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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창원시립교향악단 참가 ‘2022 교향악축제’ 리뷰

사랑의 비극, 손끝에서 피어나다

 

 

 

 

창원시립교향악단

지난 2~24일 예술의전당서 열린

‘2022 교향악축제’ 참가

 

김상진 비올리스트와 협연

취임 후 첫 무대 김건 지휘자

 

바그너·차이콥스키 음악 들려줘

감정선 깊은 바그너의 오페라 선율

 

비올라 우아한 음색과 다채로운 변주

마치 한 편의 유화 보는 듯해

 

폭발적인 음향과 장악력으로

객석에선 연신 박수와 환호

 

“전쟁과 질병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이 순간, 희망을 노래하는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도 있지만 음악을 통해 비극적인 상황을 직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시대와 삶을 반영하는 음악으로 하여금 고통받는 사람들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고 되돌아보기도 하잖아요.” -김건 창원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지난 2일부터 24일까지 열린 아시아 최대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인 ‘교향악축제’에 전국 각지 20개 교향악단이 참여해 각자의 기량을 펼친 가운데, 지난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창원시립교향악단이 축제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번 공연은 김건 창원시향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가 지난 1월 취임한 후 중앙에서 선보이는 첫 무대. 이날 창원시향이 연주하는 바그너와 차이콥스키의 곡들이 홀을 가득 메웠다. 이 두 음악가들이 만들어 낸 ‘사랑의 비극’이 연주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고 있었다.

 

김건 감독의 지휘와 함께 창원시향은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으로 교향악축제의 서막을 알렸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총 3막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번 무대에서 창원시향은 제1막의 전주곡과 제3막 제3장에 나오는 ‘사랑의 죽음’을 연주했다. 연주하기 까다롭기로 알려져 있는 바그너의 음악. 단상에 올라온 김 감독은 감정을 잡은 뒤 신중하게 지휘를 시작했다. 전주곡 초반 ‘트리스탄 화음’이라 불리는 증화음을 사용하며 긴장감을 유발했다. 사랑의 죽음에서 트리스탄의 죽음과 함께 이졸데 역시 곁에서 숨을 거두는데, 이때 다시 한 번 트리스탄 화음이 들리면서 연주는 끝을 향한다. 김 감독은 손끝에서 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음 하나하나 섬세하게 잡아갔고, 악단은 그의 손짓에 따라 감정선 깊은 선율을 만들어갔다. 유려함과 날카로움이 공존하는 지휘였다.

 

이어 창원시향은 김상진 비올리스트와 협연해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선보였다. 첼로를 위해 작곡된 이 곡이 이번 공연에서는 비올라로 연주됐다. 비올라의 우아한 음색과 다채로운 변주는 황금빛을 연상시켰다. 여기에 현악기들의 피치카토가 곁들여져 연주에 생동감을 더했다. 마치 봄날에 어울리는 한 편의 유화를 보는 듯했다. 앙코르곡으로 김 비올리스트는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 1번 Bb장조 2악장’을 연주했다.

 

10여분간의 휴식 시간 후 다시 무대로 돌아온 창원시향. 마지막 곡 차이콥스키의 단테 신곡의 의한 환상적 교향시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연주를 위해 현악기에 관악기, 타악기 단원들이 모두 등장하며 음악적 진폭을 한껏 끌어올렸다. 김 감독은 단테의 지옥불을 암시하는 도입부와 더불어 3부로 나눠진 작품을 역동적인 지휘를 통해 스토리텔링하며 세심하게 풀어나갔다. 2부 프란체스카의 사랑을 다룬 부분과 3부 영원한 형벌로 이어지는 부분 등 극적인 지점에서는 모든 악기가 폭발적인 음향을 내며 관중을 압도했다.

 

그의 지휘에서 악기뿐만 아니라 공간을 지휘하는 듯한 장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고, 창원시향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깔끔한 선율로 풀어내며 관객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

 

 

〈클래식 숨은 이야기〉

 

클래식 음악 안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곡가와 연주자들의 이야기가 모여 음악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클래식 음악.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따라 자연스레 선율을 타고 가다 보면 어느덧 클래식과 가까워진 우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창원시립교향악단이 2022 교향악축제 무대에서 연주한 작품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클래식의 세계로 한 걸음 내디뎌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현대음악의 시조를 이루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신화와 전설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켈트의 전설로 전해 내려오다 문학화된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몰두한다. 1848년 유럽은 빈 체제에 저항하는 자유주의 물결이 휩쓸고 있었다. 바그너는 혁명에 가담해 독일에서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망명 중이던 그는 자신의 팬인 오토 베젠동크 부부의 도움으로 창작과 작품 공연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그너는 오토의 아내였던 마틸데를 사랑하게 됐고, 이 시기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했다. 의무와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스토리는 바그너 자신의 이뤄질 수 없었던 사랑에 대한 염원을 대변해줄 작품을 쓰는 데 제격이었다.

 

◇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이 작품은 차이콥스키의 모차르트와 고전주의에 대한 오마주라 할 수 있다. 모스크바 음악원의 동료 교수인 첼리스트 빌헬름 피첸하겐의 조언으로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변주곡을 18세기 로코코 양식으로 작곡했다. 멜로디의 우아함과 상쾌함에서 차이콥스키가 가지고 있던 18세기에 대한 동경의 미학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피첸하겐은 8개의 변주를 줄이거나 변주 순서를 바꿔 연주했다. 차이콥스키는 못마땅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연주는 그에게 성공을 가져다줬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의 변주 순서는 차이콥스키와 피첸하겐의 구성 등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 차이콥스키의 단테 신곡의 의한 환상적 교향시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오늘 아침 기차 안에서 지옥편의 제5곡을 읽으며 프란체스카에 대한 교향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1876년 7월 27일, 차이콥스키는 리옹에서 파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단테 신곡에 등장하는 미인 ‘프란체스카 다 라미니’를 비극적으로 해석한 차이콥스키의 생각이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내용은 원수지간인 귀도다 폴렌타와 말라테스타 가문이 화해의 의미로 귀도의 딸 프란체스카를 말라테스타 가문의 장남 지오반니와 결혼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귀도는 못생긴 지오반니를 대신해 동생 파올로를 지오반니라고 속이고 프란체스카에게 소개한다. 둘은 사랑에 빠졌지만, 결혼식 다음날에서야 신랑이 지오반니로 바뀐 것을 알게 된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는 몰래 사랑을 이어갔지만, 이를 눈치챈 지오반니는 이들을 죽이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