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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순자문화제, 공동체 기억 공유 '삶의 재발견'

경기문화재단 에코뮤지엄 사업 '동두천 턱거리 마을박물관' 기지촌 여성 장례 재현

 

 

미군 부대 캠프 호비(Camp Hovey)는 동두천시에 주둔한 미군 육군의 제1지역 군영이었다. 동두천시의 동쪽 끝 작은 마을 '턱거리'는 기지촌으로 성황을 이뤘다. '개도 달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문화도 풍성했다. 1970~1980년대 주요 소비자였던 미군 취향에 맞춰 서양 레코드 음반 판매점이 즐비했고 휴가 나온 군인을 위한 맞춤식 양장점부터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 음식과 주류를 판매하는 상점이 문전성시였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미군 감축과 2019년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미군 부대가 이전하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턱거리마을은 생존 동력을 찾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주민 간 갈등도 불거졌다.

기지촌에서 '양공주' 혹은 '양색시'라고 불렸던 존재를 둘러싼 갈등도 수많은 부침 중 하나였다. 미군을 상대했던 기지촌 여성은 부정적인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주소지의 '동두천'을 어디에도 없는 '천두동'으로 거꾸로 적거나 서울의 친척집으로 기록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한다.

스스로 사회로부터 숨었던 그녀들이 미군도 떠난 마을에서 갈등 요소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19년이다. 턱거리마을은 2019년 5월 경기문화재단 경기북부 에코뮤지엄 시범사업에 선정돼 커뮤니티공간으로 턱거리마을박물관, 일명 '샹제리에'를 리모델링해 2019년 11월30일 개관했다.

에코뮤지엄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해체돼가는 공동체와 부지불식간에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가까운 과거의 문화유산을 유지·보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

에코뮤지엄 사업으로 조성된 턱거리마을박물관은 지역을 조사하고 주민을 능동적 주체로 세우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기지촌 여성을 드러내는 '순자문화제'를 기획했다.

기지촌으로 번성했던 골목의 끝에 서 있는 미군 부대의 정문, 그 긴 철문 옆으로 부대 철조망을 따라 오솔길을 걷다 보면 작은 무덤과 영어 비문이 적힌 비석이 있다.

내용은 '순자 레이놀드 1971년 2월7일 사망하다. 내 사랑 편히 쉬시오, 그리고 날 기억해주오. 우리의 마음은 함께였고 나는 영원히 당신을 생각하고 있으니, 박순자 가지 말아주오'다.

마을신문 편집위원이 산책길에 발견한 이 비석은 미군 레이놀드와 기지촌 여성 순자의 사랑을 방증하는 증표였다.

순자 레이놀드에서 출발한 턱거리마을의 '제1회 순자문화제'에선 기지촌 여성이 죽으면 그날만큼은 이웃 동료 모두 손님을 받지 않고 상여에 꽃을 만들어 붙이고 직접 상여를 메는 등 망자의 넋을 기렸다는 구술 기록을 토대로 이를 재현하는 프로그램을 주민 참여로 진행했다.

새로운 공동체와 과거의 공동체가 기억을 공유하고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진짜 에코뮤지엄'이 동두천 턱거리마을에서 실현되고 있다.

/조두호(양평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전문기자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