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폴란드 바르샤바에 왕자가 살았다. 그는 매우 용감한데다 싸움도 잘해서 전쟁에 나갈 때마다 적군을 통쾌하게 무찌르고 조국에 완벽한 승리를 안겨주었다. 게다가 아주 친절해서 백성들은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야! 곰 왕자님이 지나가신다.” “왕자님, 안녕하세요. 여전히 씩씩하시네요.” 왕자의 팔뚝은 엄청나게 굵었고, 키도 무척 컸다. 그는 여기에 더해 힘이 셌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곰 왕자’라고 불렀다. 왕자는 별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의 단점 때문이었다. 그는 추남이었다. 그냥 못생긴 정도가 아니라 얼굴을 2~3초만 바라보아도 괜히 기분이 나빠질 정도였다. 얼굴은 고슴도치 굴이 덮인 것처럼 울퉁불퉁했고, 피부색은 시커멓다고 할 정도로 짙었다. 검은색 머리숱은 도저히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왕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곰 왕자’라고 부르는 것은 용감하기 때문이지만, 못생겼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라는 사실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그를 무척 좋아했다. 바르샤바의 소녀들도 그를 정말 사랑했다. 하지만 그를 남성으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아끼고 평화롭게 살도록 해주는 지도자로서 사랑했을 뿐이었다. 부모들은 못
부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동래 문화재를 둘러보면서 역사를 공부하고 지역 시장에서 나들이도 즐기는 행사가 열린다. 부산 동래구는 2022년 도시재생예비사업 ‘동네~ 한바퀴, 지금 동래~ 한바퀴’ 사업의 하나로 ‘문화재와 함께하는 역사‧시장 나들이’ 행사를 진행한다. 부산시 유형문화재 8호인 장관청, 동래부 동헌, 동래향교, 동래읍성, 복천동 고분군 같은 문화재는 물론 동래시장, 수안인정시장을 둘러보는 이벤트다. 이 행사는 17일부터 10월 29일까지 총 다섯 차례로 나눠 매회 오전 9시~오후 1시에 진행된다. 부산문화관광해설사 진선혜 씨가 17일 ‘동래 역사 나들이’라는 주제로 행사의 막을 연다. 장관청, 100년 이상 된 고택인 대궐갈비는 물론 동래향교~송공단~동래부 동헌~박차정 의사 생가~항일운동기념비를 둘러보고 수안인정시장에서 점심을 먹은 뒤 동래읍성 임진왜란역사관을 살펴보는 코스로 진행된다. 21일에는 부산지질해설사회 김인남 회장이 참가자들과 함께 ‘동래온천 풍류길 나들이’를 떠난다. 온천거리박물관~온천장 전차종점지~용각~동래별장~윤슬길~노천 족욕탕~봉래관(허심청) 온천을 거쳐 온천시장에서 점심을 먹는 코스다. ‘박물관을찾는사람들’의 장순복 답사대장
먼 옛날 폴란드 북부 항구도시 그단스크에 다니엘이라는 조각가가 살았다. 그는 당시 사람들로부터 ‘최고 중에서도 최고의 조각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의 조각을 볼 때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였다. 다니엘이 가장 즐겨 다룬 소재는 그단스트의 상징인 사자였다. 그는 사자를 정말 생동감 넘치게 묘사했기 때문에 사자가 조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사자가 포효하지 않고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있느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였다. 어느 날 그단스크 시장이 울리차 둘가 시장에 있는 시청 건물 정면에 그단스크의 상징인 사자 문장을 새로 새기기로 했다. 울리차 둘가는 ‘긴 시장’이라는 뜻이다. 시장이 길쭉하게 늘어졌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단스크를 상징하는 문장은 사자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면서 왕관을 보호하는 모양이다. 이 문장을 시청 건물에 새길 조각가는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시민의 사랑을 받는 다니엘이었다. 새 과제를 부여받은 다니엘은 열심히 일했다. 사자 문장을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 쉬지 않고 조각에만 매달렸다. 그가 놀리는 끌이 돌을 긁어내는 소리와 망치가 끌을 때리는 소리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멈추지 않았다. 당시 폴란드
9월 2~11일 경남 함양에서 3년 만에 제17회 함양산삼축제가 열린다. 행사가 열리는 장소는 함양의 대표적 관광지인 상림공원이다. 산삼축제만 관람하는 게 심심할 것 같다면 상림공원 꽃 정원을 둘러보고 대봉스카이랜드에서 모노레일과 집라인을 즐겨도 된다. 늦여름, 초가을을 맞아 함양으로 달려가 본다. ■상림공원 꽃 정원 상림공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그네를 반기는 곳은 초록 정원인 이끼원이다. 말 그대로 바닥이 이끼로 덮인 이끼 숲이다. 위는 푸른 나뭇잎, 바닥은 초록색 이끼로 덮인 숲은 글자 그대로 초록의 천국이다. 이끼원 뒤쪽은 연 밭이다. 연꽃은 거의 다 진 상태다. 이 모습을 보고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비로소 입이 쩍 벌어진다. 연 밭 뒤쪽이 상림공원 꽃 정원의 시작이다. 여행객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놀라운 풍경은 노란색, 빨간색, 분홍색 백일홍으로 시작한다. 수백 년 묵은 나무들이 무성한 잎을 자랑하는 상림 숲을 따라 끝도 없이 백일홍이 이어진다. 상림 공원과 꽃 정원 사이의 산책로를 걷거나 뛰는 지역 주민들이 적지 않다. 상림공원과 꽃 정원의 색이 얼마나 짙은지 산책객의 왼쪽은 초록색으로, 오른쪽은 노랗고 빨간
