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셀 참사가 오는 24일이면 발생 1년을 맞는다. 참사 희생자 대부분이 이주노동자였다. 하지만 참사 이후에도 이주노동자 산업재해는 더욱 늘어났고 현장의 위험성은 높아졌다. 화성 아리셀 참사는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가. 23명이 숨진 참사가 던진 질문에, 1년 뒤 다시 현장에서 답을 찾아본다. → 편집자 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남 일 같지 않았어요.”
19일 오전 10시께 찾은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업단지. 아리셀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찾은 공장은 여전히 참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불이 난 공장 3동의 지붕은 완전히 녹아내려 뻥 뚫렸고, 벽은 엿가락처럼 구부러진 철근만 앙상하게 남았다. 공장 부지 바닥에는 새카맣게 그을린 건물 잔해가 엉겨붙어 있었다.
인근 제조업 공장 앞에서 만난 이주노동자 A씨는 사고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주변 공장에 큰불이 났다며 오늘은 그냥 집에 가라는 사장 말을 듣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서 “다음 날 뉴스에서 그 공장에서 사람들이 죽었고,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라더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차전지 생산업체 아리셀에서 화재·폭발 사고가 발생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이날 찾은 공장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사고로 숨진 희생자 23명 중 18명이 외국인으로 밝혀지면서 관련 논의가 오갔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한 노동 환경에 노출돼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5년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 잠정 결과를 보면, 올해 1분기 사고 사망자 137명 가운데 외국인 비율은 14.6%로 집계됐다.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자 비율은 매년 10%내외를 유지하는데, 이번 1분기에서는 이를 넘어 선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재발 방지를 공언했으나, 대부분이 설익은 방지책이었다고 노동계는 평가했다.
게다가 일부 대책은 시행 속도가 지지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간 화재 감지 및 경보 설비 지원은 한 건도 없었다. 올해 소화 설비를 지원한 사업장 역시 1곳에 불과했다.
정영섭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가는 “입국 전후 산업 안전 교육 시간 확대, 외국인 전용 교육 자료 배포 등 정부가 마련한 대책들은 실제 일하는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며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한 환경에 놓여 있고, 산재 집계에 누락된 사례를 감안하면 사고 피해는 훨씬 클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점심시간을 앞두고 분주하게 돌아가는 공장들 사이에서 아리셀은 홀로 적막이 흘렀다. 경비원 한 명만이 정문에 남아 외부인의 출입을 경계했다. 공장의 울타리를 빙 두른 파란색 추모 리본들은 빛이 바랬다. ‘돈보다 생명’이라고 적힌 글씨가 희미해질 동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리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는 김모(49)씨는 “‘펑’하고 터지는 소리가 잇따라 들리고 공장 지붕 위로 불꽃이 튀어 오르는 모습이 생생하다”면서 “이런 사고가 더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참사 희생자인 고(故) 김병철 아리셀 연구소장의 유족인 최현주씨는 “화재로 남편을 잃은 뒤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며 “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위험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