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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목재 더미서 숨진 25세 이주노동자, 베트남 소식 닿기까지 2개월

[‘코리안 드림’ 청년의 쓸쓸한 죽음·(上)]

부모도 모르게 화장될뻔한 도탁칸씨
자칫 무연고자 신세… “불법체류 단속 오해한듯”
2개월만에 비보 접한 부모, 인천교민회 도움으로 한국행

“막내아들이 먼 타지에서 외롭게 떠날 줄 알았다면….”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베트남 국적의 한 청년이 살이 에일 듯한 추위에 떨며 홀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올해 1월31일, 엿새나 이어진 설 명절 연휴를 보내고 인천 서구 원당동 야적장을 찾은 목재 운반업체 직원들은 덮어두었던 천막을 들어 올리곤 이내 비명을 질렀다. 목재 사이에 한 청년이 숨져 있었다.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청년의 이름은 도탁칸(Do Thach Khanh). 25세 베트남 국적의 이 청년은 지난 2018년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기 위해 한국어어학연수(D-4) 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했다. 이듬해 비자가 만료되기 전에 베트남으로 돌아가려던 그에게 불행이 닥쳤다. 고향 집에 불이 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모님의 건강도 나빠졌다.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그는 불법체류자로 일하며 번 돈을 가족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낮에는 공장에서 바쁘게 일하면서도 밤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기 위해 클럽 DJ를 하던 꿈 많은 청년이었다.

 

그가 어떤 이유로 죽음에 이르렀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그가 목재에 뿌려진 화학약품에 의해 질식한 것 같다고 추정만 할 뿐이다. 경찰은 왜 그가 목재 야적장에 스스로 들어갔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기자가 만난 목재 야적장 관리인은 “독한 화학약품 냄새에 직원들도 마스크를 쓰고 근무하는 곳에 왜 젊은 청년이 들어왔는지 다들 의아해했다”며 “목재를 옮기려던 직원들이 갑자기 시신을 보고 혼비백산해 경찰에 신고했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도탁칸의 지인들은 그가 불법체류자 단속이 진행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목재 사이에 숨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도탁칸의 직장 동료 등을 만나며 그의 사망 경위를 추적했다는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의 장혜진 노무사는 “토끼몰이식으로 불법체류자들을 단속하는 관행이 이주노동자들에게 큰 두려움을 준다”며 “추운 겨울, 코를 찌르는 화학약품이 묻은 목재 옆에서 죽어가는 걸 감내할 만큼, 단속반에게 붙잡혀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에겐 무척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도탁칸의 부모는 갑자기 연락이 끊긴 막내아들이 걱정돼 밤잠을 설쳤다. 도탁칸이 불법체류자가 된 이후 행여나 출입국에 체포될까 봐 매일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도탁칸이 숨진 지 2개월여가 지난 4월 초 베트남 정부로부터 비보를 접한 부모는 절망했다.

 

그동안 도탁칸은 ‘무연고자’로 분류돼 인천 서구 한 장례식장의 시신 안치실에서 쓸쓸히 가족을 기다렸다. 구청은 도탁칸의 유가족을 찾아달라고 주한베트남대사관에 연락했으나 ‘14일’ 동안 회신하지 않자, 공영장례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자체 공영장례 매뉴얼에는 지자체나 경찰이 14일 간 무연고 사망자의 가족 등을 찾지 못하면, 공영 장례를 진행하도록 정해져 있다.

 

구청이 장례식장에 안치된 도탁칸의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 옮기던 도중, 극적으로 주한베트남대사관 측에서 그의 가족을 찾았다고 알려왔다. 도탁칸의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한국으로 갈 비행기표를 구할 돈도, 아들의 장례를 치를 돈도 없었다.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인천베트남교민회는 낯선 땅에서 홀로 떠난 청년을 위한 마지막 길을 돕기로 했다. 재한 베트남인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그의 가족을 데려오고 장례를 치를 비용 등으로 1천여만원을 마련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도탁칸 가족의 딱한 사정을 접한 인천 시민들도 힘을 보탰다고 한다.

 

인천베트남교민회 관계자는 “지역사회의 도움이 없었다면 도탁칸의 부모는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도탁칸이 사망한 지 72일 만인 지난 4월13일, 장례가 치러졌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겠다며 집을 나서던 막내아들의 마지막 얼굴이 기억나요. 아들이 먼 타지에서 외롭게 떠날 줄 알았다면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막내아들이 외롭게 죽어갔을 목재 야적장을 찾은 부모는 높게 쌓여있는 목재를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도탁칸도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머나먼 이국땅에서 ‘무연고자’로 이름도 없이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았다가 생의 마지막 길조차 존중받지 못한 채 잊혀간 외국인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