크라쿠프 구시가지 스타레 미아스토의 중심 광장인 리넥 규브니에는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다. 폴란드어로는 코스치올 마리아스키이다. 성당에는 탑이 두 개 있다. 두 탑의 높이는 다르다. 왼쪽 탑이 더 높고 조금 더 정교하다. 왼쪽 탑에서는 하루에 4번 트럼펫 연주가 펼쳐진다.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한 번씩이다. 연주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갑자기 도중에 뚝 하고 끊어진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탑지기가 연주한 트럼펫 “성모 마리아시여, 오늘도 몽골의 침입에서 크라쿠프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소서.” 13세기 칭기즈칸의 몽골이 유럽 대륙을 휘몰아치고 있을 때였다.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일하던 탑지기가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탑에 올라가 먼 들판을 바라보면서 하루종일 몽골 군대가 쳐들어오는지 살펴보았다. 크라쿠프는 이전에 몽골 군대의 침략으로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마을은 모두 불타 잿더미로 변했고,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했다. 가축은 몰살됐고, 논과 밭은 수년간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다. 사람들은 몽골의 재침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탑지기를 올려 보내 적의 침입을 살피게 한 것이었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탑지기는 평소처럼 두 손으로 눈
먼 옛날에는 바르샤바가 아니라 크라쿠프가 폴란드의 수도였다. 왕은 비스와 강가에 있는 바벨 언덕에 바벨성을 짓고 궁전도 건설해 완다라는 외동딸과 함께 살았다. 왕과 공주가 나라를 잘 다스린 덕분에 백성들은 아주 평화롭고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 백성들은 따뜻한 가슴을 가진 왕과 완다 공주를 무척 사랑했다. 바벨언덕 지하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다. 많은 가시가돋힌 잡초와 덤불로 입구가 가려진 동굴이었다. 세상 경험이 많은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동굴에 아주 크고 무시무시한 용이 잠들어 있다고 경고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 “용이 잠에서 깨면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괴롭힐 거야. 절대 용을 깨워서는 안 돼.” “용 이야기는 순 엉터리예요. 사람들을 무섭게 하려고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요.”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들은 세상에 용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라는 게 순 엉터리라고 믿었다. “우리가 직접 동굴에 가서 용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노인들은 그들을 말렸다. “자네들이 그런 짓을 하면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칠지도 모른다네.” 젊은이들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그리스나 이탈리아 출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1800년대 초의 어느 날이었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대통령궁에서 각료 회의가 열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초로의 사내가 아주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장관들에게 코페르니쿠스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 곳에서 탄광을 개발한 공로로 산업부 장관 자리를 맡은 스타니스와프 스타시츠였다. ■폴란드의 영웅 “과거에는 코페르니쿠스에 대해 교회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교황청이 그가 쓴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금서 목록에서 해제한 것도 벌써 40년 전 일이 아닙니까?” 코페르니쿠스는 마리 퀴리와 함께 폴란드가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양대 과학자였다. 그런데 폴란드로서는 불행하게도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은 두 과학자가 폴란드인이 아니라 다른 나라 출신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폴란드 국민들은 이 사실에 불만이 적지 않았다. 폴란드에서 존경받는 문인이자 경제인, 정치인이었던 스타시츠가 각료 회의에서 말을 꺼낸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스타시츠 장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코페르니쿠스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널
