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강릉 1.3℃
  • 서울 3.2℃
  • 인천 2.1℃
  • 흐림원주 3.7℃
  • 흐림수원 3.7℃
  • 청주 3.0℃
  • 대전 3.3℃
  • 포항 7.8℃
  • 대구 6.8℃
  • 전주 6.9℃
  • 울산 6.6℃
  • 창원 7.8℃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순천 6.7℃
  • 홍성(예) 3.6℃
  • 흐림제주 10.7℃
  • 흐림김해시 7.1℃
  • 흐림구미 5.8℃
기상청 제공
메뉴

(매일신문) [이원선의 힐링&여행] 봄마중 통도사 자장매

 

봄을 찾아가는 길에 얼굴을 할퀴는 바람결에는 겨울의 옹골참이 스며있다. 모자는 깊숙이 눌러쓰고 옷깃은 호호 분 손끝으로 꼭꼭 눌러서 여민다. 하지만 계절은 이미 봄을 초대하고 있다. 자장매가 꽃봉오리를 터트리고 뿜어내는 향기에 홀린 발걸음은 은연중 통도사에 닿는다.

 

 

◆자장율사가 창건 불보사찰 통도사

 

양산 영축산 통도사는 낙동강과 동해를 끼고 하늘을 향해 치솟은 해발 1,081m의 영축산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국국대찰, 불불종가(國國大刹, 佛佛宗家:나라에서 큰절이며 불교의 종갓집)답게 가야산 해인사(법보사찰)와 조계산 송강사(승보사찰)들 중 맏이로 불보사찰(불보사찰)이다. 선덕여왕 15년(646년)에 대국통(大國統)인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고찰로써 기본정신은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에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선덕여왕 때에 자장율사께서 당나라에서 모시고 온 부처님의 불두골, 부처님의 치아등 사리 100립과 부처님이 입으시던 가사 한 벌이 있었는데 그 사리를 3분하여 일부분은 황룡사탑에 두고 일부분은 태화사탑, 일부분은 가사와 함께 통도사 계단에 두었으며"라고 한다.

 

자장율사는 신라 진골 출신으로 소판 벼슬을 지낸 김무림의 아들이다. 슬하에 자식이 없으므로 삼보에 귀의하여 천부의 관음보살상을 조성하고 기도를 올리며 "만일 아들을 낳으면 시주하여 불교의 지도자로 만들겠습니다."하는 축원 끝에 그의 어머니의 꿈에 별이 떨어져 품안에 들어오더니 태기가 있었다.

 

부처님과 같은 날에 태어남으로 이름을 '선종랑'이라 하였다. 당초 약속대로 삼보에 귀의한 선종량이 당나라 오대산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드릴 때었다. 승려로 화현한 문수보살로부터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1백과와 염주 그리고 경전 등을 받아 신라에 전했다고 한다.

 

 

 

◆용의 전설을 간직한 통도사

 

전설에 의하면 통도사를 창건할 당시 사찰 터에 독룡이 살았다고 한다. 이후 스님의 설법에 즈음하여 항복한 독룡은 9마리였는데 그중 다섯 마리는 오룡동으로, 세 마리는 삼동곡으로 갔으나 오직 눈먼 용 한 마리가 부득불 그곳에 남아 터를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한다. 이에 스님은 그의 청을 들어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머물도록 한다.

 

그곳이 지금의 구룡지다. 불과 네댓 평의 넓이에 지나지 않으며 깊이 또한 한 길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타원형의 연못에 불과하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들어도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구룡지는 대웅전 뒤편 '대방광전'현판 아래에 있으며 현재 남북으로 석교가 놓여 있고 독룡을 대신 붉은색과 황금색 잉어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국난속에서 호국불교로서 역할을 한 통도사

 

대한민국 거의 모든 사찰이 그러하듯 통도사 또한 여러 차례에 걸친 국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호국불교로서 그 향기가 기록을 통해 진하게 풍겨난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을 조직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 운동의 거점이 되었으며, 한국전쟁 때는 부상자 치료를 위해 사찰을 내 주기도 했다. 이처럼 통도사는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사회의 삶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사찰은 이런저런 화재로 인해 전각이 소실되는 등 끊임없는 화마에 시달렸다.

