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참전 영웅 등 지역 국가유공자들의 영령을 모시는 공간이 도내 곳곳에 있다. 수십 년 전 세워진 충혼탑은 대부분 인근이 공원화되며 시민들의 공간이 됐다. 하지만 일부 탑은 홀로 산에 숨겨진 채 지역민들에 외면받고 있다.
본지는 호국보훈의 달이자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변화하는 보훈 트렌드에 따른 충혼탑 등 현충시설의 역할에 대해 다뤄본다.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들을 모시는 곳이 기관장의 기념일 참배 장소로만 활용돼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도내 일부 탑 산길 중간에 고립
입구 잠겨 있고 상주 관리자도 없어
기념일 참배 장소로만 활용 지적도
현충일인 지난 6일 김해 충혼탑에서는 김해시 등 유관기관 관계자 총 900여명이 모여 기념식을 가졌다. 하지만 2주가 지난 23일 충혼탑에는 그 어떤 인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김해 충혼탑은 신어산 산림욕장과 가야랜드 캠핑장, 은하사, 동림사로 향하는 산길 중간에 고립된 형태로 조성돼 있다. 이곳에 오기 위해서는 아래쪽 큰 도로에서 500m가량 이어진 편도 1차로가 유일한 길이다. 인도나 별도 산길은 없다. 차량이 가끔 다녔지만 목적지는 충혼탑이 아니었다.

충혼탑 주 입구는 잠금장치로 잠겨 있었다. 불법주차를 경고하는 주 입구 안내문 앞에는 버젓이 차 한 대가 불법 주차돼 있었다. 샛길로 들어가 바라본 충혼탑 내부는 휑했다. 육군 중령 최태수 외 1025명의 국가유공자 위패가 봉안돼 있다는 안내문만이 이곳의 의미를 전할 뿐이었다. 봉안당 또한 잠겨 있어 추가로 보거나 체험할 내용은 없었다.
김해시는 “상주하는 관리자가 없어 미리 문의하면 봉안당 내부 탐방 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국가유공자 유족들은 오래전부터 김해 충혼탑 위치에 대해 불만을 토로해왔다. 이들은 호국무공수훈자 전공비, 6·25 및 베트남 참전기념탑, 공병탑 등이 위치한 김해야구장 인근으로 이전하기를 원한다. 주된 이유는 접근성 문제다.
박수환 전몰군경유족회 김해지회장은 “경남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김해 충혼탑은 너무 외곽에 홀로 있다”며 “유족들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다 보니 경사를 오르락내리락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많은 시민이 충혼탑이 어디 있는지 모를뿐더러 왜 여기 있냐고 되묻기도 한다”며 “김해에 많은 국가유공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적 드문 산속에 숨기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해시는 지난 2023년 관련 용역을 진행했지만, 위치 이전 대신 현 충혼탑 인근에 주차장을 짓기로 결론 냈다.
현재 정부의 보훈 정책으로 바라봤을 때 김해 충혼탑의 위치는 적절치 않다.
보훈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과거에는 국가유공자와 유족에 대한 실질적인 예우에 보다 집중했다. 최근에 와서는 정신적인 요소가 강조되고 있다. 국가유공자를 존경하고 예우하는 정신이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퍼지는 게 더 필요하다는 방향이다. 국가보훈부의 정책 슬로건만 봐도 변화는 쉽게 느껴진다. 현재 슬로건은 ‘일상과 함께하는 모두의 보훈’이다. 이는 5~10년 전 정책 슬로건인 ‘든든한 보훈’, ‘따뜻한 보훈’과 전달하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위치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충혼탑 같은 범주의 현충시설은 시민들 곁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경기도 성남시는 최근 주택가 옆 공원에 있던 현충탑을 접근성이 용이한 시청 공원으로 옮겼다. 경남에서도 거창군, 의령군, 하동군 등이 군청과 인접한 공원에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또한 밀양시와 진주시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공원에 위치한 경우도 있다.
보훈기관과 지자체가 충혼탑 등 현충시설의 관리와 함께 활용 방안을 더욱 모색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경남에는 총 256개의 현충시설이 있다. 그 중 대부분은 비석(149개)과 탑(59개)이다. 이들 현충시설을 관리하는 단체들의 고민은 시민들의 관심이다. 창원시 6·25 참전 기념비를 관리하고 있는 6·25참전유공자회 창원지회는 올해 창원시 지원을 받아 명판을 새로 교체하면서 기념비 인근에서 캘리그라피, 사진전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김재하 6·25참전유공자회 창원지회 사무국장은 “유동인구가 그나마 많은 창원 충혼탑 옆에 탑이 있다 보니 탑을 둘러보는 시민들이 있는 편”이라며 “탑도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바뀌는 작품처럼 만들어 놓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이목을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현충시설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닌 보훈 문화 발전을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해야 할 시기”라며 “이런 변화 속에서 관광 명소와 연결 짓거나 학생 견학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 재밌게 충혼 역사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