부산에는 현재 크고 작은 요트 체험 업체 수십 곳이 영업 중이다. 승선 인원에 따라 1인당 2만~5만 원을 내면 부산수영만요트경기장에서 요트 승선 체험을 할 수 있다. 저녁에는 야경을 관람하는 배를 탈 수 있다. 야경 요트는 낮보다 요금이 비싸다. 요금이 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런 배의 경우 승객 10~20명을 태우기 때문에 선내가 복잡해서 바다를 조용하게 즐기기 어렵다. 아무리 많아도 10명 이하로 승선하는 배가 좋다. 지인, 친구, 가족끼리만 따로 요트를 탈 수도 있다. 30만~50만 원을 내고 요트 1대를 통째 빌릴 수 있다. 전세를 낸 배에서 선상파티, 야간 불꽃놀이를 할 수 있다. 150만 원을 내면 고급 뷔페, 음료, 술까지 제공하는 요트 상품도 있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외에도 부산 해운대구의 더베이101요트와 남구 용호만유람선터미널의 다이아몬드베이에서도 요트를 이용할 수 있다. 더베이101요트의 경우 퍼블릭 투어는 성인 1인당 낮 2만 원, 저녁 4만 원이다. 다이아몬드베이의 대형 유람선은 1인당 3만 원이다. 두 곳에서 고급 요트를 빌려 프라이빗 투어를 할 수도 있다. 다이아몬드베이의 프라이빗 투어는 40만~60만 원이다. 부산에서
“바르샤바 시내에 쇼팽 벤치를 만들도록 합시다. 시민들은 물론 외국 여행객들이 쇼팽의 인생을 따라가며 그의 음악 세계를 반추할 수 있는 길이 되게 합시다.” 2009년 3월 13일 폴란드 정부는 ‘쇼팽의 해 2010 축하위원회’를 구성했다. 1810년 태어난 폴란드의 세계적 작곡가 프레데릭 쇼팽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하는 조직이었다. 축하위원회는 주요 사업의 하나로 쇼팽 벤치를 추진했다. 쇼팽이 태어난 집에서부터 유해가 묻혀 있는 성당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을 따라가는 길을 연결한 뒤 곳곳에 벤치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폴란드 조각가 제르지 포레브스키가 설계한 쇼팽 벤치는 바르샤바에 모두 15개 설치됐다. 쇼팽의 삶, 음악 인생과 깊은 관련이 있는 장소들이다. 벤치는 검은색 금속과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쇼팽 벤치에 가면 다른 벤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도가 있다. 벤치가 세워진 이유를 영어, 폴란드어로 짧게 설명한 팻말도 붙여 놓았다. 벤치에는 작은 버튼이 달려 있다. 이것을 누르면 쇼팽이 작곡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물론 아주 짧게~~. 벤치에는 QR 코드도 설치돼 있다. 휴대폰을 갖다 대면 쇼팽에 대한 정보는 물론 그의 음악을 더 들
■원하지 않은 결혼 따뜻한 봄은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들판에서는 푸른 풀이 조금씩 땅을 뚫고 나왔고, 작고 노란 꽃은 정말 봄이 온 건지 알아보려고 머리를 치켜들었다. 이날은 1658년 3월 3일이었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왕궁에는 더욱 봄기운이 완연했다. 왕궁에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신나는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날 이곳에서는 성대한 결혼식이 열렸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자모쉬치 지역의 지주이면서 귀족인 얀 자모이스키와 그의 부인이 될 마리시엔카였다. “자모이스키 씨, 축하드려요. 왕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아가씨를 신부로 맞다니 당신처럼 행운이 넘치는 분은 없을 거예요.” 신랑은 기분이 좋은지 계속 싱글벙글했다. 하객이 축하 인사를 건넬 때마다 환하게 웃느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서른한 살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노총각이었다. 재산은 엄청나게 많으면서도 신붓감을 못 구해 여태 결혼을 못했다. 신랑보다 더 즐거워야 할 신부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단순히 긴장해서 그런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폴란드 사람이 아니었다. 원래 프랑스 출신이었다. 본래 이름은 마리 카시미어 루이사였다. 결혼식이 열리던 날에는 겨우 열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