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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카페 민지(MZ)] 낡은 기와집 모과나무 정원에 그윽한 커피향이 있는 '오가닉 모가'

김광석길 끝에 있는 기역자형 한옥…간판 대신 초록색 모과 사진 반겨줘
기울어진 폐가 구입해 1년 걸쳐 수리…유리창마다 눈 덮인 산 문양 이색적

 

카페 여행이 인기다. 카페에서 달콤한 휴식을 즐기기 위해 홀로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MZ세대 사이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 SNS)에 카페 사진 올리기가 유행이다. 힐링을 위해 카페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커피와 빵 한 조각으로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서울, 부산 등 외지인들도 카페와 맛집을 여행코스로 미리 선정한 뒤 대구로 놀러오곤 한다. 2030세대가 많이 찾는 카페 핫플레이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본다.

 

 

◆ 김광석길 끝에서 오른쪽 골목 기와집

 

오가닉 모가는 가객 김광석이 태어난 대구 중구 대봉동에 위치하고 있다. 방천시장 쪽에서 김광석길로 들어서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일어나', '이등병의 편지', '타는 목마름으로' 등 김광석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김광석이 기타치며 노래하는 모습의 벽화를 보며 걷다 보면 길 끄트머리의 오른쪽 골목에 숨겨진 기와집 카페를 만날 수 있다. 김광석도 어린 시절 이런 집에서 살았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카페 주변은 도시 속 시골 같은 모습을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웨딩 스튜디오가 많은 동네를 둘러보면 오래된 기와집도 가끔 눈에 띈다. 대나무, 석류나무, 억새 등으로 집 앞을 단장한 곳도 있다. 마당에 주황색 감이 달린 감나무도 보인다.

 

평일 오전 11시 쯤 카페에 들어섰다. 가게 간판이 따로 없다. 나지막한 대문 옆에 초록색 모과와 풀밭을 담은 사진이 붙어 있다. 사진에 영어로 쓴 'ORGANIC MOGA'뿐이다. 대문 옆에 있는 2층 높이의 별채가 이색적이다.

 

마당에 높이 솟은 모과나무가 부채꼴 모양으로 집 전체를 감싸 안고 있는 듯하다. 겨울에도 노란 모과가 나무 중간에 달려 있다. 둘레를 돌로 쌓은 나무 밑둥치 주위와 별채 입구, 동쪽 지붕 물받이에 모과를 놓아 둬 시선을 끈다. 노란 모과를 보기만 해도 달콤한 향기가 떠오른다. 본채는 안채와 사랑채를 갖춘 기역자형 집이다. 본채 앞 마당에 긴 의자와 탁자가 있다. 날씨가 따뜻한 날에는 인기 있는 자리다. 날씨가 추워 안채 창가에 앉았다.

 

 

◆ 모과나무 보며 즐기는 카페라떼 한잔

 

안채는 주방, 카운터, 탁자, 창가 긴 탁자 등으로 단순한 구조다. 메뉴도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소프트라떼, 핫초코, 레몬에이드, 유기농오미자, 레몬라임티, 백차 등으로 비교적 간단하다. 부드러운 커피 맛을 즐기기 위해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조금 뒤 주인이 직접 하트 모양이 그려진 카페라떼를 들고 왔다. 부드럽고 달콤해 다방 커피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도 어울린다. 진동벨이 없어 언제 울릴지 긴장하지 않아도 돼 손님으로 제대로 대접받는 것 같다.

 

이 가게에선 겨울에 딸기케이크, 당근케이크, 복숭아케이크, 레몬파운드케이크, 카라멜파운드케이크 등을 판다.

 

작은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재즈풍의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유리창틀 사이로 햇볕이 들어 따뜻함을 더한다. 직사각형 작은 유리창을 여러 개 만들어 바깥에서는 내부가 잘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밖을 훤히 볼 수 있다. 작은 유리창을 통해 정원과 모과나무, 별채 기와지붕이 각각 다른 공간처럼 보인다.

 

유리창마다 눈 덮인 산 모양의 작은 문양이 들어 있어 이채롭다. 백로가 날아가는 것 같다. 가게 주인 이승욱(31) 씨는 후지산 문양이라고 한다. 다시 창문을 보니 바깥 풍경마다 하얀 산이 겹쳐져 그림엽서처럼 보인다. 햇빛에 비친 산 문양은 조그만 설산같이 더 하얗다. 천장은 서까래와 대들보가 드러나 있어 시골집처럼 푸근하고 편안함을 안겨준다.

