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이 수사와 피해자 보호에 미흡한 점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한 화성 동탄 납치 살해 사건(5월29일자 1면 보도)처럼 긴 시간 동거 중인 관계에서 발생한 ‘보복살인’의 시도가 경기도에서 매년 반복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보복살인 대부분은 동탄 사건처럼 이미 수차례의 폭행에 노출되고 경찰 신고가 접수됐지만, 비극을 막을 수 없었다는 공통점이 드러나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9일 경인일보는 지난 2020년 5월부터 올해까지 5년간 수원지법에서 동거 등 사실혼 관계 속 발생한 살인(4건) 및 살인미수(8건)에 대해 선고한 1심 12건의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절반 이상이 살인 및 살인미수 전에 폭행과 재물손괴 등의 ‘전조 범행’이 있었다.
지난 2023년 2월 살인 혐의로 수원지법에서 징역 15년이 선고된 A씨는 사실혼 관계의 40대 여성을 살해했다. 3년 이상 오산에서 동거한 A씨는 사건 발생 한해 전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던져 재물손괴죄로 약식명령을 발령받았다.
살인 범행 8개월 전 또다시 그는 지인들과 술을 마시던 중 피해자의 얼굴을 손으로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어 경찰에 잡혀 폭행죄로 입건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동거 중인 60대 여성을 살해한 B씨는 지난해 11월 보복살인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B씨는 살인을 저지르기 한 달 전 피해자를 손으로 밀어 바닥에 넘어뜨리는 등 10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폭행했다.
형사 고소로 경찰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은 B씨는 지난해 5월 수원가정법원으로부터 피해자 주거지에서 즉시 퇴거와 100m 이내의 접근금지, 핸드폰을 통한 연락을 금하는 등의 임시조치 결정을 받았다.
자신을 고소·고발하고 경찰에 수사단서를 제공·진술한 피해자에게 불만을 품은 B씨는 보복을 마음먹고 화성의 주거지 건물을 방화해 그를 살해했다.
사실혼 관계의 60대 여성 피해자에게 강제로 농약을 먹이려 해 살인미수 혐의로 2023년 10월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된 C씨는 범행 전 가정폭력으로 무려 7건 입건됐다. 둘은 10년 가까이 동거했다.
그중 4번의 가정보호사건 송치 전력이 있는 등 피해자를 반복해 폭행하고 불화가 잦았다는 점이 판결문에 적시돼 있었다.
살인미수 범행 이후 특수폭행도 저질렀는데, 시흥의 거주지에서 “방에서 담배를 그만 피워라”는 피해자의 말에 빨래건조대로 수차례 피해자를 때리고 그를 밟고 올라간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법상 가정폭력 발생 시 사실혼은 법률혼과 거의 동일한 경찰 초동 대응과 피해자 보호 조치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장시간 동거 중임에도 혼인관계를 갖거나 입증하지 않은 관계는 가정폭력범죄 입건, 피해자 쉼터 입소 및 보호조치 등이 적용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동탄 살인 사건의 경우 살인 범행 전 1, 2차 폭력 피해 신고인 지난해 9월9일과 올해 2월23일 모두 경찰은 동거하는 연인 사이에 발생한 단순 교제 폭력으로 판단했다. 2차 신고 직후 피해자는 경찰에 “화해했다”고 진술해 사건이 종료됐는데, 이후 가해자에게 폭행 등 고문에 가까운 가혹행위를 당했다.
법률사무소 집현전의 이호동 대표변호사는 “가정폭력 발생 시 피해자가 화해했다 등의 진술로 훈방, 종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수는 경찰이 떠난 후 동거하는 가해자의 보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같이 진술한다”며 “혼인보다 동거 여부, 재발 가능성 등을 체계적으로 평가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