 

통도사는 매년 단오를 맞아 지난해에 넣어 두었던 소금단지를 내려 새로운 소금으로 갈아 넣고는 '화마진언'이란 게송이 적힌 종이로 봉한 후 전각 처마에 다시 올리고 있다. 그리고 참석한 불자들에게 불조심을 강조하기 위해 소금이 든 봉지를 나누어 주고 있다. 2019년에는 약 2만 5천개의 소금봉투를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극락정토를 항해 가는 중생들의 모습을 묘사한 '반야용선도'

 

일주문을 지나 극락보전 벽에 그려진 한 폭의 벽화를 만났다. 용선을 인도하는 인로왕보살이 뱃머리에 서고 고물에는 지장보살이 상징인 철장을 짚고 섰다. 그 가운데 지은 죄를 구제를 받아 극락정토를 향해가는 사람들이 두 손을 모아 합장, 극락정토가 주는 마음속의 평안과 앞날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기한 듯 미지의 세계에 대해 두려움이 서리는 듯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뱃머리를 향해서 앉았다.

 

'반야용선도'로 용의 머리와 꼬리로 장식된 배를 타고 파도를 헤치며 극락정토를 항해 가는 그림이다. 여기서 배는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근원적 지혜인 반야를 상징하고 바다는 파란고해로 꽉 찬 사바세계를 뜻한다.

 

따라서 '반야용선도'는 반야의 지혜에 기대어 극락정토를 항해 가는 중생들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뒤를 돌아보는 한 사람이 있다. 구제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사바세계에 두고 온 처자식이 눈에 밟히는지 그도 아니면 지인들이 생각나는지 뒤를 돌아보고 있다. 다분히 해학적으로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모습이다.

 

여러 채의 전각을 지나 대웅전을 마주한다. 통도사 대웅전이 갖는 특별한 점은 전각 사면에 걸린 현판이라 할 수 있다.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 남쪽은 금강계단, 북쪽은 적멸보궁으로 각기 다른 현판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 중 '금강계단'이란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라고 전한다.

 

곧장 법당에 드니 마땅히 있어야할 석가모니불 대신 통 창을 넘어 금강계단 위에 우뚝한 진신사리탑이 눈에 들어온다. 불상은 부처님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으로 진신사리는 부처님 그 자체다. 따라서 별도로 불상을 둘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불단(수미단)정도만 놓는 것이 상례다.

 

 

◆사찰을 창건한 자장율사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해 심은 매화

 

주된 목적인 자장매와의 조우를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여명을 밝히는 태양이 앞산 위로 수줍게 얼굴 내미는 중에 입을 하얗게 봉한 사람들이 나무를 중심으로 서성인다. '코로나19'에 대한 지침을 준수,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분홍색으로 물들어 가는 자장매를 향해 카메라를 정조준이다. 그 모습에 조급증이 일고, 뒤질까 조바심일어 은근슬쩍 몸을 밀어 넣는다. 1월 하순부터 하나 둘 꽃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한 자장매화는 2월의 중순으로 치달으며 만개, 어울렁 더울렁 어깨를 비벼가며 소곤소곤 나누는 봄 이야기가 귓전에 자자구구 정겹다.

 

통도사 자장매는 1650년을 전후하여 사찰을 창건한 자장율사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해 심은 것으로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임진왜란 후 통도사 중창을 발원한 우운대사는 상량보를 올리고 낙성을 마치니 홀연히 매화 싹이 자라나서 해마다 섣달 납월에 연분홍 꽃이 피어 사람들은 이를 자장스님의 이심전심이라 믿었다. 매화는 매서운 추위가 뼛속까지 사무칠 때 향이 더욱 짙어진다. 그 특성이 수행자의 구도행과 닮았고 자장스님의 지계 정신을 표현한다 해서 이를 자장매화라 하였다."

 

눈동자는 점점이 핀 꽃에 파묻혀 몽롱하고 몸은 한량없이 뿜어내는 매향에 취해서 비몽사몽이다. 문득 늘어진 가지가지마다 올망졸망 매달린 연분홍 매화꽃에서 봄밤의 서정에 취해 잠을 이루지 못해 읊었다는 이조년의 '다정가'를 떠올린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환영일까? 대웅전 용마루를 훨훨 넘어 온 두견새 한 마리가 난분분 피어난 매화꽃을 희롱하여 춤을 추는 듯하다.

 

 

글·사진 이원선 시니어매일 선임기자 lwonssu@hanmail.net

 

특집부 weekly@imaeil.com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