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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온&오프…가상공간과 거장의 작품에 느끼는 감각의 확장과 깊이

부산시립미술관 온라인과 오프라인 전시 2제 ‘눈길’
‘오노프’ 가상공간 만든 VR 전시, 감각의 확장 경험
‘크리스티앙 볼탕스키:4.4’ 실물로 보는 걸작의 힘

 

가상과 실제 공간에서 만나는 새로움과 웅장함.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두 전시 ‘오노프’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 VR로 만나는 가상의 미술관과 세계적 거장의 회고전에서 감각의 확장과 깊이를 경험할 수 있다.

 

■가상 ON, 현실 OFF

 

부산시립미술관은 ‘오노프(ONOOOFF)’ 전시를 위해 가상공간에 미술관을 만들었다. 기존의 온라인 VR 전시가 발자국 모양을 따라가 작품을 확대해서 보는 정도였다면, 오노프는 게임 프로그램으로 전시를 새로 만들었다. 현장 전시와 같은 몰입도를 유지하고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한다.

 

공간을 극복한 공간과 시간을 넘어선 시간.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기 위해 스마트폰에 전시 어플을 다운로드 받아서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전시가 끝나면 웹카달로그는 도메인이 없어지고, 가상공간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향후 미술관 리모델링 등으로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하지 못할 때 이 가상공간을 이용할 계획이다.

 

오노프는 부산시립미술관 2층과 온라인 플랫폼에서 동시에 진행한다. 미술관 전시실은 VR 체험을 하는 공간이다. 현장에서 접수를 받고 시간당 10명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VR 기기를 착용하면 한적한 바닷가에 세워진 가상의 미술관에 입장한다.

 

전시장 입구에서 꼬물거리는 ‘살아있는 무생물’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 작품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윤석남, 박형진, 김유정, 이혜인 작가의 회화 작품이 걸려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정유미 작가의 애니메이션 ‘먼지아이’가 상영되는데 관람객이 원하는 부분을 선택해서 볼 수 있다. 영상 속 오브제가 바깥에 나와 있는 것도 가상공간이라 가능하다.

 

 

손현욱 작가의 ‘배변의 기술’ 등이 전시된 공간을 지나면 이우환 공간에 있는 ‘관계항-좁은 문’이 나온다. 실물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상공간에서의 작품 높이를 80m까지 키웠다. 애니메이션 효과를 더한 권오상의 ‘사진 조각’ 작품을 따라 무중력 공간에 들어서면 VR로 작업하는 권하윤 작가의 ‘489년’이 눈길을 끈다. 가상 미술관에서 가상현실로 만든 비무장지대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위로 날아 오르면 이인미 작가의 사진 작품이 기다린다. 작품 속에 실제 사진 촬영지에서 360도로 바깥 풍경을 다시 찍은 이미지가 들어있다. 마지막에는 팝업북처럼 구현된 김민정 작가의 회화 작품이 기다린다.

 

 

오노프에 전시된 작품은 원본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확대하고, 분리하고, 확장했다. 작품에 따라서는 VR 작업에 2주 넘게 걸린 것도 있다. 황서미 학예연구사는 “가상공간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라 VR 기기를 쓰고 작품 설치를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전시작 대부분이 미술관 소장품으로 작가에게 연락해 VR 콘텐츠화에 대한 동의를 다 구했다”며 “미술관에서의 새로운 시도에 긍정적으로 응해주셨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20일에 끝난다.

 

 

■출발과 도착, 그 후 “죽음은 현재”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는 ‘이우환과 그 친구들’ 시리즈 세 번째 전시이다.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 이후 국내 최대의 회고전인 동시에 작가 사후 첫 전시이다. 전시 제목의 ‘4.4’는 볼탕스키의 출생년도인 1944년을 의미한다. 부산시립미술관 3층과 이우환공간 1층에서 진행되는 전시에는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43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지난해 7월 14일 사망한 작가는 타계 전에 직접 전시작품 선정부터 공간 디자인까지 마무리했다.

 

이번 전시는 히브리어로 ‘절멸’을 뜻하는 쇼아 작가 볼탕스키가 평생 다뤄 온 죽음을 주제로 한다. 이우환 작가는 볼탕스키 생전에 보낸 편지에서 ‘나치에 관련된 것이 중심이 되고 있지만 개인의 죽음부터 집단의 죽음, 역사적인 죽음 통하여 참사의 기억과 인간 삶의 실재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전시장 입구에는 작가가 직접 한글로 디자인한 ‘출발’ 글자가 걸려 있다.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어린이의 사진으로 알려진 ‘기념비’ 시리즈는 ‘어린 시절의 죽음’을 뜻한다. ‘저장소: 퓨림 축제’는 1939년 파리의 이디시 학생들을 찍은 사진을 사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로, 작가는 유대인 어린이들의 불안정한 처지를 이야기한 바 있다. 사람 형상이나 해골 모양을 환등기로 투영한 ‘그림자 연극’도 죽음을 상기시킨다.

 

전시는 규모에서 압도한다. 벽에 검은 거울을 걸고 깜빡이는 전구와 작가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는 작품 ‘심장’은 관람객의 심장까지 뛰게 만든다. 전시장 한쪽 벽면을 옷으로 채운 대형 설치작업 ‘저장소: 카나다’와 약 700kg의 검은 옷을 쌓은 ‘탄광’ 같은 작품이 눈길을 끈다. ‘카나다’는 억류된 유대인의 개인 소지품 보관 창고에 나치가 붙인 이름이다. 작가는 “사진과 옷의 공통점은 현존인 동시에 부재를 의미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작품 ‘탄광’ 위에는 투명한 천에 다양한 이미지가 인쇄된 ‘인간’이 설치되어 영혼처럼 부유한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은 피노체트 독재 정권에 의해 살해된 수천 명의 정치범이 묻혀 있는 곳이다. 이곳에 수백 개의 방울이 바람에 흔들리는 영상 작품 ‘아니미타스’는 상영시간이 13시간이다.

 

이우환 공간에 설치된 ‘설국’은 2021년의 작품이다. 흰색의 천 무덤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암시한다. ‘황혼’은 165개의 전구가 전시 기간 동안 매일 하나씩 꺼져, 마지막에는 완전히 암전된다. 시간과 존재의 가벼움을 담아낸 작품인데, 끝을 향해 가는 삶의 시간을 읽어낼 수 있다. 전시는 3월 27일까지 이어진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