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조선시대 핫 플레이스, 강원의 명소는 지금]꾸밈 없이 그대로 공작산이 품은…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 조선 선조때 현재 자리로 옮겨 여러번 중수 과정에도 옛 모습 그대로 절제美 돋보여 용연·조담·삼담오탕 빼어난 풍광 담은 한시도 전해져 수타사탐방안내소를 지나자 갑자기 깊은 숲속이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가 사찰의 역사를 말해준다. 노송보다 더 오래된 부도가 숲속 깊은 곳에 자연스럽다. 홍우당 스님의 부도는 조선시대 전형적인 부도탑 형태다. 숲을 지나자 느닷없이 `조담(槽潭)'이 눈에 들어온다. `조(槽)'는 `구유'를 뜻하는 한자다. 가축의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을 `구유'라고 하며, `구유통'이라고도 한다. 절벽 밑으로 물이 길게 고인 모양이 구유통 같다. 선인들은 그 모양을 보고 `조담'이라 불렀다. 한원진(韓元震·1682∼1751년)은 1727년에 `봄에 수타사에 유람 갔다가 조담과 용연을 보다'란 시를 짓는다. 수타사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용연(龍淵) 때문이다. 너럭바위 가운데를 뚫고 물이 세차게 떨어지며 깊은 못, 용연을 만들었다. 물이 떨어지는 `水墮' 곳에 절이 들어서서 수타사다. 용은 비구름을 관장하는 동물이다. 가뭄이 들면 용에게 비를 내려 달라고 빌었다. 용연은 용추(龍湫)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