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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강원 나무 기행]질긴 생명력…척박한 땅에서 문화 꽃피워낸 도민들 삶 닮아

강릉 명주군왕과 소나무

 

 

>동해안 일대 소나무 '미인송' 으로 불려 대관령휴양림서 100년 넘는 세월 버텨
도 기념물 제12호 명주군왕릉 나무들 병풍처럼 둘러져 호위 영겁의 시간 보내


단원 김홍도가 1788년 초가을 그림여행으로 대관령을 넘는다. 동대문을 출발한 일행은 양평~안흥~방림~대화~진부~월정사~횡계를 거쳐 대관령에 도착했다. 여행길 중에 처음, 자신의 시야로 확 펼쳐지는 풍경. 시원한 눈맛은 지친 여행길에 피로회복제가 됐다. 거덜이가 잡은 말고삐가 파도를 친다. 거친 산길은 걸어서 가야 안전하다. 겁먹은 말을 안정시키고 잔도에 발걸음을 내딛는다.

지금 나는 쇠로 된 말, 자동차를 몰고 고개를 넘는다. 대관령 고속도로의 기본 토대는 옛길 아흔아홉 굽이다. 그 옛길은 언제 넘었을지 모를 조상들의 가쁜 숨결, 무거운 발자국과 짙은 땀이 배어 집으로 가는 고향 길을 만난 것처럼 정겹고 설렌다. 산토끼나 멧돼지가 다녔을 법한 오솔길을 따라 가면 옛 주막이 있던 반정이 나온다. 강릉 시내를 한눈에 조망하는 명소로 바로 위에 신사임당 시비가 있다. 인공구조물보다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릴 만한 주막이 제격이 아닐까?

이곳에서 매월당은 고갯길을 넘으며 느낀 감흥을 시로 남겼고, 단원은 동해안의 첫인상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도로를 따라 굽이치는 선을 따라 소나무들이 아름다운 몸매를 과시한다. 동해안 일대 소나무를 부르는 애칭 미인송이다. 눈부신 유혹을 떨어내기 어려워 자꾸 눈길이 간다. 대관령 휴양림 안에는 일제강점기 조림한 소나무들이 100년 넘는 세월을 버티고 서 있다. 군사 퍼레이드에 참가한 군인처럼 줄 맞춰 도열한 나무들이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근육질의 나무들이 뿜어내는 휴양림의 공기는 전국 최고의 청량감을 자랑한다. 코를 통해 폐로 들어가는 공기는 상큼하며, 콧속으로 부딪는 신선한 향기의 이질감은 정신을 맑게 정화시킨다.

길가 대관령박물관을 지나다 보면 명주군왕릉 표지판이 나오고, 계곡과 함께 이어진 길을 따라 재촉하다 보면 조용한 산골마을 보광리를 만난다. 군데군데 산불 피해지가 나타난다. 해마다 봄철에 백두대간과 동해안의 해양성 기후가 만들어낸 불과의 싸움은 잿빛 상처로 아쉬움을 자아낸다. 홍살문을 지나 주차장부터 걸어서 능으로 향한다.

명주군왕릉은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있는 신라시대 왕릉이다.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자리 잡은 왕릉은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잔디 위에는 할미꽃과 노루귀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두 송이 할미꽃이 기대어 자신의 무게를 나눠 지탱하고 있다. 봉분 주변의 소나무들이 할미꽃을 호위하는 것처럼 보인다. 방문객의 기침 소리를 알아듣는 듯 무덤 앞엔 나지막한 문인석과 석물들이 영겁의 시간을 버티고 있다.

명주군왕릉의 주인공은 강릉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이다. 신라 태종 무열왕의 5대손으로 여러 차례 상대등과 시중을 지낼 정도로 영향력을 가진 집안이다. 그의 부친 유정이 명주에 벼슬을 받아 강릉 여인과 혼인하게 돼 김주원을 낳았다. 선덕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그는 유력한 왕위 계승자였으나 세력에 밀려 강릉으로 물러나게 됐다. 789년 원성왕은 김주원에게 양양, 강릉, 삼척, 울진, 평해의 땅을 주고 명주군왕이라 칭했다. 이때 함께 이주한 강릉최씨, 강릉함씨, 강릉박씨, 강릉권씨, 강릉유씨 등 6개 성씨 사람들은 새로운 강원 시대를 열었다.

그 후 아들 헌창과 손자 범문이 신라 중앙정계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모두 실패하기도 했다. 명주군왕릉은 강원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돼 있다.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소나무는 돌 부스러기 땅에서도 영양분을 찾아내 자양분으로 삼고 늘 푸른 잎을 키워내는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아름다운 문화를 피워낸 강원도민들의 삶과 닮은 것이 이 나무에 애착이 가는 이유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특히 소나무를 사랑했다. 사계절 푸르른 소나무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하지 않는 충과 의를 대변한다. 나라와 임금에 대한 자신의 변하지 않는 충심을 소나무에 빗대어 표현하곤 했다.

김남덕 사진부국장 kim67@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