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미술관을 찾았다. 좀 더 빨리 방문해 작품 하나 하나를 음미하며 차분히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 루오는 조금 생소한 작가였는데 작품에 큰 감명을 받았다. ‘베로니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난 29일,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전이 열리고 있는 광양 전남도립미술관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전시 마지막날이었던 이날 하루만 3000여명이 다녀가는 등 주말 이틀 동안 5000여명이 방문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 도슨트의 해설에 몰두하는 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지난해 10월 5일 개막, 102일간의 여정을 이어간 조르주 루오전이 지난 29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전남도립미술관이 자체 기획한 이번 전시는 지역에서 접하기 어려운 대규모 블록버스터 명화전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명화 전시를 서울이나 대도시가 아닌, 인구 13만명의 지방, 그것도 개관 2년차 공립미술관에서 개최하는 건 의미있는 일로 전시장을 찾아 감동을 받은 관람객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이번 전시에는 약 5만여명(미술관 추산)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광양, 순천, 여수 등 전남 지역을 비롯해 서울, 경기 등 수도권과 광주, 진주,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한반도의 끝자락이라는 지리적 여건 등과 교통편, 유료 관람(성인 1만 5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의미있는 수치다.
파리 퐁피두센터와 조르주 루오재단, 말랭그갤러리에서 엄선한 작품 200점을 만난 이번 기획전은 회화, 드로잉, 판화, 스테인드글라스, 타피스트리, 도자기 등 루오가 전 생애를 통해 제작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주제별로 전시, 눈길을 끌었다. 루오는 사후 프랑스에서 국민장을 치를 정도로 명성이 높은 화가였고, 이번 전시를 통해 상대적으로 국내에는 덜 알려졌던 ‘거장’의 작품을 직접 감상하고 알아가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았던 루오의 작품은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 삶과 맞물리면서 각성과 위로를 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루오가 비참한 마음으로 제작했던 ‘미제레레(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속 모습처럼, 세상은 또 다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신음했고 어머니와 병사들의 슬픔을 위로했던 그의 작품은 여전히 유효했다. 또 이태원 참사로 아파했던 이들을 어루만졌고, 연말연시를 맞아 자신과 이웃을 돌아보는 기회도 제공했다.
관람객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은 루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58점의 판화 연작 ‘미 제레레’였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독작적인 전시 공간으로 들어선 관람객들은 차분한 모습으로 작품을 살피며 내용을 곱씹었다. 또 ‘베로니카’, ‘루드밀라’, ‘두 형제’ 등의 작품도 눈길을 끌었으며 BTS 리더 RM이 인증샷을 올렸던 스테인드글래스 작품 ‘작은 숲 1’에는 관람객의 카메라 세례가 이어졌다.
“루오가 그려 낸 인물들은 ‘모든 짐 진 이들의 얼굴’”이라고 말한 ‘태백산맥’의 소설가 조정래 작가도 전시장을 방문, “루오를 이해하는 것은 신과 인간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전남도립미술관은 이번 루오전과 연계해 초보 관람객들에게 눈높이를 맞춘 ‘뮤지엄 오디세이’를 진행, 관람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프랑스 출신 방송인이자 숙명여대 프랑스 언어문화학과 교수 이다도시, 문화재 배틀쇼 ‘KBS-천상의 컬렉션’ 진행자로 활동했던 개그맨이자 방송인 서경석, 화가로도 활동중인 가수 조영남 등이다.
또 이중섭, 구본웅 등 한국작가들 23명의 작품 40여점을 소개한 연계전시 ‘조르주 루오와 한국 미술:시선 공명’전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지역의 어린이, 초중고생들에게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전시 기간 동안 광양 용강중, 화순 이양고, 진주 반성초, 광양 뽀뽀유치원 등 4000여명의 단체 관람객이 다녀갔다. 그밖에 광양상공회의소가 미술관에서 신년하례식을 진행하고 입장권을 구입, 직원들에게 배포하는 등 메세나도 이어졌다.
무엇보다 개관 2년차인 신생미술관의 이름을 알리고, 한번 쯤 찾아보고 싶은 미술관으로 관람객들에게 기억되는 등 미술관의 위상이 높아진 점은 큰 성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