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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이민 120년, 역경을 헤친 코리안 개척기·(上)] 표지석 하나 없는 부두… '120년 한인사' 시작은 미미했다

사탕수수밭에서 시작한 이민사

 

지난 21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항 7번 선착장은 주정부 청사(Hawaii State Capital)가 멀지 않은 시내 한복판임에도 찾는 이 없이 고요했다.

이곳은 120년 전 인천 제물포항을 떠난 우리나라 최초의 합법 이민자들이 첫발을 내디딘 한국 이민사의 시작점이다. 인근에 있는 호놀룰루항의 명소 알로하 타워(Aloha Tower)에는 사람이 꽤 몰리지만, 7번 선착장은 하와이에서 흔한 부둣가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듯 존재감이 없다.

김상열 한국이민사박물관 관장은 "현재 7번 선착장은 1903년 당시와 비슷한 모습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와이 주요 사회 구성원인 한인들의 이민 시작점을 알리는 표지 하나 없는 게 아쉬웠다.

하와이 호놀룰루항 7번 선착장
1903년 최초 이민자 86명 첫발
섬 북단 농장서 고된 노동 투입


1902년 12월22일 제물포항에서 출발한 한국인 노동 이민자는 121명이다. 이 가운데 제물포 67명, 부평 10명, 강화·교동 9명, 그 외 경기 지역 3명 등 73.5%가 현재 인천·경기 주민이었다.

일본에서 신체검사에 합격한 102명이 1903년 1월13일 미국령 하와이 호놀룰루항 7번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 중 질병에 걸린 사람을 제외한 86명이 최종적으로 하와이에 남게 됐다.

최초 이민자 86명은 선착장에서 걷거나 전차를 타고 오아후역으로 가서 협궤열차를 타고 섬 북단 와이알루아 농장 캠프(주거지)에 도착했다.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하루 69~70센트씩 받으며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이후 1905년까지 64차례에 걸쳐 총 7천215명이 하와이로 이주해 대부분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낯선 이국땅의 삶을 일궈냈다. 노동 계약을 마친 일부 노동자는 미국 본토로도 진출했다.

 

 

이날 찾은 호놀룰루 차이나타운 내 하와이 한인합성협회 회관 건물터는 현재 카페로 바뀌어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1905년까지 64회·7215명 이주
2년뒤 통합 한인대표단체 설립
시련 속에서도 조국 독립 후원


1907년 9월2일 하와이에 있던 24개 한인 단체 대표들은 발기인 대회를 열어 통합단체인 한인합성협회를 설립했다. 같은 해 7월 일본이 고종을 퇴위하게 하고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하면서 나라를 잃을 위기감이 커지자 하와이 한인 동포들이 조국의 독립을 후원하고자 뭉친 것이다.

한국인들은 하와이뿐 아니라 멕시코나 쿠바 등 중남미 국가로도 노동 이민을 떠났으며, 일제강점기 전후 중국·러시아 일대에서 한인 사회를 형성했다. 그 과정에서 강제 이주의 아픔도 겪었다. 산업화 시기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이주한 광부와 간호사, 전쟁 후 해외 곳곳으로 입양된 고아들도 한국 이민의 한 형태다.

하와이 이민으로 시작된 120년 이민사는 시련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역경을 헤친 한인 이민자와 그 후손들은 세계 곳곳에 뿌리내려 모국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730만 재외동포시대, 이민의 시초 하와이를 중심으로 한국인의 세계 개척기를 돌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