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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新팔도명물] 청정 바다에서 자란 여름 대표 보양식 '신안 민어'

기름장 살짝 찍은 부레, 쫀득한 식감 생각나는 걸 보니 여름 맞구나

 

지난해 3월 임자대교 개통 이후 피서객이 부쩍 늘어난 신안 임자도 대광해수욕장에는 은빛 민어를 본뜬 5m 높이 '민어상'이 우뚝 서 있다.

백사장에서 서쪽으로 차로 5분 달리면 전라도 3대 파시(波市·생선 시장)로 명성을 날렸던 하우리항이 나온다. 신안은 민어와 병어, 새우 등 어장이 풍부해서 1930년대부터 바다 위나 모래밭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이 성행했다.

"맛있는 민어 먹으려면 7~8월 임자도 앞바다로"
12가지 부위 참맛 즐길수 있게 5㎏ 이상만 취급
아미노산 풍부하고 열량 낮아 성인병 예방 효과
한마리 스무점도 안 나와 귀한 부위 '부레' 별미

 

 

초복(7월16일)을 앞두고 찾은 하우리항 인근 이자홍(47)씨의 횟집에서는 갓 잡은 민어 손질이 한창이었다. 이씨는 장인 허영운(68)씨가 10t급 어선에서 잡은 민어로 회와 탕, 찜, 떡갈비 등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장 맛있는 민어를 먹으려면 7~8월 임자도 앞바다로 와야 해요. 맛좋은 민어는 손질할 때 기름이 쫙 흘러나오죠. 신안에서는 적어도 5㎏ 이상 민어를 취급하는데, 그래야 12가지 부위의 참맛을 모자람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10~20㎏ 넘는 민어가 들어오는 날은 손질에만 1시간 넘게 매달릴 때도 있어요."

드넓은 갯벌과 모래가 펼쳐진 임자 앞바다에는 7월이면 민어들이 알을 낳기 위해 몰려온다. 임자도 해역은 수심 10~20m에 먹이 생물로 가득한 모래 바닥이 깔려 있어 민어에게 최적의 산란지다.

민어는 새우를 가장 좋아하는데 임자도 바다는 새우도 풍부하다. 식물 플랑크톤이 서식하는 신안 갯벌은 민어를 대표 특산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 갯벌 가운데 신안 면적은 전체의 85.5%(1천100.86㎢)를 차지한다. 신안 청정바다에서 게르마늄과 미네랄을 먹고 자란 민어는 '한 접시 먹으면 그해 여름은 거뜬히 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여름 대표 보양식으로 손꼽힌다. 임자도를 중심으로 매년 7월부터 9월 사이에 많이 잡힌다.

 

 

민어는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열량은 낮다. 비만증,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 중풍, 심장질환 등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고, 어린이 성장 발육이나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준다. 신안 민어는 예로부터 임금에 진상될 정도로 값어치가 나간다.

요즘 ㎏당 평균 5만~6만원선에 거래되는데, 삼복 앞뒤에는 7만원부터 9만원까지 치솟는다. 지난해 신안 민어 생산량은 전국의 9% 비중(4천996t 중 473t)을 차지했지만, 생산금액 비중은 이의 2배인 18%(431억원 중 78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한 수온 변화로 신안 앞바다에서 잡히는 민어는 점차 줄어들며 미식가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지난해 신안 민어 생산량은 473t으로, 전년(508t)보다 6.9%(-35t) 감소했다. 어민들 사이에선 10번 출항하면 5번은 만선이었지만 최근 몇 년 들어서는 2~3일에 한 번 만선이 될까 말까 하다는 넋두리가 나온다.

신안에서 민어를 조업하는 어가는 492가구로, 잡은 민어는 신안수협지점 송도위판장에서 대부분 위판·판매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77억6천300만원의 위판고를 올렸고, 올해 3~6월 석 달 동안은 111t이 생산되며 위판고 13억원을 기록했다.

 

 

'부레를 먹지 않으면 민어를 안 먹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공기주머니 부레는 민어 별미로 꼽힌다. 겉살은 부드러운데 속은 쫀득쫀득한 맛이 독보적이다.