 

 

사랑채에서도 창문 너머로 작은 정원과 가게 밖까지 볼 수 있다. 방안에는 올리브나무 화분이 놓여 있다. 겨울에도 햇빛이 들어와 초록색 잎을 보여 준다. 작은 대문 옆에 있는 별채는 농촌 들녘의 담배창고처럼 보인다. 천장이 높은 독립공간이다.

 

정원에는 남천, 라일락, 능소화 등 식물이 여기저기 심어져 있다. 특히 남천나무는 겨울에도 울긋불긋한 잎을 간직하고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 입구 벤치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이 가게는 평일에도 만원이다. 점심 식사 후에는 MZ세대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가게 입구 길가에는 벤치가 하나 있다. 겨울에도 벤치에 앉거나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손님 연령층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오후에는 2030세대 손님이 많은 편이다.

 

가게 주인은 이곳에서 장사한 지 11년 정도 됐다고 한다. 기울어진 폐가를 구입해 1년에 걸쳐 수리했다. 기와는 경주의 폐가에서 구해 새로 올렸다고 한다. 집도 '적산가옥'이라고 했다. 별채 구조는 특이하다. 안채와 사랑채 유리창의 산 모양 문양도 요즘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토미이 마사노리 전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 집을 한옥이라고 했다. 실제로 본체 상량문에는 '단군기원 4292년 3월 18일'로 씌어 있다. 1959년에 마룻대를 올렸다는 얘기다. 본채는 한옥이지만 창문 유리에는 후지산 문양이 들어가 있다.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은 일본인들에게 마음 속 고향 같은 곳이다. 후지산은 2013년 '신앙의 대상 그리고 예술의 원천'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후지산 문양의 유리창은 천주교대구대교구 성모당 옆 한옥 건물인 '안익사'에도 남아 있다. 이 가옥은 원래 팔공산 지묘동 산기슭에 있었으나 공산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것을 천주교대구대교구에서 기증받아 옮겨온 것이다.

 

 

일본에서는 창문 창살에 후지산 문양이 들어간 고가구가 요즘에도 판매되고 있다. 밑부분에 후지산의 입체적인 모양을 넣어 장식한 현대 유리잔은 '복을 부르는 잔'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카페 입구의 별채도 한옥 구조와 다른 것 같다. 적산가옥의 흔적처럼 보인다. 집 가운데에 있는 모과나무도 특이하다. 한옥의 마당 한가운데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 모과나무를 한옥의 정원수로 기르지도 않았다. 모과나무는 일본 고신에쓰(야먀나시, 나가노, 니가타)와 도호쿠(아오모리, 이와테, 미야기, 아키타, 야마가타, 후쿠시마) 지방에서 정원수로 많이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광복 후 10여 년이 지나도 일본인의 생활 흔적은 한옥 유리창의 후지산 문양이나 마당의 모과나무로 남아 있는 것 같다.

 

 

 

◆ 시골집에 온 듯 아늑한 공간

 

'오가닉 모가'는 유기농을 뜻하는 오가닉(organic)과 모과의 충청도 방언 모가를 합쳐 지은 가게 이름이다. 이 가게는 케이크용 밀가루, 설탕, 사탕수수 등에 유기농 제품을 쓴다고 한다. 주인은 에티오피아 캄벤다에서 생산된 커피 원두만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카페의 인테리어나 정원이 자연스러워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도시의 화려하고 세련된 현대식 건물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시골에 있는 고향집에 온 듯하다. 이런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젊은이들의 발길을 이끄는 것 같다. 모바일과 명품, 최신 트렌드에 익숙한 2030세대도 한옥 카페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낡은 기와집과 모과나무 정원이 그윽한 커피향과 어울려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카페 정원에 있는 모과나무와 라일락의 앙상한 가지들이 겨울 추위에 잔뜩 움츠린 채 봄을 기다린다. 분홍색 꽃과 연보라색 꽃이 활짝 펴 향기를 흩날릴 즈음에 카페는 어떤 모습일까?