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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푸른 야생차밭서 ‘차마실’, 섬진강 백사장서 ‘달마중’

공정여행으로 다르게 즐기는 ‘경남 하동’
힐링에 감성까지 더한 하동 녹차 피크닉
섬진강 너른 백사장서 남기는 달밤 추억

 

물론 ‘핫플 도장 깨기’ 여행도 재미있다. 거기에 ‘의미’까지 더하면 색다른 여행이 된다. ‘공정여행’이란 여행지의 주민에게 공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며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착한 여행이다. 공정여행에 대해 들어는 봤지만 접근하기 어렵다고 느꼈다면 경남 하동군을 추천한다. 햇살 따뜻한 낮엔 ‘차마실’을 즐기고, 달빛 은은한 밤엔 ‘섬진강 달마중’을 가자.

 

■ ‘차마실 키트’로 힐링도 잡고 감성도 잡는 차밭 피크닉

 

하동으로 달려가는 길, 차창 밖 연둣빛 산이 마음을 간지럽힌다. 산의 빛깔이 더 짙어지기 전에 햇살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지금의 계절을 즐겨 보자. 하동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차밭이다. 하동은 우리나라 최대 야생차 생산지. 우리나라에서 처음 차 씨앗을 심은 곳으로 기록돼 있고 수백 년 된 야생 차나무를 만날 수 있다. 화개면에 들어서자 온통 야생 차밭이다. 평지는 물론 산 중턱까지 구불구불한 차밭이 조성돼 있어 이색적인 풍경이다.

 

 

“지금 한창 차나무에 연둣빛 새잎이 올라와서 너무 예쁩니다. 천천히 즐겨 보세요.” 오늘의 하동녹차 피크닉 장소는 화개면 부춘리 ‘한밭제다’. 다원의 주인은 차마실 키트를 건네주면서 차 우리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해 준다. 차 우리는 방법은 키트 안내문에도 적혀 있다. 바로 옆 차밭으로 들어선 순간 탁 트인 풍경에 마음도 탁 열린다. 정자 아래로 차나무가 구불구불 넘실넘실 녹색 물결을 이루고 있다.

 

차밭 산책은 잠시 미루고 정자로 향했다. 키트에 포함된 예쁜 돗자리를 펴고 다기를 꺼낸다. 바구니 안에는 나무 쟁반과 뜨거운 물이 든 보온병, 간단한 다식, 녹차와 홍차 두 종류의 차, 마음방명록, 책 <하동에서 차 한잔 할까?>, 대화 카드가 들어 있다. 돗자리 위에 펼쳐만 놓아도 ‘피크닉 감성’이 솟는다. 본격적으로 찻잎 따는 시기라 찻잎을 따고 있는 주민의 모습도 보인다.

 

 

 

서툰 손길로 차를 내려 본다. 차는 어떻게 우리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지만, ‘푸름’을 보면서 푸른 차를 마시는 것 자체가 최고의 맛이다. 게다가 키트에 들어 있는 차는 이곳 다원에서 생산한 차라 더 감동이다. “녹차는 숙우에서 한 김 식히고, 다관에 찻잎을 넣어 30초~1분간 우리면 됩니다. 홍차는 뜨거운 물을 다관에 바로 부어도 좋아요.” 다원 주인의 말을 떠올려 가며 차를 만드는 경험도 재미다. 직접 내린 따뜻한 차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는, 차가운 커피를 쭉쭉 들이켜며 나누는 대화와는 다르게 왠지 따뜻하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관대해진다.

 

마음방명록을 펼쳐 본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고 하동을 찾아 마음 정리를 하고 있다는 이, 짧은 글에서도 꿀이 뚝뚝 떨어지는 통영의 신혼부부, 차밭에서 혼자만의 여유를 실컷 즐기고 간다는 이까지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밭제다의 차밭은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다. 차밭을 빙 둘러싼 산책로 덱을 천천히 걸어 본다. 바위 위에 앉아 있는 돌조각도 평화롭고, 예쁜 금낭화도 피어 있다. 아래쪽엔 새둥지 모양의 흔들 그네도 있어 포토존이 되어 준다. 차밭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온통 초록 세상이다. 차향이 실린 듯 바람이 향긋하다. 차나무에 돋아나는 연둣빛 새잎이 생생한 기운을 돋워 준다.

