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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사빈 모리츠

 

 

“추상회화는 보편적이지 않은 인간의 영역과 감각적인 영역을 다루며, 이는 정신적인 세계로 옮겨간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독일의 여성화가 사빈 모리츠(Sabin Moritz, 1969~)의 아시아 첫 개인전 ‘레이징 문’(Raging Moon)을 서울 갤러리현대에서 4월 24일까지 전시한다. 그가 최근 몇 년 동안 제작한 구상과 추상회화, 에칭 연작 등 총 50여 점이 펼쳐진다.

 

냉전 시대 동독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빈 모리츠는 처음에 유년기의 경험과 전쟁의 참상을 구상화로 표현했다. 2015년부터 추상화로 전환, ‘정신적 풍경’을 구현하기 시작한다. 그는 개인과 집단의 가변적이고 파편적인 ‘기억’을 역동적인 붓질과 격정의 색채를 섬세하게 그러데이션, 거칠고 원초적인 선 등을 통해 감각적이고 매혹적인 추상화를 창조한다.

 

모리츠는 구상에서 추상으로, 추상에서 구상으로 ‘다시 또다시’ 자유롭게 넘나든다. 작가의 정물화 ‘메멘토 모리’, 장미나 나무 등의 동일한 대상을 에칭(동판화)으로 형상화하고 그 위에 유화물감과 크레용을 덧칠한 작품도 소개된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찬란하고 격정적인(raging) 색채의 향연이자 축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3월’, ‘대지’, ‘숲’, ‘바람’ 등의 자연 요소와 ‘안드로메다’, ‘카시오피아’와 같이 신화적이고 우주적인 작품 제목은 전시 제목 ‘레이징 문’처럼 관객의 상상력을 한껏 부추긴다.

 

‘레이징 문’은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 시인 중 한 명인 딜런 토마스(Dylan Thomas)의 시(In my craft or sullen art 나의 기교 혹은 침울한 예술로)에서 인용됐다. 시인이 격정적인 달빛 아래서 다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의 슬픔을 두 팔로 껴안은 연인들을 위해 시를 쓴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숫자 ‘4’를 제시한다. 벽면에 작품 4점씩 나란히 놓인 추상화는 동양 세계와 다르게 서양에서는 ‘4’는 동서남북, 사계절, 피타고라스의 우주론에서 정의(正義) 등 질서와 안정을 의미한다.

 

동독과 서독에서 살게 된 독특한 경험과 복잡한 심경을 격정적이고 현란한 색채의 붓질로 세련되게 표현한 모리츠의 추상화를 보고 나오니 하늘의 구름과 나무, 꽃, 바람이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모리츠는 힘든 기억을 화폭에 쏟아부으면서 구원되지 않았을까. 자꾸만 모리츠의 추상화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아, 삶이란….

 

서유진bom@jj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