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국제영화제(BIFF) 이용관 이사장이 올해 집행위원장을 대행할 남동철 수석프로그래머 압박에 나섰다. BIFF 내홍을 초래한 조종국 운영위원장 해촉에 대해 묵묵부답하던 이 이사장이 조 위원장 사퇴 안건 등 영화계의 정당한 요구를 반영해 임시총회 소집을 요청한 남 프로그래머를 압박한 것은 적반하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BIFF 사태를 수습한 후 퇴진하겠다고 밝힌 이 이사장이 최측근인 조 위원장 사퇴를 내부에서 거론하자 본색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 13일 밤 BIFF 이사와 집행위원 전원에게 메시지를 보내 ‘남동철 프로그래머가 (집행위원장)직무대행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겠다’고 언급했다. 그는 ‘(남 프로그래머가)집행부 회의에서의 약속을 저버리고 총회 소집을 요청한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며 ‘이사장으로서 간과하기 어려운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남 프로그래머는 지난 2일 BIFF 이사회가 사실상 집행위원장 대행 역할을 맡긴 인물이다. 이 이사장 최측근인 조 위원장이 지난달 9일 신설된 ‘공동 위원장’ 자리에 임명되자 허문영 전 집행위원장이 같은 달 11일 BIFF를 떠났다. 영화제 사유화 논란에 휩싸인 이 이사장은 결국 나흘 뒤 사태를 수습한 후 퇴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 이사장의 경고성 메시지는 남 프로그래머가 BIFF 임시총회 소집을 요청한 후 발송됐다. 남 프로그래머는 지난 12일 이사와 집행위원 전원에게 ‘집행위원장 대행 권한 명문화’와 ‘조 위원장 거취에 대한 결정’을 안건으로 다뤄달라는 글을 보냈다. 그는 ‘현재 규정에는 운영위원장이 법인 운영, 영화제와 마켓 등 일반 사무, 행정, 예산 등을 총괄하게 돼 있다’며 대행으로 원활히 일하려면 두 가지 부분에서 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셈이다.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이 애매한 상태에서 업무에 혼선이 있는 현실을 토로한 셈이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절차상 문제에 집중하며 오히려 남 프로그래머 비판에 나섰다. 그는 이번 메시지에서 ‘지난 12일 진행된 집행부 회의에서 총회를 열겠다고 약속했다’며 ‘(출범을 준비하는)혁신위원회가 이사회와 총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 만큼 두 가지를 같이 다룰 일정을 잡겠다고 했다’고 화살을 돌렸다. 이어 ‘그게 여의치 않으면 집행위원장 직무 대행 건을 먼저 다루는 총회를 개최하겠다고 답변했다’면서 집행위원인 남 프로그래머의 제안이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남 프로그래머는 “12일 회의에서 혁신위원회와 함께 총회를 열 것이라는 이사장의 이야기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조 위원장 거취 문제는 얘기를 안 하려고 해서 그것을 포함해 총회 소집을 요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조 위원장 사퇴 문제를 총회 안건으로 다뤄야 한다는 의견을 지난주 이사장에게 전달했으나 거절 당했다”며 “앞으로 총회가 열리면 조 위원장 거취 문제가 주요 안건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했다.
영화계에서는 분노를 넘어 황당하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부산 영화인 A 씨는 “퇴진을 약속한 이 이사장이 사태를 수습하거나 조용히 끝낼 생각이 없단 걸 보여주고 있다”며 “영화계가 더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것이며 이사와 집행위원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밝혔다.
그동안 소극적 대응에 나섰다고 비판받은 BIFF 이사회는 우선 15일 임시 이사회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