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지난 11일 오후 2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격적으로 중지(6월12일자 1면 보도)하자 북한 역시 대남 확성기를 이용한 소음 송출을 멈췄다. 인천 강화군 접경지역 당산리 주민들은 모처럼 북한의 소음 고통 없이 편안한 밤을 보냈다며 반색했다.
평화롭고 고요한 이 마을이 하루아침에 서둘러 떠나고 싶은 지옥으로 변해 버린 건 지난해 7월이다.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기괴한 소음을 참으며 버틴 시간이 벌써 1년 가까이 흘렀다. 그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지옥 같던 상황은 11일 오후 2시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지 조치로 급변했다. 11일 오후 9시께는 개구리 울음소리에 묻힐 정도의 음악소리만 들렸다. 오후 11시를 넘겨서는 음악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주민 이선영(38)씨에게는 지난밤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3주 전에 아기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어젯밤에는 정말로 소음이 들리지 않아 저절로 웃음이 났다”며 “북한의 소음공격이 있었을 때는 아이와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매일 걱정 속에 살았다”고 말했다.
주민 안순섭(68)씨는 “염소도, 사슴도 어제는 잘 잤다. 제발 이 상태로 상황이 정리됐으면 하는 마음뿐이다”라고 말했다. 합동참모본부는 12일 “오늘 북한의 대남 소음 방송이 청취된 지역은 없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의 사실상 ‘1호 대북 조치’가 성과를 거두면서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 및 평화 분위기 조성’이라는 대통령 공약 이행도 탄력을 받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산가족 상봉, 남북 인도주의 협력, 교류협력 모색·추진 등은 이재명 대통령 공약이다. 9·19 군사합의 복원 등 긴장 국면 이전의 상태로 돌리기 위한 대화 채널 구축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서울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5주년 행사에서 우상호 정무수석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소모적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대화와 협력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중단된 남북 대화 채널부터 빠르게 복구하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것이 중요한데, 남북 대화·협력이 재개되어도 본격적인 화해·평화 분위기 조성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이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이 소음 방송을 중단한 것은 실리적 필요에 따른 조치다. 특별한 메시지를 발신할 필요가 없는 남한에 대한 비례적 대응 행동”이라며 “‘적대적 두 국가론’이 북의 정책 기조다. 통일을 지향한 과거 관계로 회귀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뜨겁게 대화하지도 않지만 군사적 긴장 조성도 없는 ‘차가운 평화’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