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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분단시대’ 화두 던진 역사학자 강만길 별세

향년 90세…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으로 지성사 지평 넓혀

 

시대를 꿰뚫는 역사 인식과 실천적 활동으로 큰 족적을 남긴 역사학자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193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려대 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1973년 출간한 책이 <조선 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이었다. 그는 1959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일하다 1967년 모교 교수로 임용돼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0년 광주항쟁 직후엔 항의집회 성명서 작성과 김대중으로부터의 학생선동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신군부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고려대에서 해직됐으나, 4년 뒤 복직했다.

 

고인은 우리 근현대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진보 역사학자로 평가 받는다. 그는 사학계가 민족주의와 분단체제론에 관심을 기울일 무렵인 1978년 창비를 통해 대표작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을 펴내 ‘분단시대’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이 책에서 그는 분단 시대를 외면할 게 아니라 현실로 직시해야 하며 역사학이 분단시대 극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1980년대 이후 인문·사회과학 등을 사로잡았다.

 

고인은 역사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실천적 활동을 펼친 지식인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당시 고문을 맡았고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 월간 <사회평론> 발행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통일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2001년에는 상지대 총장으로 취임해 학교 운영 정상화와 학원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 1998∼2003년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걸쳐 대통령자문 통일고문회의 고문을 역임했고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측위원회 위원장,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고인은 한일 과거사 청산과 관련한 소신 발언도 쏟아냈다. 그는 2005년에 열린 공청회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대통령을 했다면 빨리 해결됐을 텐데 일본군 장교 출신이 쿠데타를 해 정권을 잡으니 문제가 안 풀렸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한 바 있다. 한일 협정과 관련해서는 “정통성 없는 (한국의) 군사독재정권과 체결된 한일 협정이 폐기되고, 정통성이 확립된 문민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협정을 개정하거나 재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인은 역사학계 내에서는 든든한 기둥이자 버팀목이었다. 그는 정년퇴임을 앞둔 1999년 한 인터뷰에서 “역사가가 상아탑에만 안주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라며 역사가의 임무는 국민에게 바른 안목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07년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을 설립해 계간 <내일을 여는 역사>를 간행하고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의 활동을 지원하는 데도 앞장섰다. 그의 이름을 따 2008년 제정된 ‘강만길연구지원금’은 최근 1년간 국내외에서 한국근현대사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을 선정해 연구지원금을 수여하고 있다.

 

일련의 활동과 공로를 인정받아 중앙문화대상 학술대상(1992), 국민포장(1999), 단재상(1999), 한겨레통일문화상(2000), 만해상(2002·2010), 후광 김대중 학술상(2011) 등을 받았다. 식민지시대 민중의 삶을 탐구한 <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1987), 실천적 역사교양서 <20세기 우리 역사>(1999), 자신의 삶을 역사학적으로 재구성한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2010) 등 180여 권의 학문적 성과를 남겼다.

 

민족문제연구소와 내일을여는역사재단은 부고를 전하며 “고인은 평생을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운동에 앞장서는 등 역사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헌신했다”고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장성애 씨와 딸 강경미·강지혜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3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경기도 고양시 청아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