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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보내는 위로

부산시립미술관 ‘이토록 아름다운’ 9월 12일까지 전시
국내외 11명 작가의 50여 점 작품 전시
재난 극복·공생·애도의 시간 등 ‘치유’와 ‘용기’ 메시지

 

코로나로 인한 재난의 시대.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또 우리는 예술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부산시립미술관의 2021년 국제주제 기획전 ‘이토록 아름다운’은 우울과 불안을 겪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용기를 일깨워준다. 현대미술의 중심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1명의 작가와 5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9월 12일까지 이어진다.

 

 

 

■모순 그리고 각성

 

사상가 도나 해러웨이 다큐 81분 풀버전 상영

“다른 종과 연결성 회복 새 이야기 만들어야”

 

‘이토록 아름다운’은 디지털 기술로 구현된 거대한 파도로 문을 연다. 디스트릭트(디지털 미디어 아트 제작업체)의 미디어 아티스트 유닛인 에이스트릭트의 작품 ‘스태리 비치’이다. 끝없이 밀어닥치는 가상의 파도를 마주하며 관람객들은 ‘황홀과 익사 사이’라는 부제처럼 자연의 이중성을 느낄 수 있다.

 

전시는 ‘오늘로부터-상상을’ 섹션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재난 극복은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파브리지오 테라노바 감독의 다큐멘터리 ‘도나 해러웨이:지구 생존 가이드’는 페미니스트, 생물학자, 과학사가인 도나 해러웨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지구를 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다른 종과의 연결성 회복을 위해 ‘새로운 친족 만들기’를 제안한다.

 

박진희 학예연구사는 “해러웨이의 사상을 망라한 81분짜리 다큐멘터리가 풀버전으로 상영되는 일은 동아시아의 미술관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며 “그의 사상은 이번 전시의 바탕을 이루며 재난을 극복할 패러다임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해러웨이의 사상은 염지혜 작가의 ‘심바이오플롯:함께 사는 터’로 이어진다. 공생과 구조의 합성어를 제목으로 한 작품에서 작가는 지구 생명체의 공통 조상인 루카(LUCA)를 통해 공생의 기억을 추적한다. ‘포토샵핑적 삶의 매너’는 구글에 떠도는 이미지를 짜집기해서 만든 작품으로, 삶을 짜집기하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를 표현했다.

 

박경진의 ‘2020’은 거대한 화폭에 코로나 시대의 일상을 옮긴 작품이다. 그림 속 사람의 얼굴을 흐릿하게 표현해서 익명성을 드러내고, 모든 사람들이 힘들게 재난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의 붓질과 색감에서 작가의 뛰어난 표현력이 느껴진다.

 

 

식물치료사인 김이박 작가는 도시에서 말라 죽어가는 식물을 전시장에 데려와 치유한다. 인공 태양과 인공 바람을 제공하는 ‘식물 요양소’에서 식물들은 건강을 되찾는다. 4월 23일 전시 개관 이후 시들했던 식물이 20~30cm 정도 자라나기도 했다. 작가는 ‘식물 아카이브’로 우리 곁에 수많은 종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부모에게 받은 편지 위에 작가 자신이 돌보는 식물 그림을 올린 ‘노심초사’ 시리즈도 재미있다.

 

‘바벨옵티콘’의 강태훈 작가는 코로나를 상징하는 탑 형태의 원형 구조물 안에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을 다 넣었다. 박제, 수도꼭지 등 인간의 욕망과 사회 시스템의 허상을 고발한 작품들을 모았다. 또 세 개의 단절된 원기둥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한 현실의 구조를 나타낸다.

 


 

■사유와 애도의 시간

 

코로나 사망자 애도 전하는 ‘늦은 배웅’

한국·일본 숲 소리 라이브 스트리밍 연결

 

코로나 시대에 누구나 어려움을 겪지만 유독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공백으로부터-사유를’ 섹션에서 박혜수 작가는 코로나 사망자의 유가족을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 황망히 떠나간 가족, 지인에게 남은 이들이 보내는 사연을 부고로 만들어 <부산일보>에 게재한 ‘늦은 배웅’, 떠나는 이에게 제대로 작별인사를 전하지 못하는 시대를 표현한 ‘낯선 이별’ 시리즈가 우리에게 충분한 사유와 애도의 시간을 갖기를 제안한다.

 


정만영과 가와사키 요시히로. 한국과 일본에 거주하는 두 작가는 ‘사운드 브리어 포레스트’라는 공동 프로젝트를 펼친다. 지리산 실상사 주변의 숲과 일본 도쿄도 오쿠타마, 홋카이도 시레토코 주변의 숲 소리를 인터넷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전송해서 소리의 숲을 만든다. 새가 지저귀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검은 방 중앙에서 두 나라의 소리가 섞이고, 관람객은 감각으로 자연과 소통하는 체험을 한다.

 

 

■다시, 나아가는 용기

 

원시림 담은 사진, 3D 애니메이션 산불

쇄빙선 앞 인간 ‘변화를 선택하는 용기’

 

‘대자연으로부터-용기를’ 섹션은 별들이 반짝이는 우주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Cosmos-3’라는 이 작품은 사실은 깊은 숲의 나무를 통해 비치는 하늘을 찍은 사진이다. 박형근 작가는 제주 곶자왈 원시림을 찍은 ‘금단의 숲’ 시리즈를 통해 역사적 아픔을 다 아우르는 숲, 생명력으로 충만해 경외감마저 느끼게 하는 대지를 보여준다.

 

다비드 클레르부 작가가 3D 애니메이션 기술로 제작한 ‘와일드파이어(불에 대한 명상)’이 발길을 붙든다.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자연 풍경, 불에 타들어가는 나무와 숲을 느린 속도로 보여줘 멍하니 화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더 퓨어 네세시티’는 애니메이션 ‘정글북’을 작가가 3년 동안 손으로 다시 그려낸 작품이다. 그는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의인화된 동물의 모습을 모두 제거했다. 인간의 눈으로 보는 동물이 아닌 종 고유의 순수한 모습으로, ‘정글북’의 주인공들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처럼 보인다.



 

 

 

마지막 작품 ‘No.8 모든 것은 잘될 것이다’는 네덜란드 출신인 휘도 판 데어 베르베의 극한의 퍼포먼스를 촬영한 영상이다. 핀란드 연안 바다 위에서 얼음을 깨고 다가오는 쇄빙선 앞에서 나약한 인간이 꿋꿋이 전진하는 모습을 담았다. 재난 상황에서 불안을 감수하며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한 작품으로, 10분 10초짜리 서사시를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전해진다.

 

많은 이들이 ‘지구에 남겨진 시간이 많이 없다’고 경고한다. ‘이토록 아름다운’전은 지구의 위기, 인류의 위기 앞에서 우리의 태도를 질문한다. “우리는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린 반드시 스토리를 바꿔야 해요.” 다큐멘터리에서 도나 해러웨이가 한 말이다. 이야기를 바꾸는 선택, 그것이 ‘이토록 아름다운’ 용기 아닐까?

 

▶‘이토록 아름다운’=9월 12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 3층. 051-744-2602.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