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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2021 신춘문예-영광의 얼굴들] 기어코 만난 ‘문학의 봄’… 이젠 한목소리로 “지켜보라”

 

글쓰기는 고통스럽다고 했던가, 아니면 행복하다고 했던가. 각고하며 모색하던 미완의 글쓰기가 이제 출발선에 섰다. 그것이 새봄, ‘신춘’이다. 올 것 같지 않던 신춘이 지금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2021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6명의 얼굴에 발그레한 봄이 묻어났다. 20대 1명, 30대 2명, 50대 3명인 이들은 대부분 오랜 기간 글을 써왔다. 올해 당선자는 모두 여성들이다. 그들이 열어 제친 신춘의 모양새는 어떠한가. 세상의 한 자락을 움켜쥔 그들의 손아귀 속에 담긴 꿈들을 펼쳐본다.

 

단편소설 당선자 이지은(39·경북 안동시) 씨는 쓸쓸한 사랑, 인간과 인간의 거리감에 대한 얘기를 응모작에서 작품화했다. 어릴 때부터 쭉 글을 써왔고, 동화도 써서 유수한 공모전 몇 군데서 상도 받은 그는 “차분하고 절제된, 이를테면 도토리묵처럼 선선하게 식어가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소설은 인간 내면이 사회에 말을 거는 대화의 형식이 아닐까 해요. 내면을 파고든 그 얘기가 소통되고 들리면 좋은 소설이 되겠지요.” 카피라이터의 꿈을 접고 계명대에서 문예창작을 부전공했고, 독서·논술을 16년째 지도하고 있으며 어느 날 문득 ‘나는 글을 쓰면서 살게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새로운 구조의 낯선 글, 사각거리는 빛나는 문장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의 글에서는 오랜 기간 숙련한 문장의 향기가 난다는 평이었다. 간단치 않은 문장들이다.

 

시 당선자 김수원(50·부산 부산진구) 씨는 주부로 살다가 2007년 작은애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부터 문학 공부를 했다고 한다. “처음엔 시조 공부를 했으며 2012년 시를 공부하기 위해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갔어요. 대학원에도 들어가 지난 4년 동안 시를 치열하게 썼어요. 외롭게 투쟁적으로 시를 썼던 거 같아요.” 그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표현 방법을 몰랐을 뿐 자신에게 내재된 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글쓰기에 많은 것을 걸었다는 거다. “시와 인간은 완결될 수 없는 미완의 존재인 거 같아요. 그래서 시로써 인간을 끊임없이 탐구할 수 있는 거 아닐까 해요.” 그는 바흐친의 말을 인용하면서 “완결될 수 없음을 향해 나아가는 행위가 시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동아대에서 영화·시나리오를 가르치고 있다.

 

시조 당선자 최정희(54·경기도 이천시) 씨는 이과 출신이다. 이전에 병원 임상병리과에 근무했으며, 지금은 10년째 수학교습소를 운영 중이다. “이과 출신이라 그런지 내 속의 언어들이 그렇게 무성하지는 않은 거 같아요.” 그래도 시와 동시를 써서 신춘문예에 시, 유명 문예지 공모전에 동시가 당선된 것을 비롯해 글과의 인연은 오래됐다. 그는 “제가 보기에 시가 점차 난해해지는 것 같다”며 “그래서 막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 시조를 썼다”고 했다. “내 얘기를 하고 싶어 그냥 읽고 썼어요. 어릴 적부터 저에게 글은 한없는 위로와 공감의 샘물 같았어요. 그런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는 글, 저의 철학이 담겨 있는 글을 쓸 거예요.”

 

아동문학 부문에서 동화로 당선한 이재민(57·경남 김해시) 씨도 23년간 독서·논술을 가르쳤다. 10여 년 전 가을 불모산 아름다운 단풍에 삶을 돌이키는 충격을 받아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코로나19 때문에 2020년 7월 말 독서·논술 가르치는 걸 정리한 이후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덕(?)을 본 셈이다. 그는 “문학은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학은 끊임없는 질문하기이며 그 속에 이미 답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호주 작가 숀 탠을 좋아한다”며 “평범하면서도 이상하고, 친숙하면서 낯설고, 지역적이면서 세계적인 글을 쓰고 싶다”고 포부를 말했다. 그의 당선작은 아미마을을 배경으로 한 길냥이 얘기다.

 

희곡·시나리오 부문에서 희곡으로 당선한 박세향(30·대구시 남구) 씨는 연극배우다. 무대 감각이 묻어나는 그의 희곡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는 “희곡은 다른 글쓰기와 다르다”며 “어쨌든 배우들이 연기해서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글”이라고 했다. 자살을 소재로 한 이번 당선작은 “누구나 처한 상황은 매우 힘들다. 그렇게 살고들 있으니 자기만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라. 절망하지 말고 열심히 살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한다. 그는 “일반사회교육과를 졸업했으나 교사가 안 맞을 거 같았다”며 “다양한 삶을 연기하며 살 수 있는 배우가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배우가 돼서는 종이 대본이 무대에서 배우들을 통해 다른 모습으로 생생히 살아나는 게 매력으로 다가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거다. “신작이 기대되는 전국적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그는 남자친구와 극단도 만들었다고 한다.

 

평론 부문에서 문학평론으로 당선한 강희정(25·부산 북구) 씨는 당선자 중 가장 젊다. 어릴 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워왔다고.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평론에 당선됐다. 재수하고 들어간 신방과를 자퇴하고 다시 한국어문학과를 들어가 신춘문예 단편소설에 2년간 도전한 뒤 출판사 편집자의 꿈을 키우던 현장에서 평론가를 만나 평론 공부를 했다. “내가 경험한 것을 바탕 삼아 부당함과 부조리를 그냥 넘기지 말고 기억하고, 특히 남의 아픔을 나서서 잊지 않고 기억해서, 그리고 그 마음들을 모아 세상의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그러면서 그는 “이제 저는 글쓰기와 공부를 시작했을 뿐”이라며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노력하겠다”라고 했다.

 

과연 신춘문예를 통과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이를 통과해도 글을 계속해서 쓰는 이는 적다. 또 글을 써도 좋은 글을 쓰는 이는 흔치 않다. 이들은 “그런 거 다 알고 있다”고 당차게 말했다. 그리고 “지켜봐라”고 했다. 참으로 갈망했던 글쓰기의 새로운 장, 그 출발선에 그들이 서 있다. 우리는 그들의 다짐과 글쓰기를 지켜볼 것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 ‘나는 글로 쓰인 모든 것들 가운데서 오로지 피로 쓰인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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