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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진해 연도여자상여소리, 문화재 되려면 원안부터 발굴해야”

11일 진해문화센터서 제1회 연도여자상여소리 학술세미나
두류문화문화원 최헌섭 원장·세명대 최자운 교수 주제 발표

여성 중심의 장례 풍습 ‘진해 연도여자상례’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려면, 연도 섬에서 쓰인 원안부터 발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고증이 담긴 ‘민속지’가 기록돼야만, 연도여자상여소리의 정체성이 정립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제1회 연도여자상여소리 학술세미나와 시연회가 11일 오후 1시 30분 진해문화센터 실내체육관에서 3시간가량 진행됐다. 이날 동국대 임돈희 교수가 좌장을 맡고, 세명대 최자운 교수와 두류문화문화원 최헌섭 원장이 주제 발표를 했다. 이어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모형오 팀장과 진해문화원 우순기 원장이 토론을 펼쳤다.

 

 

◇‘문화재 지정 방향’ 고민 이어진 세미나

 

연도여자상여소리는 진해 연도라는 섬에서 상례를 치를 때 부르는 만가다. 여자가 행상을 맡고, 배를 타고 상여를 옮긴다는 점에서 전국 유일하다. 망자를 애도하는 의식요의 성격과 운구와 봉분을 행하는 노동요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현재 장례의식요 분야 무형문화재 지정 현황을 살펴보면, 경기지역은 양주 상여 회다지소리(1998)와 인천 근해 도서지방 상여소리(2006), 고양 상여 회다지소리(2017)가 등록돼 있다. 강원지역은 횡성 회다지소리(1984)와 양양 수동골 상여소리(2013)가 있다. 충청지역은 공주 봉현리 상여소리(1997)와 부여 용정리 상여소리(1997)가, 호남지역은 진도 만가(1987)가 있다. 영남지역은 청송 추현 상두소리(1997), 제주지역은 영장소리·진토굿파는 소리(2017)가 지정돼 있다.

 

세명대 최자운 교수는 기존 무형문화재 검토를 바탕으로 연도여자상여소리의 시사점을 도출했다. 최 교수는 ‘진해 연도여자상여소리 도지정 무형문화재 가능성’ 주제 발표를 통해 “장례의식요는 매장문화가 남아 있기 때문에, 다른 기능의 향토민요 대비 꾸준히 지정되고 있다”면서 “연도만의 특징을 부각시켜, 지역 토박이 출신의 상여 선소리꾼을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연도상여소리가 전승되려면, 선소리꾼의 성별이 바뀌게 된 원인을 다각도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두류문화문화원 최헌섭 원장은 ‘연도여자상여소리의 역사적 배경’ 주제 발표를 통해, 연도여자상여소리의 연원을 짚었다. 최 원장은 “1940년대 초 일제 태평양전쟁에 강제 징집된 장정들을 대신한 것이 시원”이라면서 “외딴섬에 매장하던 장속은 그 이전부터 행해지던 상장문화가 이어진 것으로, 주체만 여성으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연도여자상여소리의 무형문화재 지정 방향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 진해문화원 우순기 원장은 “연도여자상여소리 전통상례보존회를 만들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상여소리로 갈 것인지 상여놀이로 갈 것인지’였다”면서 “소리로 갈 경우 여자들의 고된 장례절차가 소리에만 조명되는 딜레마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모형오 팀장은 “연도여자상여소리를 고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로선 진해 연도상여놀이로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올해는 고증에 주목했다면, 내년엔 연도 이야기를 재구성한 창작극 사업을 시도해볼 계획이다”고 말했다. 반면 동국대 이철영 교수는 “연도상여소리가 놀이로 굳혀져선 안 된다. 소리를 중점으로 가려면, 추임새와 가락의 전승에 방향이 맞춰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연도여자상여소리’ 시연 현장 보니

 

“에호, 에호, 에가리 넘자, 에호. 아침나절 성턴 몸이 저녁나절 병이 왔네.” 여성 선소리꾼이 꽹과리를 치자, 상여를 맨 14명의 여성들이 일제히 소리를 부른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기 위해 ‘어허’ 추임새를 주고받으며 상여를 힘껏 당긴다. 삽을 든 여성들은 가래질을 하며 봉분 주위를 빙빙 돈다.

 

 

연도여자상여소리를 시연한 이들은 연도여자상여소리 전통상례보존회. 진해문화원 공연팀 회원으로 구성된 보존회는 2008년부터 연도여자상여소리 보존을 위한 연습을 이어오고 있다. 연도여자상여소리 계승을 위해 올해 4월엔 현판식도 가졌다.

 

시연에 참여한 한 회원은 “이런 장례문화를 익히 봐온 세대라 직접 공연해보니 재밌다. 남성들이 고기잡이배를 타고 일을 나가면, 섬에 남은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장례를 치렀다. 여성이 장례문화를 이끈 점이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또 다른 회원은 “남성들은 여성들의 장례에 힘을 보태는 역할이었다. 당시 뱃사공과 땅 파는 일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학술세미나와 시연회를 계기로 무형문화재 지정에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다. 연도여자상여소리의 정통성이 인정될만한 근거가 아직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동찬 전통상례보존회장은 “여성들이 상여를 맨 곳은 진해밖에 없어 희소가치가 있다. 진해문화원이 할 일은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노력이다. 10년 넘게 여자상여소리를 연습하고 있지만, 이게 옳은 방향인 지 짚어줄 타당성이 없다. 연도상여소리로 갈 지, 놀이마당으로 갈 지 갈림길에 서 있다”고 토로했다.

 

동국대 임돈희 교수는 “연도여자상례에 대한 민속지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 장례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장례 조직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어떤 단어가 사용됐는지 찾아야만 한다. 기록에 남지 않으면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 상황을 증언해야 학술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명대 최자운 교수는 “소리 전승을 위해 보존회 운영이 가장 중요하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더라도 직접 경험한 1세대, 공연으로 소리를 배운 2세대, 전수학교에서 배운 3세대가 적절히 조합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번 학술세미나와 시연회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최하고 전통상례보존회가 주관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고, 예술in공간이 협력했다.

 

글·사진=주재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