민어 부레는 피부 탄력에 좋은 젤라틴과 콘드로이틴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부레는 5㎏ 한 마리에 스무 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귀한 부위다. 민어 애호가들은 기름장에 찍거나 생으로 천천히 맛을 음미하곤 한다.

신선한 민어를 고르려면 먼저 눈동자가 선명하고 반짝반짝한지 봐야 한다. 손으로 눌렀을 때 살이 바로 튀어 올라야 탄력 있고 싱싱한 민어다. 민어는 크기에 따라 작은 것은 '깜부기', '통치' 등으로 부른다. 몸집이 크면 수백만 원도 호가할 정도로 고급 어종이다.

 

 

■ '버릴게 없는 생선' 즐기는 방법도 무궁무진

민어찜·건정찜·곰탕·껍질묵·머리젓·백숙·어죽·회…


정약전(1758∼1816)이 신안 흑산도 유배지에서 쓴 우리나라 최초 어류도감 '자산어보'에서 '민어는 익혀 먹거나 날것으로 먹어도 좋으며, 말린 것은 더더욱 좋다'고 했다.

민어는 흰 살뿐만 아니라 껍질, 부레(공기 주머니), 뱃살, 지느러미까지 '버릴 게 없는' 생선이다. 임금에게 바치는 '보양식의 왕'으로 군림하는 민어는 어울리지 않게도 백성 민(民)을 쓴다. '국민 생선'답게 막회로 먹거나 전 지지고 탕 끓이며 알찬 식재료 역할을 해왔다.

신안에서는 주로 민어찜, 건정찜, 민어곰탕, 민어껍질묵, 민어머리젓, 민어백숙, 민어죽, 민어회 등으로 먹는다. 씹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신안 대파와 양파, 개두릅은 이들 민어 요리와 찰떡궁합이다.

마른 민어 '건정'은 명품 중의 명품으로 통한다. 청정 갯벌에서 불어오는 봄 해풍을 40여 일간 맞고 천일염으로 절여진 '해풍건정'은 육포의 맛을 뛰어넘는다. 건정 민어는 각종 약재를 넣고 탕으로 끓여도 되고 살짝 불려 양념을 해 굽거나 찜으로도 먹을 수 있다.

 

 

'민어탕은 일품, 도미탕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민어는 여름철 대표 보양식이자 최고급 어종으로 꼽힌다. 산모가 산도랏(산도라지) 건정 민어탕을 먹으면 젖이 쑥쑥 나온다 할 정도로 특효를 자랑한다.

민어를 오래 고아 맑은탕이나 매운탕으로 즐길 수 있다. 건정 민어를 쌀뜨물에 넣고 푹 고아 내놓는 건민어탕이나 민어곰탕은 민어 본연의 맛을 살렸다.

숭어알보다 크기가 큰 민어알도 '어란'이 될 수 있다. 참기름을 발라 그늘에 말린 '어란'은 부추와 쌈 싸 먹으면 별미다.

새콤한 '민어회무침'은 여름철 입맛을 돋우고, 2시간 넘게 끓여 육수를 낸 '민어어죽'은 보양에 그만이다.

묵은지나 갓김치를 넣어 자작하게 끓여낸 민어찜은 수라상을 부럽지 않게 한다.

민어껍질을 자글자글하게 끓인 뒤 소금 간을 하고 굳힌 '민어껍질묵'과 1년 이상 저온고에서 숙성시킨 '민어머리젓'은 숨은 밥도둑이다.

 

 

식도락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MZ세대를 위한 요리도 나왔다. 귀한 민어 뱃살을 두툼하게 썰어 구운 '민어 뱃살 묵은지 스테이크'와 민어살 90%와 갑오징어·채소 10% 비중으로 다져 구운 '민어 떡갈비'도 있다.

지난 2018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에서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 신안 가거도에서 잡은 민어로 만든 민어해삼편수가 식탁에 오르기도 했다.

/광주일보=백희준·이상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