풍경만은 이곳 ‘구공탄구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한때 정육점을 했었다는 안 사장의 솜씨답게, 신선하고 두툼한 육질이 일품이다. 돼지모듬구이를 시키니 항정살과 삼겹살, 생목살에 가브리살까지 푸짐하게 담겨 나온다. 잘 달궈진 연탄불에 구워 한입 물면 육즙이 팡팡 터진다. 이곳에서 꼭 맛봐야 하는 또 하나의 메뉴는 육회비빔국수. 신선한 국내산 소고기와 매콤쫄깃한 면발의 조화가 입맛을 쭉쭉 당긴다.

#곤드레의 변신은 무죄=마을호텔 상점과 인근 상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는 곤드레도 빠지면 아쉽다. 상점가 맨 끝, 구공탄시장과 맞붙은 곳에 있는 카페 ‘이야기꽃'에서는 ‘곤드레 라테'를 파는데, 말차라테와는 다른 고소함이 매력이다. 녹차 특유의 쌉싸름함은 줄고 고소함이 가미된 단맛이 나는 음료다. 걸어서 7분 거리인 ‘메밀촌막국수'에서는 메인메뉴가 무엇인지 물으니 막국수가 아니라 곤드레정식이란다. 정선 골짜기 밭에서 김영기(69)·전순천(여·65) 사장이 직접 키운 산나물과 꼼꼼히 따져 제철 물건으로만 가져오는 정선·영월 곤드레가 이 집만의 무기라면 쇠솥 그대로 내어 오는 곤드레밥이 바로 하이라이트. 특제간장소스에 쓱쓱 비벼 크게 한입 먹고 나물반찬을 손 가는 대로 집어 먹다 보면 입 안 가득 봄이 핀다. 시장 안 ‘예촌돌솥밥'에서도 ‘돌솥 곤드레정식'을 파는데, 마을 사람들의 훌륭한 한 끼 점심이라고. 차를 타고 15분 거리에 있는 ‘함백산돌솥밥'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과 주민들에게 입소문 난 맛집이다.

#구공탄시장=이리저리 둘러봐도 시장 입구는 보이지 않고 탄광 입구뿐이다. 한술 더 떠 그 위엔 안전제일 표지판까지 붙어 있다. 갸웃거리며 안으로 들어서면 좁은 골목들 사이 미로처럼 펼쳐진 상점들이 나타난다. 구공탄시장은 1960년대 석탄산업이 시작되던 시기, 주요 탄광들이 몰려 있던 고한읍으로 사람들이 밀려들어오며 문을 열었다. 석탄산업 초호황기였던 1970~1980년대에는 ‘개도 입에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제 활동이 활발했지만, 탄광이 하나둘씩 폐광되며 상점들도 문을 닫게 됐다. 하지만 구공탄시장은 최근 탄광테마를 살려 시장을 주요 관광지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올해 들어선 구공탄시장만의 좁고 복잡한 골목을 ‘추리' 콘셉트로 엮어 관광객과 상인들이 함께 즐기는 시장판 ‘추리게임'을 기획 중이라고. 이곳 구공탄시장에는 시장 콘셉트에 꼭 맞는 재밌는 간식이 있다. 석탄빵이 바로 그 주인공. 까맣고 단단한 모양새에 무질서하게 잘린 모습이 석탄과 판박이다. 오징어 먹물로 석탄의 까만색을 구현한 것이 특징. 안에는 부순 호두와 치즈를 넣어 고소함을 더했다. 갓 구운 석탄빵은 반을 툭 갈라 먹으면 노랗게 흐르는 치즈에 입맛이 돌고, 살짝 식혀 먹어도 바스러지는 스콘 식감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찰떡궁합이다.

정선=김현아·박서화·이현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