 

▷하동 차마실 이용하기= 하동 놀루와협동조합은 지역 자원을 활용해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주민 공정여행사이다. 놀루와 홈페이지(www.nolluwa.co.kr)의 ‘다달이 하동’에서 차마실 키트 대여 예약을 할 수 있다. 키트 1개당 2만 원이며 최대 4명 이용 가능하다. 오전 10시~오후 6시 사이 원하는 시간에 빌리고 오후 6시까지 반납하면 된다. 대여 장소에서 차 키트를 받을 때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다원을 안내해 준다. 관광객들의 출입이 허락된 다원들이라 다른 방문자나 여행자들이 있을 수도 있다.

 

 

■달밤 추억 쌓고 하동의 문화예술 즐기는 ‘섬진강 달마중’

 

생각해 보면 늘 위에서 섬진강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아니면 저만치서 바라보며 나란히 걸었다. 백사장 아래로 내려가 볼 생각을 왜 지금껏 하지 못했을까? 반짝이는 금모래빛 백사장에서 하동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달마중을 경험했다.

 

“여기 바다야?”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악양면 평사리공원 섬진강 백사장으로 내려섰다. 해수욕장처럼 너른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강바람이 아직 차갑지만 기분은 상쾌해진다. 오늘의 추억을 환하게 밝혀 줄 ‘호야등’을 들고 섬진강에 다가간다. 달마중의 시작은 ‘문 워크(Moon Walk)’를 즐기는 시간이다. 노을이 깔리면서 붉어진 강을 향해 사그락사그락 백사장을 밟는다. 강물을 따라 걷는 연인, 퍼질러 앉아 모래놀이 하는 아이들, 호야등을 들고 사진 찍는 가족들 모두 표정이 즐겁다.

 

찰랑찰랑 강물에 소원을 적은 종이배를 띄운다.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 주세요’ ‘우리 사랑 영원히’와 같은 흐뭇한 소원은 물론 ‘게임 실컷 하기’ ‘장난감 사기’ 등 귀여운 소원도 강물에 둥둥 뜬다. 소원이 이뤄지는 잠깐의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중 ‘행복’ ‘사랑’의 소원은 이미 이곳 섬진강에서 이룬 게 아닐까.

 

 

 

섬진강에 어둠이 제법 내려앉으면 본격적인 달마중이 시작된다. 백사장에 설치된 보름달 조명 앞에 각자 돗자리를 펴고 앉으면 하동의 문화예술을 만나는 ‘문 스테이지(Moon Stage)’가 열린다. 먼저 박경애 전통무용가가 아름다운 섬진강을 무용으로 풀어낸다. 달빛 아래 몸짓이 황홀하다. MZ세대 퓨전국악팀 ‘낭창낭창’의 유쾌한 입담과 흥겨운 노래에는 몸이 들썩들썩하고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얼씨구’ ‘좋다’ ‘잘한다’ 절로 추임새가 나온다. 달빛 무대의 마지막은 ‘지리산 시인’ ‘자연의 시인’ 박남준 시인의 시 낭송이다. 시인의 목소리가 강물처럼 마음속을 흘러간다.

 

공연이 끝나자 산 위로 둥근 보름달이 떠올랐다. 모두가 진짜 달을 향해 뒤돌아 앉아 달을 맞았다. “누워서 여유롭게 섬진강의 공기와 하동의 밤하늘을 즐겨 보라”는 말에 슬며시 누워 본다. 귓가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흐르고, 섬진강의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함께 나란히 누운 이의 온기가 와닿는다. 꿈인가 현실인가 싶다. 모래 위가 아닌 구름 위에 있는 것 같다.

 

달마중 가는 날 구름이 끼어도 걱정하지 말 것. 백사장의 둥근 달은 언제나 환하게 불 밝히니 말이다. 달 앞에서 오늘의 시간을 사진으로 남기면 달마중은 마무리된다. 다시 백사장을 밟아 나오는 길, 특별한 추억이 콕콕 가슴에 박혔다.

 

▷섬진강 달마중 하기= 역시 하동 놀루와협동조합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정기 프로그램은 매달 보름날에 가까운 토요일에 열린다. 다음 달마중은 5월 14일 예정돼 있다. 성인 1인당 2만 원이며 초등학생까지는 무료다. 하동 차와 간단한 다식을 제공하며 호야등, 돗자리, 담요를 빌려준다. 총 소요 시간은 110분. 정기 행사가 아니더라도 달마중을 즐길 수 있다. 차마실처럼 키트 1개당 2만 원에 빌려 준다. 오후 5시 ~ 오후 9시 사이 빌리고 오후 9시까지 반납하면 된다. 돗자리, 박스 테이블, 호야등, 블루투스 스피커, 미니 달 조명 등이 들어 있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